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BIFF] 윤재호 감독 “한국에 온 ‘이름 없는 엄마들’이 많기에”

입력 2018-10-05 13: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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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뷰티풀 데이즈’의 윤재호 감독(왼쪽 두 번째)과 주연배우들이 4일 열린 개막 기자회견에서 영화를 소개했다. 해운대(부산)|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경계에 놓인 이들을 향해 오랜 시간 시선을 둔 감독은 자신의 첫 번째 장편 극영화에서도 어김없이 경계인을 꺼내들었다. 남북한의 경계, 인간과 인간의 위태로운 경계에서 살아가면서도 작은 희망을 놓지 않는 이들을 비추는 영화 ‘뷰티풀 데이즈’, 이를 만든 윤재호 감독이다.

4일 출발한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공개된 ‘뷰티풀 데이즈’는 최근 몇 년간 영화제 시작을 알려온 개막작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완성도와 메시지로 시선을 붙잡았다. 배우 이나영의 출연으로 먼저 주목받은 영화는, 20년간 스산한 삶을 견뎌온 엄마라는 인물을 통해 경계에 놓인 이들이 겪은 만남과 이별 그리고 재회의 이야기를 덤덤하게 풀어낸다.

한국 영화계서는 아직 낯선 편에 속하는 윤재호 감독은 스무 살 무렵 프랑스로 건너가 미술과 사진 등을 전공한 뒤 영화를 시작한 연출자이다. 국내서 그의 작품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때는 2016년. 다큐멘터리 영화 ‘마담B’가 소개되면서다. 같은 해 프랑스에서 열린 칸 국제영화제에서는 감독의 ‘마담B’와 단편영화 ‘히치하이커’가 비공식부문에서 소개되기도 했다.

당시 장편 극영화 ‘엄마’(가제)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힌 윤재호 감독은 2년 만에 이를 완성해 ‘뷰티풀 데이즈’라는 제목으로 내놓았다. 부산국제영화제가 개막한 4일 기자회견에 나선 감독은 영화가 어디서 출발했는지부터 이야기가 담은 의미까지 비교적 세밀하게 밝혔다.


● “‘뷰티풀 데이즈’는 역설적인 제목”

윤재호 감독은 “가족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이야기, 이별하고 다시 재회하는 의미에 대해 질문하는 영화”라고 ‘뷰티풀 데이즈’를 소개했다.

영화는 2017년의 서울, 2004년과 1997년의 중국을 역순으로 비춘다. 술집에서 일하는 엄마(이나영)를 찾아온 조선족 아들(장동윤)의 시선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이내 엄마가 겪은 20년의 시간을 훑는다. 아들이 우연히 손에 넣은 엄마의 일기장을 통해, 엄마의 과거가 하나씩 알아간다.

탈북한 젊은 엄마는 조선족 남자에게 팔려가 아이를 낳고, 비극적인 사건을 연이어 겪는다. 하지만 감독은 그런 비극을 견디면서도 삶을 이어가는 엄마를 향해 작지만 분명한 희망의 빛을 비추는 것을 잊지 않는다.

윤재호 감독은 프랑스 파리에서 살 때 만난 한 조선족 여성과 인연을 맺으면서 이 영화를 구상했다고 밝혔다. 당시 파리에서 민박집을 운영하던 그 여성은 9년동안 고향 중국에 두고 온 아들을 만나지 못하던 상황이다. 감독은 이들 모자의 이야기를 담은 단편 다큐멘터리 ‘약속’을 2010년 내놓았다.

“2011년부터 경계에 서 있는 사람들에 대한 작품을 해오고 있다. 경계를 생각하다보면, 그건 분단과 연결이 되고, 가족과 관련한 작품으로 이어진다. 파리에서 만난 조선족 아주머니의 아들을 직접 만나려고 중국에도 갔다. 그런 과정에서 더 시간이 지나 탈북 여성을 만나게 됐고, 그 분의 이야기를 3년간 찍은 영화가 ‘마담B’다.”

‘뷰티풀 데이즈’는 이런 과정이 쌓여 탄생한 작품이다.

윤재호 감독은 “(다큐멘터리를 통해)계속 실존 인물을 접하다보니, 그들의 이야기를 더 하고 싶었다”고 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 장르로는 한계가 분명했다. “다큐멘터리에선 할 수 없는 많은 이야기들, 개인적으로 하고 싶던 가족에 대한 의미를 극영화 안에 은유적으로 심어놓고 싶었다”고도 했다.

영화에서 주인공 이나영이 보내는 시간은 결코 영화 제목처럼 ‘아름다운 날들’이 아니다. 그런데도 감독은 왜 이처럼 역설적인 제목을 택했을까. 처음 ‘엄마’라는 제목이 붙었지만 촬영을 마치고 편집을 하는 과정에서 지금의 제목으로 바뀌었다.

“아이러니한 제목이 좋았다. 희망을 표현하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또 엄마와 가족에게 그런 날이 정말 올까, 기대나 설렘도 생긴다. 아들이 바라는 미래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영화 엔딩은 열어뒀다. 그때부터 이야기가 다시 시작될 것 같은 느낌으로.”

영화에는 엄마를 찾아 서울로 온 조선족 아들 젠첸을 빼고, 등장인물 모두 이름이 없다. 이나영이 맡은 주인공도, 그녀의 조선족 남편(오광록)도, 그녀를 끈질기게 괴롭히는 탈북 브로커(이유준)는 물론 그녀가 남한에 정착해 만난 남자(서현우)까지 전부 그렇다.

이런 설정 역시 감독의 의도다.

“탈북한 분들이나 경계에 놓인 사람들은 주로 가명을 쓴다. 정체가 불분명할 때도 있다. 본명을 쓴다고 해도 진짜 이름이 아닐 때가 많다. 그런 현실을 투영했다. 아이를 중국에 두고 한국으로 온 ‘이름 없는 엄마들’이 많기에 굳이 이름을 넣지 않았다.”


● 다음 연출 작품은? 호러 장르 준비

윤재호 감독이 그간 내놓은 다큐멘터리 영화들은 물론 이번 ‘뷰티풀 데이즈’까지 그의 작품에는 대부분 ‘엄마’가 주인공이다. 각자 처한 상황은 달라도, 자신의 방식으로 가족을 지켜나가는 엄마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감독은 영화는 결국 자신이 겪은 느낌과 경험에서 출발한다고 했다. “나에게 엄마는 가족을위해 희생하고 가족의 일에 늘 앞장서는 분”이라며 “14년간 프랑스에서 지내면서 가족과 헤어진 공허함과 그리움이 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그런 마음을 영화를 통해 표현하게 된다”고 했다.

이나영은 장편 극영화 연출이 처음인 윤재호 감독과의 작업에 어떤 망설임도 없이 나섰다. 감독이 쓴 시나리오를 볼 때도, 촬영을 마치고 완성된 영화를 확인한 지금도 신뢰를 변함이 없다.

이나영과의 작업에 만족하기는 감독도 마찬가지다. 감독은 이나영의 얼굴을 스크린을 꽉 채울 만큼 자주 담아내면서 그 자체로 마장센을 만들어낸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먼저 상영된 ‘뷰티풀 데이즈’는 11월 개봉한다. 영화가 관객의 평가를 앞두고 있는 지금, 윤재호 감독은 벌써 다음 작품의 연출 구상도 마쳤다. 단편영화와 다큐멘터리를 넘어 극영화까지 마친 그의 다음 영화 장르는 호러이다.

해운대(부산)|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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