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길의 스포츠에세이] 스포츠스타의 우월적 유전자는 존재할까

입력 2018-08-28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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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스타의 우월적 유전자가 존재한다는 건 오랜 연구를 통해 이미 밝혀졌다. 하지만 이 유전자만으로 뛰어난 기량이 대물림되는 건 아니다. 피나는 노력이 동반되어야만 새로운 스타가 탄생한다. 체조의 여서정·여홍철 부녀(위쪽)와 농구의 허웅·허재·허훈 부자. 스포츠동아DB

체조선수 여서정(16·경기체고) 앞에 붙는 수식어는 ‘여홍철의 딸’이다. 여홍철(47·경희대 교수)은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도마 은메달리스트다. 아시안게임에서도 2회 연속(1994년, 1998년) 금메달을 딴 레전드다. 여서정의 어머니 김채은(45)도 체조선수 출신으로, 현재 체조협회 전임지도자다.

유전자의 힘은 컸다. 여서정은 어릴 때부터 운동감각이 탁월했다. 그 가능성은 2018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여자 도마에서 정상에 오르면서 열매를 맺었다. 32년 만에 여자체조 금메달을 목에 건 주인공이 된 것이다. 이제 여홍철의 딸이 아닌, 여서정으로 자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이들 말고도 이번 아시안게임에 참여한 부모와 자식은 야구의 이종범 코치-이정후, 농구의 허재 감독-허웅·허훈 등이 있다. 이들처럼 대를 이은 운동선수들은 늘 관심의 대상이다.

그렇다면 과연 스포츠스타의 우월적 유전자는 존재할까. 이는 체육기자를 하면서 항상 품었던 궁금증이기도 하다.

2008년 미국에서는 유전자 때문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뉴욕타임스는 아이의 유전자 검사를 통해 스포츠에 대한 적성을 판별해주는 검사가 상용화됐다고 보도했다. 149달러의 요금을 받고 해주는 이 검사는 아이의 볼 안쪽 세포에서 DNA를 채취해 2만개의 인간유전물질 중 하나인 액틴3(ACTN3)을 분석하는 것이다. 스포츠 능력과 액틴3과의 연관성은 이미 연구 결과로 밝혀졌다. 그래서 액틴3은 ‘금메달 유전자’로도 불린다. 이 검사를 통해 아이가 풋볼처럼 스피드와 근력을 요구하는 경기에 소질이 있는지, 아니면 장거리 달리기 같은 지구력이 필요한 경기에 적합한지를 판별한다.

하지만 운동 유전자가 상업적으로 쓰이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컸다. 메릴랜드대 스티븐 로스 박사는 “운동의 성과는 최소한 200개 유전물질의 영향을 받는다. 마이클 펠프스나 우사인 볼트가 1~2개 유전물질의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근시안적인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석기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박사는 “운동 유전자 중 현재까지 160여개가 확인됐다”고 했다. 우월적 유전자가 있다는 얘기다. 민 박사에 따르면, 이런 유전자를 통해 강한 근력을 물려받은 선수들은 트레이닝 반응이 좋다. 즉, 고강도 훈련을 견뎌낼 수 있는 능력을 가져 훈련효과를 높일 수 있다는 의미다.

‘스포츠 유전자’(열린책들)의 주제도 탁월한 운동능력이 어디서 나오는지를 밝혀내는 것이다.

저자는 스포츠 스타의 사례를 통해 유전자가 과연 존재하는지, 또 재능과 연습 중 어느 것이 스포츠능력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인지를 탐구했다. 그 결과는 ‘탁월한 운동선수가 되는 체질은 따로 있다’는 것이다. 물론 저자는 유전자가 성공의 절대적인 요건이 아니라고 했다. 키가 크면 농구를 잘할 확률은 높지만 모두가 프로농구선수가 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노력을 빼놓지 않았다.

부모로부터 대물림되는 스포츠 DNA는 분명 존재한다. 위의 사례들을 보면 의심의 여지가 없다. 자식에게는 큰 선물이다. 여서정도 부모의 탁월한 유전자를 물려받았다. 행운아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여서정이 금메달을 따기까지 흘렸을 땀방울을 헤아려야한다. 천부적인 재능에 피나는 노력이 더해질 때 비로소 새로운 스타가 탄생한다. 아울러 부모를 보면서 극한의 상황을 버텨내는 인내심과 위기를 이겨내는 방법 등을 자연스럽게 배웠을 것이다. 이 또한 무시 못 할 요소들이다. 이런 다양한 요소들을 갖춰야만 진정한 대물림이 될 수 있다.

최현길 전문기자 choihg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체육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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