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월드컵] 아시아 축구의 길 보여준 ‘실리축구의 달인’ 이란 케이로스 감독

입력 2018-06-27 05:3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이란 축구대표팀 감독 카를로스 케이로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늪 축구’ 이란이 2018러시아월드컵에서 아쉽게 퇴장했다. 26일(한국시간) 사란스크의 모르도비아 아레나에서 벌어진 대회 조별리그 B조 3차전에서 포르투갈과 1-1로 비겼다. 1승1무1패, 승점 4의 이란은 스페인, 포르투갈(이상 1승2무·승점 5)에 밀려 조 3위로 16강행 티켓을 놓쳤다.


비록 16강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이란은 ‘늪 축구’로 통칭되는 질식수비를 앞세워 우승후보 스페인(0-1 패), 포르투갈과 대등하게 싸웠다. 유럽파로 구성된 북아프리카의 강호 모로코는 1-0으로 제압했다. 승점 3점만으로도 16강행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 한국의 ‘희망고문’과는 결이 다른 축구를 조별리그에서 보여줬다. 이 같은 성과는 2011년 4월부터 이란을 이끌고 있는 카를로스 케이로스(65) 감독의 지도력을 빼고는 설명하지 못한다.


케이로스 감독이 취임하기 전 이란은 불세출의 스트라이커 알리 다에이(49)를 앞세워 아시아 최강의 공격축구를 뽐냈다. 다에이는 1996년 12월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열린 아시안컵 8강전에서 한국을 상대로 4골을 터트리며 이란의 6-2 대승을 연출하는 등 2006년 은퇴할 때까지 A매치 149경기에서 무려 109골을 뽑았다.


이란 축구대표팀 감독 카를로스 케이로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포르투갈대표팀과 레알 마드리드(스페인) 사령탑,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잉글랜드) 수석코치 등을 역임한 케이로스는 이란을 실리축구의 달인으로 변모시켰다. 수비벽을 촘촘하게 세워놓고 역습으로 상대를 무력화시켰다. ‘침대축구’라는 비난을 사긴 했지만, 적어도 아시아권에선 난공불락의 강팀이 바로 이란이다. 한국도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1무1패를 포함해 2009년 이후 최근 10년간 1승3무5패로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통산 9승8무13패).


케이로스 체제에서 이란은 아시아의 맹주가 됐고, ‘늪 축구’는 약자의 전술을 넘어 이란 특유의 컬러가 됐다. 이는 국제정치에서 이란이 처한 현실 또는 상황과도 닮은꼴이어서 눈길을 끈다. 1970년대 말 주이란미국대사관 인질 사건과 최근의 이란 핵합의 파기 사태 등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이란은 미국도 어쩌지 못하는 나라다. 종파갈등이 결합된 중동정세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한 축이다. 국제정치의 ‘이단아’이자, ‘늪’이 바로 이란이다.


‘늪 축구’의 창시자로 러시아에서 ‘승장 같은’ 패장이 된 케이로스는 이번 월드컵을 끝으로 이란을 떠나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과거 몇 차례 퇴진의사를 밝히고도 번복했던 케이로스가 이번에는 어떤 결정을 내릴지 주목된다.


정재우 기자 jace@donga.com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