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장현의 러시아 리포트] ‘넘어져도 일어서는 오뚝이처럼’ 다시 뛰는 김영권

입력 2018-06-14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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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대표팀 김영권.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12일(한국시간) 독일 뮌헨 국제공항. 2018러시아월드컵 베이스캠프가 마련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향하는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던 축구국가대표팀 신태용(48) 감독은 동행 취재진과 짧은 대화를 나눴다. 오스트리아 레오강에서 열흘 간 진행된 사전훈련캠프 성과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중 신 감독이 특히 열변을 토한 순간이 있었다. 베테랑 중앙수비수 김영권(28·광저우 에버그란데)이 화두에 올랐을 때였다.


대표팀은 오스트리아 현지에서 가진 두 차례 평가전에서 승리하지 못했다. 7일 인스부르크에서 열린 볼리비아전을 득점 없이 비겼고, 11일 그로딕에서 치른 비공개 세네갈전에서 0-2로 완패했다.


그러나 경기력과 내용은 결코 나쁘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후반 자책골과 페널티킥(PK) 추가골을 내주긴 했어도 수비라인은 상당한 안정감을 줬다. “(김)영권이가 정말 잘해줬다. 몸 상태가 나쁘지 않다. 투지도 좋았고, 탄탄한 수비리딩으로 뒷문을 든든하게 지켰다”고 신 감독은 평가했다.


국내 팬들에게 김영권은 ‘애증의 이름’이다. 작은 실수라도 하면 엄청난 비난이 쇄도한다. 그러면서도 딱히 대안을 찾아내지도 못한다. 적어도 실력만큼은 동일 포지션에서 김영권은 톱클래스에 속한다.


최고의 수비수로 통하는 그가 미운오리새끼로 전락한 계기가 있었다. 4년 전 브라질월드컵에서 한국축구가 경험한 악몽이다. 2012런던올림픽 동메달 멤버들이 주축을 이룬 당시 대표팀은 국민적인 높은 기대를 받았으나 졸전을 거듭하며 조별리그 1무2패의 초라한 성적을 남긴 채 귀국길에 올랐다. 특히 알제리와 조별리그 2차전(2-4 패)에서 상대의 후방 침투 패스에 허둥거리다 공간도 내주고, 선수도 놓치는 김영권의 모습은 실망 그 자체였다.


축구대표팀 김영권.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지난해에도 김영권은 비난을 한 몸에 받았다. ‘신태용호’의 데뷔 무대이기도 했던 8월 이란과의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홈 9차전(0-0) 직후 실언을 남긴 것이다. 비난여론이 쇄도했다. 이 과정에서 상처는 굉장히 깊었다. 본인도 가슴이 아팠지만 가족의 생채기는 더욱 컸다. 김영권의 어머니는 극성스러운 온라인 익명 댓글을 보지 않기 위해 휴대폰을 인터넷 접속이 어려운 구형 모델로 바꿔야 할 정도였다.


그래도 스트레스는 사라지지 않았다. 결국 어머니는 올 초 예기치 못한 큰 병으로 수술을 받아야만 했다. 다행히 어느 정도 회복했지만 아들은 한동안 웃음을 잃었다. 다만 축구를 포기하지는 않았다. 묵묵히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신 감독은 그런 제자를 외면하지 않았다. 잠시 대표팀에서 제외시키는 등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여유를 제공했고, 적당한 타이밍이 됐을 때 다시 불러들였다.


‘월드컵 태극전사’ 김영권은 매 순간이 절박하다. 브라질에서의 악몽을 되풀이할 수 없다는 의지로 가득하다. 월드컵에서의 아픔은 결국 월드컵에서 풀어야 한다는 축구계의 오랜 속설처럼 러시아를 약속의 땅으로 만들기 위해 온몸을 불사르겠다는 각오다. 스리백과 포백을 병행하는 신 감독의 수비전략에 잘 적응하기 위한 공부도 필수다.


“축구 외적인 부분으로 잠시 힘든 적이 있지만 꾸준히 응원하는 분들이 있어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많이 좋아졌다. 오직 축구만 생각하고 있다”는 김영권의 러시아 여정은 과연 어떻게 열릴까. 그 출발점이 될 18일 니즈니노브고로드에서의 스웨덴과 조별리그 F조 1차전을 앞두고 태극전사들과 김영권은 마지막 담금질에 돌입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러시아) |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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