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 브레이크] 골든타임 걷어찬 커미셔너의 내용 無 개선책

입력 2018-09-13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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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KBO총재가 12일 서울 강남구 KBO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야구대표팀 선발과정의 공정성 등 최근 논란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스포츠동아DB

정운찬(71) KBO 총재는 스승인 조순 전 경제부총리와 함께 국내에서 대표적인 케인스 학파 경제학자로 꼽힌다. 시장을 보이지 않는 손에만 맡겨서는 안 되며 적극적인 정책적 개입이 필요하다는 이론을 주장한다.

KBO리그는 거대한 시장이다. 야구경기를 중심으로 다양한 콘텐츠와 상품을 경기장, TV와 인터넷 중계를 통해 판매한다. 구단을 운영하는 기업의 이미지도 포함된다.

정 총재는 스스로를 소개할 때 공식 직함인 총재 대신 ‘커미셔너(Commissioner)’라고 즐겨 말한다. 총재와 커미셔너, 최고 결정 책임자라는 사전적 의미는 동일하다. KBO 10개 회원사가 리그의 발전과 질서유지를 위해 모든 권한을 위임한 최고 관리자다.

그러나 정 총재는 시장 질서를 어지럽히는 여러 문제점을 눈앞에 두고 개입하지 않았다. 언론과 여론은 6월 11일 오지환(LG 트윈스)이 2018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AG) 최종 엔트리에 선발되는 순간부터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러나 커미셔너는 “선수 선발의 권한은 전임 감독에게 있다”는 원칙론만을 고수하며 방임했다. 선동열 대표팀 감독은 오재원(두산 베어스)이라는 내야 멀티 플레이어를 외면하고 오지환을 선발했다. 엔트리는 대회 직전까지 교체가 가능했지만 대표팀의 ‘사실상’ 최종 책임자인 커미셔너는 어떠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그동안 야구대표팀이 연이은 국제대회에서 쌓은 빛나는 성과는 KBO리그 흥행과 리그확장, 새 구장 건설 등 모든 숙원을 한꺼번에 해결했다. 그만큼 중요한 문제였지만 커미셔너는 방관자에 불과했다.

시작은 작은 균열이었지만 여론은 계속 악화됐다. 야구대표팀은 사상 처음으로 ‘은메달을 응원한다’는 비난 속에 인도네시아로 떠났다. 커미셔너는 시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심각한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첫 번째 기회를 스스로 놓쳤다.

대표팀은 AG에서 실업선수가 주축인 대만, 일본을 상대로 고전했다. 대만에는 패했고 일본을 압도하지 못했다. 일본과 결승전에서는 3-0으로 이겼지만 안타는 4개뿐이었다.

두 번째 기회가 있었다. 자카르타에는 수십 여명의 국내 취재진이 있었다. 금메달을 자축 하기 전 선수선발 과정의 여러 문제점을 인정하고 시스템을 개선하겠다는 약속을 했다면 시장에 미치는 충격을 최대한 줄일 수 있었다.

세 번째 기회도 있었다. 자카르타에는 프로야구 9개 구단 대표이사들이 있었다. 각 구단은 여론의 심각한 동향을 대표에게 보고하고 있었다. 구단 대표들의 표정은 무거웠다. ‘귀국 직후 총재가 공식적으로 사과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그러나 정 총재를 비롯한 KBO 수뇌부는 망설이며 또 한번 중요한 기회를 스스로 날려버렸다.

결국 12일 정 총재는 뒤늦게 기자간담회를 자청, “외형의 성과만을 보여드린 것에 대해 죄송하다”, “AG 야구를 지켜보며 상처 받으신 분들에게 깊은 사과를 드린다”, “KBO가 국위 선양이 어떤 가치보다 우선한다는 과거의 기계적 성과주의에 매몰돼 있었음을 고백한다”, “선동열 감독과 코칭스태프의 결정을 존중한다. 하지만 국민 정서를 반영하지 못한 것에 사과하고 체제적인 보안을 하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팬들의 마음을 되돌릴 뾰족한 대책은 없었다. 정 총재는 “2014 AG 이후 관중과 시청률 감소 폭보다 현재 하락폭이 크지 않다. 리그 중단의 영향이다”고 말했지만 이는 당시와 현재의 상황 변화를 직시하지 못한 오판이었다. 아울러 여전히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안일한 현실인식을 갖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정 총재는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KBSA)와 한국미래야구협의회를 구성해 그동안의 문제점 진단과 국가대표 운영 시스템, 실업야구, 학생야구 등 전반적인 싱크탱크 역할을 맡긴다는 구상도 밝혔다. 그러나 구체적인 운영 계획은 없었다. 당장 시급한 문제점으로 꼽힌 국가대표 선발 시스템 개선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전임감독이 관장하고 과거 기술위원회의 장점을 살리는 노력을 통해 투명성을 높이겠다”고 말했다. 확정된 개선책은 없었다. 정 총재는 AG 이후 선동열 감독과는 단 한 차례도 만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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