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유해진 “또래 명품 배우들과 한 달간 동고동락…쉼표 같은 작품이었죠”

입력 2018-10-30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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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완벽한 타인’은 배우 유해진에게 “쉼표 같은 작품”이 됐다. 최근 규모가 제법 큰 상업영화를 이끄는 그가 오랜만에 현실적이면서도 인간미 넘치는 인물을 맡고 관객과 만남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 31일 영화 ‘완벽한 타인’으로 관객과 만나는 유해진

명품 배우 염정아 조진웅 이서진 등
7명의 남녀들, 휴대전화 진실 게임
한정 공간서 이야기 이끄는 힘 일품
“제 휴대전화요? 음악·사진만 가득”


어떤 질문을 던져도 두세 문장을 넘기지 않는 습관은 배우 유해진(48)의 ‘공적인’ 화법이다. 그렇다고 해서 할 말을 거른다는 의미는 아니다. 필요한 말은 빼놓지 않으면서도 간결하게 내놓는 그는 자신의 상황은 물론 참여한 작품을 설명하면서도 포장하는 대신 있는 그대로 전하려는 쪽에 속한다.

‘담백하다’는 표현이 누구보다 어울리는 유해진이지만 31일 개봉하는 새 영화 ‘완벽한 타인’(감독 이재규·제작 필름몬스터)을 소개할 때는 이전과 달랐다. “이런 이야기를 잘 안 하는데…”라고 운을 뗀 뒤 “보면서 나 역시 힐링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광주에서 한 달간 촬영하며 배우들끼리 ‘괜찮은 작품이 나올 것 같은데?’ ‘좋지 않아?’ 그런 말을 가끔 나눴다. 배우가 여럿이니 책임을 나눠 맡을 수 있어서 마음도 한결 편하다.”

영화 ‘완벽한 타인’에서의 유해진.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 “‘쉼표’ 같은 마음으로 참여한 영화”

최근 유해진은 어느 때보다 왕성한 작품 활동에 나서고 있다. 출연하는 영화의 편수가 크게 늘지 않았지만 작품에서 맡는 역할의 비중과 무게가 과거보다 늘었다. 3년 전 주연영화 ‘럭키’가 크게 흥행하면서 이제 그는 ‘비중 있는 조연’보다 ‘주연’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얼마 전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우연히 소속사 홈페이지에서 내 프로필을 봤다.(웃음) 언제부터인가 매년 한두 편씩 작품을 하고 있더라. 아, 다행이다. 복 받은 거지. 지치지 않느냐고? 힘들 때가 왜 없겠나. 그런 마음이 들 때면 ‘나중엔 하고 싶어도 못할 텐데’ 생각하면서 힘을 낸다.”

가까운 이들과 술잔을 기울일 때도 가끔 이런 대화를 나눈다고 했다. 그럴 때면 유해진은 “그래봤자, 이렇게 작품을 할 수 있는 시간도 몇 년 남지 않았다”고 말한다. 영화 제작진이나 관객이 자신을 찾지 않을 때가 올 수 있다는 의미다. 냉정한 자기평가다.

“대중의 시선은 혹시 다를 수 있어도, 내가 체감하는 건 또 다른 문제다. 훗날 지금 이런 날을 그리워하겠지. 그 때 ‘예전엔 그랬지’ 하면 뭐하겠나. 할 수 있을 때 (작품을)해야지.”

유해진에게 ‘완벽한 타인’은 “쉼표 같은” 영화다. 지난해 ‘1987’ 촬영을 마치고 곧장 한글을 다룬 시대극 ‘말모이’를 찍었고, 현재 영화 ‘전투’ 촬영에 모든 시간을 쏟는 입장에선 더욱 그렇다. 어디까지나 ‘일터’나 다름없는 영화와 그 촬영 현장이 어떻게 ‘쉼표’가 될까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 하지만 일단 ‘완벽한 타인’을 보고나면 유해진의 마음은 충분히 짐작된다.

영화는 오랜만의 부부 모임에서 휴대폰 게임을 시작하는 40년지기 친구들의 이야기다. 집들이에 모인 커플 7명이 식탁 위에 각자의 휴대폰을 올리고 걸려오는 전화부터 문자메시지, 이메일을 공개하는 내용의 게임. 식사하는 내내 각자의 비밀이 휴대폰을 통해 하나둘씩 드러난다.

영화는 심각하지 않다. 객석을 포복절도케 하는 코미디가 곳곳에서 터진다. 위선적인 인간군상이 드러나는 순간도 여러번. 그럴 땐 섬뜩한 한기가 느껴진다. 무엇보다 거실 테이블로 공간을 한정해놓고 115분간의 이야기를 완성한 솜씨가 일품이다. 유해진을 비롯해 염정아 조진웅 이서진 등 베테랑 배우들의 힘이다.

“함께한 배우들이 비슷한 나이다. 한 달간 거의 매일 같이 생활하다보니 공유하는 게 많았다. 특히 이서진 씨의 인간적인 면을 많이 봤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람들을 잘 챙기고 그걸 생색내지도 않더라. 군더더기 없이 가까워질 수 있었다.”

배우 유해진.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 “내 휴대폰에는 음악과 사진”

영화에서 유해진은 ‘개천에서 용났다’는 말로 상징될 법한 S대 출신 변호사다. 홀어머니를 모시는 가부장적인 남편인 그는 아내(염정아)의 옷부터 화장까지 일일이 참견하기 일쑤. 아내가 술이라도 한 모금할라치면 눈을 치켜뜬다. 보수적이면서도 까칠한 40대 후반 남자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쉽게 표현하면 ‘꼰대’처럼 보이기도 한다.

유해진은 “실제로도 어쩔 수 없이 꼰대 같은 모습이 점점 생기는 것 같다”고 했다. 어떨 때 ‘꼰대 같다’고 느낄까.

“문득 내가 사소해지거나 넉넉하지 못한 마음이 들 때. 주변에 꼭 한마디라도 더 하려고 할 때? 후…, 그러면 안 되는데. 그렇게 늙지 말아야지, 주의하지만 잘 안 된다. 하하!”

이런 생각과 달리 대중은 그를 친근한 ‘형’처럼 느끼는 듯하다. 유해진을 언급하는 댓글이나 SNS 평가만 봐도 그렇다. 악성 댓글은 유해진과는 먼 이야기. 자신을 친근하게 대하는 대중의 시선을 유해진도 체감한다고 했다.

“얼마 전 병문안 차 어느 대형병원에 갔다. 로비에 들어서는데 안내하는 분이 알아보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달려와서는 어디가 아파 왔느냐고 묻더라. 병문안을 왔다니까 그제야 안심하더라. 좋은 미소를 짓고 다가오는 분들에게 늘 고맙다.”

유해진은 요즘에도 아침마다 산에 오른다. 그의 ‘산사랑’은 예능프로그램 등을 통해서도 익히 알려진 사실. 최근에는 수영과 자전거 취미가 새로 생겼다. “진득하게 한 가지 운동만 하면 몸 한 곳이 고장난다”며 “주기적으로 바꿔줘야 탈이 덜 난다”며 자신만의 ‘운동론’을 소개했다.

영화에서처럼 친구들끼리 모여 휴대폰 속 모든 걸 공유하는 게임을 제안받는다면 유해진은 과연 응할까. “커플끼리 하지 않고 친구들과 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 않을까. 친구니까 이해해주기도 할 거고.”

배우 유해진.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게임이 크게 두렵지 않다는 걸 보니 유해진의 휴대전화에는 ‘비밀’이 적은 듯하다.

“내 휴대전화엔 거의 음악과 사진뿐이지. ‘배캠’(배철수의 음악캠프)을 듣다가 좋은 음악을 발견하면 그 노래가 실린 CD를 산다. 요즘엔 CD를 구하기도 쉽지 않아 교보문고에 주문해 놓기도 한다. CD를 받으면 그걸 컴퓨터로 옮기고, 다시 휴대전화에 넣는다.”

스트리밍이라는 간편한 방법이 있지만 유해진에겐 먼 이야기다. “스트리밍으로 들으면 음악이 내 소유가 아닌 것만 같다. 휴대전화에 차곡차곡 넣어야 내 것이 되는 것 같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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