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원 가슴에 대못 박은’ 수원, 그렇게 레전드를 또 잃었다!

입력 2018-08-29 16: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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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원 감독. 스포츠동아DB

K리그1 수원 삼성과 서정원(48) 감독은 2013시즌부터 지속된 5년 반 동안의 동행을 28일 끝냈다. 전북 현대와의 2018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8강 원정 1차전을 하루 앞둔 시점이었다. 수원 구단은 “서정원 감독이 자진사퇴의 뜻을 전달해왔다”고 결별을 알렸다.

서 감독은 앞으로 당분간 휴식에 전념할 생각이다. 9월 말에는 아들이 유학 중인 독일을 방문할 계획도 세웠다. 서 감독의 매니지먼트를 맡고 있는 스포츠인텔리전스 김동욱 대표는 29일 “(서 감독이) 지쳤다. 당분간은 복귀 계획이 없다. 푹 쉬고, 다음 스텝을 고민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 감독의 전격 사퇴에는 일부 몰지각한 팬들의 행태가 하나의 계기가 됐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으로 가족까지 비난하는 것을 가슴 아파한 서 감독이 정든 구단과의 이별을 선택하게 된 것이 사실이다. 서 감독이 온갖 조롱과 비난을 위한 비난에 많이 지친 것도 맞다.

그런데 엇나간 팬들과의 갈등을 사퇴의 결정적인 사유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동안 보여준 수원 프런트의 행태를 보면, 구단의 책임이 훨씬 크다고 판단된다. 특히 사령탑에 대한 부족한 신뢰가 이번 사태를 불러왔다고 볼 수 있다.

서 감독은 지난해 2년 계약연장을 했는데, 박창수(56) 단장 등 구단 수뇌부가 이를 탐탁치 않게 여겼다는 얘기는 이미 축구계에서 파다하다. 서 감독이 이번에 구단에 사퇴의사를 전달하기 전, 수원 고위층이 몇몇 에이전트들에게 특정한 국내 감독들을 언급해 차기 사령탑 후보를 찾는 듯한 인상을 줬다는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수원은 현장 지휘관을 전혀 존중하지 않은 셈이다.

2014년 모기업이 제일기획으로 이관된 후 수원은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전북이 도약하고 FC서울이 명맥을 유지한 동안 수원은 옛 영광을 그릴 뿐이다. 불행히도 서 감독은 우승을 넘볼 만한 강력한 스쿼드를 가진 적이 없다. 코칭스태프 구성조차 윗선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 모 스카우트 팀장이 영입돼 스카우트 권한을 잃었을 때도 벙어리 냉가슴이었다. 서 감독은 없는 살림에서 꾸준히 2위권을 유지하고, 2016년 FA컵 우승으로 자존심을 지켰다. 유소년 정책에 따라 풀뿌리를 키워 활용하는 정성도 보였다.

그럼에도 돌아온 것은 프런트의 납득할 수 없는 행태였다. 서 감독은 22일 K리그1 제주 유나이티드 원정을 계기로 마지막 결심을 했다. 구단 관계자가 코칭스태프가 모인 자리에서 “두 경기만 더 지켜볼 것”이라고 사실상의 최후통첩을 하면서다. 정규리그 우승은 어렵게 됐으나 국내·외 토너먼트 정상의 찬스는 남은 상황에서 서 감독은 자존심에 큰 생채기를 입었다.

박 단장은 모든 사정이 외부에 알려진 뒤 언론을 통해 “사퇴를 만류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런데 설득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말린 쪽은 모기업이었다. 떠나는 순간까지도 서 감독은 존중받지 못했다. 그렇게 수원은 또 한 명의 레전드를 떠나보냈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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