롯데 오현택-진명호가 쓰는 9300만원의 기적

입력 2018-05-17 09:3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롯데 불펜 오현택(왼쪽)과 진명호는 올 시즌 ‘절실함’이라는 단어를 품고 마운드에 오른다. 나란히 프로 10년차인 둘은 기나긴 부상과 부진의 늪을 헤쳐 나온 뒤 양 날개를 활짝 펴고 있다. 둘이 합쳐 연봉 9300만원에 불과한 오현택과 진명호의 반란은 이제 시작이다. 스포츠동아DB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인생이 바뀐다. 그러나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것이 자기 마음을 바꾸는 것이다. ‘이 선수는 마인드만 바뀌면 더할 나위 없을 텐데…’라는 말은 가장 실행이 어려운 주문일 수 있다.

인간의 생각을 바꾸는 첩경은 어떤 계기가 발생했을 때다. 자기를 둘러싼 환경에 큰 변화가 생기면 스스로를 객관화할 수 있다.

롯데 셋업맨 오현택(33)과 진명호(29)는 2018시즌을 앞두고 ‘절실함’이 무엇인지를 어렴풋하게 실감했다. 원광대를 졸업한 오현택과 효천고를 나온 진명호는 나란히 2009년 프로야구 선수가 됐다. 그러나 9년 동안 특별히 이룬 것 없이 세월만 흘러갔다. 이들 앞에 2017시즌 후 이적(오현택)과 결혼(진명호)이라는 큰 계기가 발생했다.

오현택은 2차 드래프트를 통해 9년간 뛴 두산을 떠나 롯데로 왔다. 2015년 11월과 2017년 3월 두 차례에 걸쳐 팔꿈치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았다.

진명호는 2차 1라운드에서 롯데의 지명을 받은 유망주였다. 그러나 잠재력은 좀처럼 실현되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2016년 6월 어깨 수술까지 받았다.

육성선수 출신인 오현택은 2015년과 2016년 연봉 1억1000만원을 받았다. 그러나 2017년 8000만원, 2018년 6000만원으로 곤두박질쳤다. 진명호는 2013년의 5000만원이 최고연봉이었다. 2014년과 2015년 상무를 다녀왔어도 상황은 개선되지 않았다. 2016년 3800만원→2017년 3000만원→2018년 3300만원의 연봉이다.

둘이 합쳐 올 시즌 연봉 9300만원인 오현택과 진명호가 롯데를 구할 줄은 거의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그러나 개막 7연패를 비롯해 2승11패로 출발한 롯데가 16일 20승 20패로 5할 승률을 마크하기까지는 오현택과 진명호의 힘이 컸다.

오현택~진명호 그리고 마무리 손승락으로 짜여진 롯데 ‘신(新) 필승조’는 59이닝 동안 방어율 2.14를 기록했다. 롯데가 상승세를 탄 5월만 떼어내면 오현택과 진명호의 방어율은 0이다. 손승락만 3.2이닝에서 1자책점을 내줬으니 가히 철벽이라 할만하다.

2017년 롯데의 후반기 반등을 이끌었던 박진형~조정훈~손승락 불펜 라인에 필적할 위력이다. 박진형이 구위 난조로 2군에서 조정 중이고, 긴 재활을 거친 투수라 특별관리를 받아야 하는 조정훈은 아직 1군에 올라오지 못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서도 롯데는 7회까지 앞선 경기에서 13승1패라는 엄청난 승률을 올리고 있다. 오현택(20.2이닝 5자책점·방어율 2.18)과 진명호(22.1이닝 3자책점·방어율 1.21)의 존재감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특히 진명호는 15일 마산 NC전에서 데뷔 첫 세이브도 해냈다. 현재 페이스만 놓고 보면 마무리 손승락(16이닝 6자책점, 방어율 3.38)을 능가한다.

인간승리의 기적은 먼 곳에 있지 않다. 절실함은 이렇게 두 투수를, 롯데를 바꿨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