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우의 오버타임] KBO의 교과서, MLB의 참고서

입력 2018-10-26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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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이숭용 단장(왼쪽)-LG 차명석 단장. 사진제공|kt wiz·스포츠코리아

KT 위즈와 LG 트윈스는 얼마 전 전격적으로 단장을 교체했다. 이를 두고 ‘가을잔치에 쏠려야 할 관심을 분산시켰다’는 비판 여론이 적지 않다. 물론 달리 생각해볼 여지도 충분하다. KT와 LG 모두 그만큼 다급한 처지이기 때문이다. KT 이숭용 단장과 LG 차명석 단장이 야구현장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새 바람을 불러온다면 분명 환영할 일이다. 선수 출신 단장을 앞세워 성공한 타 구단들처럼 현장과 원활히 교감하고 소통한다면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

선수 출신 단장의 성과가 부각되고 있는 흐름에서 나온 LG와 KT의 이 같은 결정에 대해 최근 만난 한 야구인은 조금 다른 각도에서 조심스럽게 우려를 전했다. “행정력이 없는 야구인, 감독 경험이 없는 코치 출신이 단장을 맡다보면 어려움도 많이 겪을 것이다. 나름대로 프런트에서 오래 경력을 쌓은 야구인이라면 몰라도 시행착오가 적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야구인들을 위한 일자리가 늘어나고, 그 영역이 확대되는 일임에도 마냥 반길 일만은 아니라고 했다.

KBO리그는 어느덧 지출 기준으로 연간 4000억원 규모의 시장으로 성장했다. 성적 못지않게 경영이 중요해졌다. 전적으로 모기업에 의존하던 시절과는 달라져야 한다. 더욱이 몇몇 구단은 모기업의 지원이 예전만 못하고, 소유구조에도 변화가 생겼다. 완벽하게 자생력을 갖추기까지는 시간이 걸릴지라도 최소한 적자폭은 줄여야 한다. 물론 ‘성적만한 마케팅 요소는 없다’고 항변하면 할 말이 없지만, 적어도 국내 다른 프로스포츠 종목에선 KBO리그가 어떤 길을 걸을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스포츠산업’으로 당당히 대접받고 성장하려면 그에 걸맞은 체제를 갖춰야 한다.

메이저리그(MLB)와는 상반되는 현상이다. MLB는 이미 아이비리그를 비롯한 명문대 출신의 엘리트들이 장악하고 있다. 경영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빌리 빈의 ‘머니볼’이 성공한 뒤로는 수학·통계에 기반을 둔 세이버메트릭스가 각광받고, 데이터 분석 전문가들이 단장을 비롯한 프런트 내 주요 보직을 꿰차고 있다. 이들은 선수 스카우트에 그치지 않고 경기에도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 수년 새 거대한 트렌드로 자리 잡은 다양한 수비 시프트와 타구의 발사각도, 강력한 불펜야구 등이 그 결과물이다. 전통적 야구에서 벗어나 변화와 혁신을 꾀하고 있다.

MLB에 비춰보면 KBO리그는 오히려 뒷걸음질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른바 ‘야알못’ 사장들이 자신을 위한 과외교사 또는 차기 사령탑 보험용으로 선수 출신 단장을 선호한다는 얘기도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스포츠산업 또는 경영 전문가들을 적극적으로 영입하는 대신 현장과 혼연일체가 돼 성적을 끌어올리는 데만 골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극심한 타고투저와 지속적인 특정팀의 독주로 상징되는 KBO리그의 경기력과 수준은 과거보다 떨어진다는 평가가 만만치 않다.

얼마 뒤면 대학수학능력시험이다. 그 때쯤이면 또 이런 얘기가 들려올 것이다. “교과서를 중심으로 무리하지 않고 규칙적으로 공부했다”는 고득점 노하우다. 이를 어떻게 이해하는가는 각자의 자유다. 다만 ‘철저한 복습과 예습을 바탕으로 응용에도 충실했다’는 정도의 공통적 해석은 가능할 듯하다. 그리고 잔뜩 꼬아놓은 응용문제를 잘 풀려면 참고서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지금의 MLB는 교과서를 넘어 참고서까지 달달 외운 채 경영이든 경기력이든 수준향상을 꾀하고 있는 양상이다. 그렇다면 KBO리그는 어디쯤일까. 교과서만큼은 철저히 파고들었던 과거에 비춰 더 발전했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스스로 거대한 거품을 만들어놓고도 문제의식과 해법 찾기에선 단순함이 돋보이는 그들이라 걱정스럽다.

정재우 전문기자 jac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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