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길의 스포츠에세이] 막내 이승우의 무한 반란을 기대하며…

입력 2018-06-14 05:3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축구대표팀 이승우.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을 앞두고 주전 스위퍼 조민국이 부상당한 한국대표팀의 수비진은 크게 흔들렸다. 이회택 감독의 고민이 깊었다. 그 때 꺼낸 카드가 홍명보(고려대 4학년)다. 전격적인 발탁에 축구계의 우려가 컸다. 하지만 그 우려가 불식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홍명보는 대표팀에 합류하자마자 정확한 패스와 과감한 태클 등으로 믿음을 샀다. 당시 이회택 감독은 “홍명보를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 내보낼 스위퍼 재목으로 생각해 뽑았지만 놀라운 기량향상을 보여 확실한 주전으로 떠올랐다”고 했다. 무명의 홍명보는 뜻밖에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이탈리아월드컵 조별 예선 3경기를 풀타임으로 뛰었다. 이후 2002년까지 4회 연속 월드컵 무대를 밟으며 한국축구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에서 깜짝 발탁된 유망주는 19세의 이동국이었다. 차범근 감독은 포철공고를 졸업하고 포항에 입단한 루키 이동국을 엔트리에 포함시켰다. 가능성 있는 어린 선수에게 큰 무대를 경험하게 해줄 요량이었다. 네덜란드전 0-5 완패와 감독 경질이라는 아픔을 겪었지만 이동국이라는 희망의 싹을 틔운 건 큰 수확이었다. 그가 뛴 시간은 10여분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은 강렬했다. 그는 두려움 없는 중거리 슛 한방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살렸다. 이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스트라이커로 성장한 그는 지금도 K리그를 누비며 최다 골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깜짝 발탁이라고 하기엔 기량이 너무 뛰어났던 2006년의 박주영, 2010년의 기성용, 2014년의 손흥민도 어린 나이에 월드컵 무대를 경험하면서 한 뼘 더 성장했다. 이들은 타고난 자질에 월드컵의 경험이 더해지면서 한국축구의 에이스로 우뚝 설 수 있었다.


감독이 신예를 전격 발탁하는 이유는 크게 2가지다. 어린 선수의 도전 정신이 팀에 활력을 줄 수 있다는 기대와 함께 세대교체를 위한 장기적인 로드맵의 일환이다. 현재의 대표팀이 아니라 미래의 대표팀을 위해서라도 이런 발탁은 바람직하다.


축구대표팀 이승우.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2018 러시아월드컵을 앞두고도 깜짝 승선이 이뤄졌다. 이승우(20¤ 베로나)다. FC바르셀로나 유스팀 출신으로 꿈을 키워 온 그는 지난 시즌 이탈리아 세리에A를 통해 성인 무대를 밟았다. 시즌 초반 적응이 쉽지 않았지만 막판에 골을 넣는 등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드컵 엔트리에 들기엔 너무 어렸고, 경험이 부족했다.


하지만 엔트리 발표를 코앞에 두고 주전들이 줄 부상으로 낙마하자 대안으로 떠오른 게 이승우다. A매치 경험이 전혀 없던 그의 발탁은 큰 화제가 됐다. 신태용 감독은 “체격이 큰 상대국 수비진의 뒷공간을 민첩하게 파고들며 파울을 얻어낼 능력을 갖췄다”며 선발 배경을 설명했다.


지금까지의 모습을 보면 이승우의 발탁은 잘된 결정이다. 일대일 돌파와 순간 스피드, 투쟁심 등 그를 발탁한 이유를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특히 체구는 작지만(170cm, 60kg) 상대와의 몸싸움을 마다하지 않는 특유의 근성은 칭찬 받을만하다. 그 과감성이 선배들을 자극시키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승우의 등번호는 10번이다. 에이스의 상징이다. 2014년에는 박주영이 달았다. 엔트리에 든 것만도 사건에 가까운데, 거기다 주축 공격수의 배번을 부여받은 건 신태용 감독의 기대가 얼마나 큰 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승우도 죽기 살기로 뛰겠다고 약속했다. 자신의 욕심보다는 팀플레이를 다짐했다. 야무진 코멘트들이다.


월드컵은 새로운 별들의 경연장이다. 지는 별을 뒤로 하고 뜨는 별이 각광 받는 무대다. 어쩌면 톡톡 튀는 이승우에게 가장 어울리는 무대일 지도 모르겠다. 이제 천금같은 기회에 생명을 불어넣는 건 이승우의 몫이다. 겁 없이 덤벼드는 막내의 반란을 기대해본다.


최현길 전문기자 choihg2@donga.com·체육학박사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