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겸의 엔터 파워맨] 김규상 “춤은 언어 장벽 없는 ‘몸의 언어’…전 세계인 하나될 수 있죠”

입력 2018-08-31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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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은 언어의 장벽을 넘어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대중예술의 한 분야로 평가된다. 김규상 퍼포먼스 디렉터는 “무대의상으로 명품 옷을 입듯, 무대 퍼포먼스도 명품화를 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9> ‘백댄서’에서 무대 총괄하는 ‘지휘자’로…퍼포먼스 디렉터 김규상

곡의 퍼포먼스 총괄하는 ‘무대감독’
저절로 춤추게 하는 안무가 이상적
저작권 보호 못 받아…법제화 절실
최고 퍼포먼스 가수 육성이 꿈이죠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세계를 강타했을 때 외국인들은 ‘말춤’을 따라하며 열광했다. 4월 홍콩에서 열린 ‘제8회 케이팝 커버댄스 페스티벌’에는 65개국에서 2441개 팀이 참가했다. 이제 케이팝은 음악 못지않게 춤도 세계인들을 매혹시키는 요인 중 하나다. 덕분에 케이팝 아이돌 댄스의 생산도 체계화, 산업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퍼포먼스 디렉터’가 케이팝 산업의 중요한 포지션으로 자리 잡고 있다. 퍼포먼스 디렉터는 특정 노래에 가장 잘 어울릴 퍼포먼스를 매치해주는 사람이다. 가수의 무대 위 퍼포먼스에 대한 모든 것을 총괄하는 ‘무대감독’인 셈이다. 가수에게 춤을 만들어주는 안무가에서 더 나아간 일을 하는 것이다.

요즘 가장 활발히 활동하는 퍼포먼스 디렉터 김규상(37)은 가수 비의 댄서로 활약하다 안무가로 이효리 씨스타 에이핑크 AOA 등의 춤을 만들었다. 현재는 이들에게 퍼포먼스에 관한 제반사항을 기획하는 퍼포먼스 디렉터로 활동중이다. 가수 뒤에서 춤을 추는 댄서에서, 가수에게 안무를 해주는 안무가, 이제는 무대 위 모든 퍼포먼스를 총괄하는 퍼포먼스 디렉터로 발전한 셈이다. 그를 27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났다.


● 언어 장벽 없는 춤의 디자인, 시장성 무한

-퍼포먼스 디렉터를 쉽게 설명한다면.


“신곡이 나오면, 그 곡에 어떤 춤이 어울릴까 생각하고, 그 춤을 잘 구현해줄 안무가를 섭외해 퍼포먼스를 완성시키는 일을 한다. 가수가 방송활동을 시작하면 현장을 찾아간다. 방송사마다 무대 크기와 조명 등이 달라 최적의 퍼포먼스를 이끌어내도록 직접 현장에서 지휘를 한다.”


-단순히 춤을 만들어주는 것이 아닌가.

“퍼포먼스 디렉터는 안무가에게 안무의 방향을 제시한다. 퍼포먼스 디렉터는 곡의 감성을 잘 해석하고 표현해낼 줄 알아야 한다. 동시에 유행하는 춤을 잘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김규상은 최근 컴백을 앞둔 그룹 더보이즈의 퍼포먼스를 기획했다. 국내외 안무팀 세 곳에 더보이즈의 프로필 영상과 노래를 주고, “아직 신인이니 섹시한 분위기보다 깔끔하고 스마트한 느낌을 살려 달라”는 주문과 함께 안무를 동시 의뢰했다. 이어 세 곳으로부터 받은 안무를 잘 배합해 새로운 하나의 안무로 만든 후 소속사 측 피드백과 조율의 과정을 거쳐 최종 퍼포먼스를 완성시켰다.

퍼포먼스 디렉터의 활약으로 가수들의 춤이 디테일해지고 완성도가 높아진다. 기획사들은 고급스런 퍼포먼스로 차별화할 수 있어 퍼포먼스 디렉터 활용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 무대의상으로 명품을 입는 심리와 같은 이치다.


-춤의 시장성은 얼마나 될까.

“무한대다. 춤은 언어의 장벽이 없기 때문이다. 케이팝은 춤으로 노래의 내용을 잘 표현해주니 세계인의 공감을 얻는 것이다.”


-케이팝 열기가 오래 지속될 수 있을까.

“새로운 케이팝 스타가 계속 나오고, 재밌고 멋있는 것이 계속 나오고 있다. 진화된 음악에 맞는 춤이 나오고, 우수한 인재들도 케이팝 산업에 몰린다. 외모도 패션감각도 진화하고 있다. 자녀를 아이돌 스타로 만들려는 부모도 많다 보니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도 갖춰지고 있다. 요즘 기획사들은 웬만한 중소기업을 능가하는 매출을 기록하는 수준이다. 진정한 산업화가 이뤄졌다.”

김규상 퍼포먼스 디렉터.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 댄서의 진화, 무대의 엑스트라에서 지휘자로

-케이팝 시장에서 퍼포먼스 디렉터는 언제부터 시작됐나.


“2000년대 중반 비가 제이미 킹, 리치앤톤, 데이빗 스캇 등 미국 유명 안무가들 초빙해 안무를 짜면서 ‘퍼포먼스 디렉터’의 개념이 인식되기 시작한 것 같다. 이후 동방신기 빅뱅 2PM 등으로 활성화됐다. 당시는 무대 퍼포먼스에 많은 돈을 쓰지 않을 때였다.”


-‘백댄서’라 불리던 시절엔 배고픈 직업이었는데.

“‘빽까리’라 불릴 때는 무대에서 그저 엑스트라였다. 이젠 해외 안무가들과 교류하며 공부를 하고, 가수들 실력도 발전하면서 고급스런 퍼포먼스를 보여주게 됐다. 완성도 높은 춤을 보고 사람들도 만족감 느낀다. 잘나가는 안무가는 한달에 20∼30건을 의뢰 받는다. 건당 수백만 원이니 능력 있는 댄서들은 수입도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늘었다. 가수들이 많다보니 댄스팀도 많아지고, 수입도 늘고, 퀄리티도 높아진다.”


-춤은 저작권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데.

“소송을 통해 소유권을 인정받은 사례는 있다. 하지만 저작권은 법적 근거가 없어서 징수할 수 없다. 산업화가 됐으면 그에 맞는 법과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 창작춤에 대한 권리도 보호받을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면 좋겠다. 해외 저작권 수입도 엄청날 것이다.”


-춤은 얼마나, 왜 중요한가.

“춤은 단순한 동작이 아니라 몸의 언어이고, 연기다. 3분여 동안 얼마만큼 연기를 잘하느냐에 따라 대중이 받아들이는 온도가 다르다. 노래를 통해 관객에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있어 춤은 매우 중요한 매개체다. 음악이 사람들에게 잘 전달되도록 연기력을 입혀주는 것이 춤이다.”

-좋은 안무란 무엇일까.


“말춤이 그랬던 것처럼, 음악이 나왔을 때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춤 동작을 취한다면 안무를 이상적으로 한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공감하는 시그널, 포인트 춤을 만들려고 늘 노력한다.”

에이핑크 ‘미스터 츄’. 사진출처|에이핑크 ‘미스터 츄’ 뮤직비디오 화면 캡처


● 신발 욕심에 시작한 춤, 이젠 새로운 꿈으로

김규상 디렉터는 가수 비의 중학교 1년 선배다. 어린 시절 동네에서 비와 같이 춤을 추다 비가 2002년 솔로가수로 데뷔하면서 함께 댄서로 활약했다. 댄스팀 D.Q를 이끌며 씨스타 이효리 에이핑크 비스트 포미닛 등의 안무가로 활약했다.

에이핑크 ‘미스터 츄’의 총 쏘는 동작은 평소 김규상이 여성에게 하는 동작을 응용했는데, 이게 포인트춤으로 큰 화제가 됐다. AOA ‘사뿐사뿐’은 노래를 듣고, ‘도도하면서 예쁘다’는 느낌을 받았고, 고양이를 생각했다. 고양이를 관찰하고 나온 ‘고양이 춤’도 화제를 모았다.


-퍼포먼스 디렉터를 하게 된 계기는.

“예전엔 돈을 벌기위해서 안무도 직접 하고 좁게 움직였다. 그러다보니 나도 고갈이 됐다. 다른 가수들 무대를 보면서 더 디테일하게 공부하고 싶어졌고, 더 많은 시도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또 댄서 후배들을 생각해서 그들에게 (안무가의)기회도 주고 싶었다. 댄서 중에 아이디어와 기획이 좋은 친구들이 많다. 그런 친구들을 발견해서 장을 마련해주고 싶었다.”


-안무 아이디어는 어디서 오나.

“옛날 영상도 보고, 직접 공연을 보면서 가수들의 동작도 관찰하다보면 크리에이티브한 동작이 나온다. 춤을 많이 추다보면 관객들이 환호성을 유도하는 동작이 떠오른다. 그런 것들이 발전하고 세분화되면서 새로운 춤이 나온다.”


-처음 춤에 빠지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

“신발을 갖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됐다. 중2때 TV로 가수와 댄서들이 멋있는 신발을 신고 춤추는 걸 보면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동네 춤추는 친구들을 통해 그 신발의 출처를 알아가면서 자연스럽게 춤에 빠져들게 됐다. 비도 그때 만났다. 같이 춤추러 다니고, 해외 뮤직비디오 보면서 춤을 배웠다.”


-퍼포먼스 디렉터가 진화하면 또 어떤 직업이 나오게 될까.

“지금은 퍼포먼스 디렉터가 가수 한 팀을 맡아서 하지만, 앞으로는 나 같은 인물 여러 명이 한 가수를 맡게 되지 않을까. 공동작곡처럼 한 소절씩 한다든지, 서로 다른 전문분야를 융합시키는 방법이 사용될 것 같다. 작곡은 트랙메이커와 멜로디메이커, 편곡가, 믹싱 엔지니어, 마스터링 엔지니어 등 여러 전문가들의 손길을 거친다. 퍼포먼스 디렉터나 안무가도 업무가 세분화되고 전문적이게 되지 않을까.”


-자연스럽게 댄서의 위상도 더 높아질 것 같다.

“과거엔 댄서들의 꿈은 가수가 되는 것이었을 텐데, 이젠 안무가도 인터넷 개인방송도 하면서 셀러브리티가 된다.”


-앞으로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

“나의 노하우를 집약시켜서 훌륭한 퍼포먼스를 하는 가수를 배출시키고 싶다. 그건 모든 댄서들의 꿈일 거다. 내가 이루지 못했던 꿈, 아쉬웠던 무대들을 후배를 통해 이뤄보고 싶다.”

김규상 퍼포먼스 디렉터.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 김규상은?

▲ 1981년 5월10일생
▲ 2002년 비를 비롯한 JYP엔터테인먼트 가수들 댄서로 활약
▲ 2005∼2015년 댄스팀 D.Q 소속으로 씨스타, 에이핑크, 엠블랙, 포미닛, AOA, 현아, 이효리 등의 안무가
▲ 2016년 로엔엔터테인먼트 입사
▲ KBS 2TV ‘언니들의 슬램덩크2’
▲ 일본 걸그룹 첼시, 태국 남자솔로 나튜, 중국 걸그룹 SNH48와 여자솔로 왕롱 등 해외가수들 퍼포먼스 디렉팅

김원겸 기자 gyumm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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