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 달군 축구·야구·배구·농구의 명승부 열전

입력 2018-08-17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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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뉴델리아시안게임 남자농구 결승전 직후 한국 벤치는 우승에 감격스러워한 반면 중국 선수들은 망연자실했다.

2018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이 18일 개막한다. 18번째 대회인 올해 아시안게임에서 대한민국은 금메달 65개 이상으로 6회 연속 종합 2위 달성을 목표로 삼고 있다. 양궁, 사격, 유도, 펜싱, 태권도 등 전통적으로 효자 역할을 해온 개인종목들은 물론 야구, 축구를 비롯한 구기종목들의 선전도 뒷받침되어야 한다. 아시안게임, 올림픽 등 종합국제대회에선 특히 대회 후반부 구기종목에서 무더기로 메달이 쏟아진다. 빡빡한 경기일정 때문에 개막 이전부터 예선을 치르기 시작해 폐막에 즈음해 메달 색깔을 다툰다. 이번에도 대회 후반부 구기종목들의 금빛 퍼레이드를 기대하며 역대 아시안게임을 되돌아본다. 농구, 배구, 야구, 축구 등 국내 4대 인기 구기종목들은 역대 아시안게임에서도 숱한 명승부를 연출하며 ‘필승 코리아’를 이끌어왔다.


● 남자농구 - 1982년 뉴델리 금메달

농구에선 높이가 절대적이다. 중국농구가 남녀 공히 아시아권에서 초강세를 보이는 근거다.

한국농구도 아시안게임을 비롯한 주요 국제대회마다 만리장성에 가로막히곤 했다. 그러나 1982년 뉴델리아시안게임에선 ‘다윗’ 한국이 ‘골리앗’ 중국을 쓰러뜨리고 금맥을 캐냈다. 뛰어난 전술과 기술, 투지로 높이를 제압했다.

박수교, 신동찬, 신선우, 이충희, 임정명 등 당대 최고의 스타들로 구성된 남자농구대표팀은 뉴델리에서 예선부터 결선리그까지 순항을 거듭한 끝에 준결승에 올라 일본과 격돌했다. 당시 일본의 골밑에는 226㎝의 장신 오카야마 야스다카가 버티고 있었다. 결과를 속단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한국은 일본을 91-90으로 따돌리고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결승 상대는 당시만 해도 중공으로 불리던 중국으로, 단연 아시아 최강이었다. 대회를 앞두고 준비한 수비전략이 맞아떨어져 전반은 의외로 한국의 41-24, 17점차 리드. 그러나 후반 들어 중공의 고공농구에 수비가 무너졌다. 종료 30초를 남기고는 85-84, 1점차로 따라잡혔다. 공격권을 지닌 한국은 다행히 볼을 빼앗기지 않은 채 남은 30초를 그대로 흘려보냈다. 1970년 방콕대회에 이은 아시안게임 2번째 금메달이었다. 우리 남자농구는 그 후 2002년 부산, 2014년 인천에서 금메달을 보탰다.

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에서 우승한 여자배구대표선수들이 김철용 감독을 헹가래 치고 있다.


● 여자배구 - 1994년 히로시마 금메달

여자배구는 올림픽에서 한국이 처음으로 메달을 얻은 구기종목이다.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이었다. 아시안게임 금메달은 2개다. 의외로 적다. 세계 정상권인 중국과 일본이 이웃에 있기 때문이다. 1980년대까지는 일본, 1990년대부터는 중국이 아시아 여자배구를 이끌어왔다.

한국여자배구는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에서 20년 만에 다시 금메달을 따냈다. 1994년 히로시마의 영광을 재현했다. 히로시마아시안게임 우승은 인천아시안게임 못지않게 극적이었다. 6개국이 풀리그로 순위를 가린 히로시마대회에서 한국은 중국과 일본을 연파하고 첫 금메달을 따냈다.

한국은 2차전에서 만난 중국을 2시간30분의 혈전 끝에 세트스코어 3-2로 누른 데 이어 4차전 상대였던 홈팀 일본에는 1~2세트를 내주고도 대역전승을 거뒀다. 당시 호남정유 소속이던 박수정, 이도희, 장윤희, 정선혜, 홍지연과 한일합섬 소속이던 김남순이 주전으로 활약한 여자배구대표팀은 5전승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야구대표선수들이 환호하고 있다.


● 야구 - 1998년 방콕 금메달

야구는 1994년 히로시마대회에서 처음 아시안게임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 금메달은 개최국 일본의 몫이었고, 한국은 아쉽게 은메달에 머물렀다. 그러나 프로선수들에게도 문호가 개방된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은 달랐다. 한국에 설욕의 기회가 찾아왔다.

당시 메이저리그를 뜨겁게 달구던 ‘코리안 특급’ 박찬호를 필두로 서재응, 임창용, 김병현, 진갑용, 김동주, 박재홍, 이병규 등으로 최초의 ‘드림팀’을 결성한 한국야구는 숙적 일본과 대만을 예선에서만 2차례씩이나 만나 모두 승리한 뒤 준결승에선 중국을 완파하고 결승에 올랐다. 상대는 다시 일본. 방콕에서만 3번째 대결이었다.

12월 16일 벌어진 결승에서 한국은 일본에 13-1, 7회 콜드게임 승리를 거두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결승에서 선발 7이닝 동안 4안타 1실점으로 역투한 박찬호가 우승 확정 순간 마운드에서 껑충껑충 뛰어오르던 모습은 그 뒤 활짝 열린 한국야구의 르네상스(2000년 시드니올림픽 동메달·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2006년 제1회 WBC 4강·2009년 제2회 WBC 준우승)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축구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결승전 도중 선제골을 뽑은 조광래(가운데)가 펄쩍 뛰며 기뻐하고 있다.


● 남자축구 - 1986년 서울 금메달

한국은 아시안게임 남자축구에서 그동안 금메달 4개를 수확했다. 1970년 방콕~1978년 방콕~1986년 서울~2014년 인천에서다. 1970년 결승에선 버마(현 미얀마), 1978년 결승에선 북한과 모두 0-0으로 비겨 공동우승에 그쳤다. ‘아시아의 호랑이’로 불려온 한국은 1986년 대회에서 처음으로 아시안게임 단독우승에 성공했다. 그해 멕시코월드컵에서 32년 만에 본선 무대를 밟았음에도 사상 첫 골과 첫 승점을 얻어내며 선전한 기세가 서울아시안게임까지 고스란히 이어졌다.

조별예선을 2승1무로 통과한 한국은 8강에서 이란과 1-1로 비긴 뒤 승부차기 끝에 5-4로 이겨 준결승에 올랐다. 최대 고비를 넘긴 한국은 준결승 상대 인도네시아를 4-0으로 대파했다. 최순호가 2골, 조광래와 이태호가 1골씩을 뽑았다. 이어 ‘오일머니’로 무장한 사우디아라비아와 맞붙은 결승에선 조광래~변병주의 연속골로 2-0 완승을 거뒀다. 개최국의 자존심을 최고조로 끌어올린 금메달이었다.

2014 인천아시안게임 여자축구 준결승전 한국 vs 북한의 경기 모습.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여자축구 - 2014년 인천 동메달

남자축구에 비해 여자축구는 주목도가 떨어지는 편이다. 그러나 놀라운 발전속도와 선수들의 투지 덕분에 여자축구의 매력에 빠져드는 팬들이 늘고 있다. 한국은 아시안게임 여자축구에서 동메달만 2개를 따냈다. 2010년 광저우에서 처음 메달의 기쁨을 맛본 데 이어 4년 뒤 인천에선 결승 일보 직전까지 갔다.

인천아시안게임 여자축구 준결승은 남북대결로 펼쳐졌다. 경기 내내 일진일퇴의 열띤 공방전이 이어졌다. 전반 12분 정설미의 프리킥 선제골로 한국이 앞서나갔지만, 북한도 전반 35분 리예경의 동점골로 응수했다. 후반도 박진감 넘치게 진행됐다. 골만 터지지 않았을 뿐. 그러나 연장의 기운이 모락모락 피어나던 경기 종료 10초 전 북한 허은별이 결승골을 뽑았다.

강력한 체력을 앞세워 후반 중반 이후 거세게 북한을 몰아붙였던 한국으로선 아쉬운 결과였다. 3·4위전으로 밀려났지만 태극낭자들은 좌절하지 않고 베트남을 3-0으로 제압해 2회 연속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남북대결에서 승리한 북한이 결승에서 일본을 3-1로 꺾고 우승했다.

정재우 기자 jac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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