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수의 라스트 씬] 프레디 머큐리 “사실은 수줍은 성격…무대 서면 두려움 사라져”

입력 2018-11-30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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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인기는 그룹 퀸의 음악을 사랑한 팬들까지 극장을 찾으면서 식을 줄 모른다. 퀸의 상징과도 같은 프레디 머큐리가 세상을 떠나지 않고 음악을 하고 있었다면 그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사진은 영화 속 프레디 머큐리를 완벽 재연한 라미 말렉의 모습. 사진제공|이십세기폭스코리아

■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돌풍 속 프레디 머큐리 가상인터뷰

“퀸 멤버들, 처음부터 박터지게 싸웠어요
근데 누구도 안 나갔죠, 나가면 지는 거니까
내 에이즈 폭로한 폴…정말 믿을 수 없어요
그도 에이즈로 세상을 떠났으면서…”


“난 행복하고 싶다.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

음악은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고 했다. 물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다만 “무엇을 하든 즐기며 그저 행복하고 싶을 뿐이다”고 했다. 그래서 음악은 인생을 행복하게 하는 최대의 동인이었을 것이다. 세상을 떠나기 직전, 매니저 짐 비치에게 남긴 말도 그런 생의 소망을 담고 있었다.

“내가 남긴 음악도 당신 마음대로 (처리)해. 단, 절대 날 지루하게는 만들지 마!”

하지만 생은 또 얼마나 외로운 길인가. 전 세계 수많은 이들의 환호가 쏟아지는 무대 뒤편에서 오랜 세월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외로움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래도 그것 역시 즐길 줄 알았다. “혼자서 살지만 그래도 즐기고 있다”면서 “외로운 인생일 수도 있지만, 결국 내가 선택한 것이니 즐기며 살 수밖에”라고 말했다.

그룹 퀸의 리드보컬이자 상징 프레디 머큐리. 그는 1991년 11월24일 45살의 아직 젊었던 나이에 세상과 이별했다. 하지만 그와 그가 남긴 음악과 노래는 여전히 불려지며 전설이 되었다. 끊이지 않는 음악적 영감을 되새기며 생의 마지막 시기를 보낸 스위스 몽트뢰에서 프레디 머큐리는 동상으로 서 있다. 생전 팀 동료 브라이언 메이(기타), 로저 테일러(드럼), 존 디콘(베이스)은 이 곳에 그의 묘비를 세웠다. 브라이언 메이는 묘비명에 먼저 떠나간 친구를 “인생을 사랑한 사람, 노래를 부른 사람”이라고 가리켜 새겨 넣었다.

프레디 머큐리를 만났다. 이 가상의 인터뷰는 브라이언 메이가 쓴 묘비명의 문구가 과장이 아니었음을 드러낼 것이다.

그룹 ‘퀸’.


-제가 당신의 음악을 처음 알게 된 건 중학생 시절이던 1980년대 초중반이었습니다. 당시 한국의 10대와 20대들은 가요보다는 팝음악을 들으며 자랐습니다. 정말 많은 아이들이 당신과 당신의 밴드 퀸을 사랑했습니다.

“고맙습니다. 1980년대 초중반이면 저희가 한창 투어를 돌며 활동할 때군요. 참,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가 한국에서는 금지곡이었다면서요?”


-“총으로 한 사내를 죽였다”는 가사 내용 때문이었어요. 폭력을 조장한다며 오랜 시간 방송에서 들을 수가 없었죠. 어떤 이들은 당신의 성적 취향과 정체성을 은유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하! 전 노래를 분석하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요. 사람들이 내 노래와 우리 음악을 나름대로 해석하고 자신들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듣는 것이겠죠. 내가 노랫말을 일일이 분석해준다면 듣는 이들은 무척 따분해 할 거에요.”


-‘위 아 더 챔피언(We are the Champion)’의 경우도 비주류를 옹호하는 정치적 의미로 읽는 시선도 있습니다.


“축구를 떠올리며 쓴 노래입니다. 축구 팬들이 좋아하고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를 만들고 싶었어요. 실제로도 응원가로 쓰이잖아요. 난 그저 노래를 부르는 사람입니다. 노래에 정치적 메시지를 담지는 않아요. 모든 사람을 위해 음악을 하는 것이죠. 음악으로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음악이 소비되는 것 자체로도 충분합니다.”


-하지만 가수에게 노래는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죠.

“내 노래는 대부분 나에 관한 얘기이기는 합니다. 아니면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돌이켜보면 내가 누군가에게 좋은 연인이 되어본 적이 없는 것 같기도 합니다. 1985년 발표한 ‘마이 러브 이즈 데인저러스(My Love is Dangerous)’가 바로 그런 생각에서 부른 노래죠. 그런 게 내 사랑인가 싶기도 해서 ‘나의 사랑은 위험하다’고 한 거죠. 하지만 그 누가 안전한 사랑을 원하겠어요? ‘마이 러브 이즈 세이프(Safe)’ 하면 하나도 안 팔릴 텐데. 하하하!”


-사랑에 관한 말씀을 하셨으니. 좀 민감한 질문을…. 당신은 메리 오스틴이라는 이성의 연인을 한때 사랑했습니다. 하지만 양성애자임을 고백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웬만하면 그런 사생활에 관한 질문은…. 흠…. 예! 1970년 즈음 브라이언 메이의 소개로 메리를 처음 만나 사랑했습니다. 청혼도 한 적이 있죠. 짧지 않은 동거 기간도 있었죠. 하지만 당신이 내 음악을 처음 듣기 시작했다는 그 즈음 내 성적 정체성과 취향을 깨닫기 시작했어요. “넌 양성애자가 아니고 게이야”라고 메리가 울면서 말할 정도였으니까요. 메리와 영원히 사랑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어느 순간 저도 모를 미묘한 감정들이 몰려오더군요. 하지만 메리와 전 서로를 떠나지 않았어요. 소울 메이트가 있다면 바로 메리죠. 음악인으로 성공했지만 타인과 관계 특히 사랑을 이어가는 것은 가끔 방해를 받기도 했어요. 제게 사랑은 간혹 모든 걸 잃게 하는 러시안룰렛 같은 것이기도 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면 투어 매니저였던 폴 프렌터가 당신의 성적 취향을 자극한 것 같은데, 사실인가요? 폴은 그와 관련한 당신의 성적 취향과 사생활, 심지어 에이즈 투병 의혹까지 폭로했지요.

“영화에서처럼 폴이 날 자극한 건 없습니다. 그가 매니저로 일할 당시 브라이언과 로저 테일러 등 멤버들이 그를 정말 싫어했어요. 이들이 영화 제작에 참여했다니 그런 에피소드를 설정한 건 아닐까 생각합니다. 다만 폴이 1987년 5월 ‘더 선’에 제 성적 취향과 에이즈 감염 의혹을 폭로한 건 정말 믿을 수 없었어요. 그것도 돈을 받고. 제 두 친구가 에이즈로 세상을 떠난 사실까지 공개했어요. 그들을 팔아서 돈을 번 셈이었죠. 폴은 1991년 8월 에이즈로 세상을 떠났지요. 어쨌든 안타까운 일입니다.”


-엇비슷한 질문을 수없이 받아 보셨죠?

“인터뷰란 게 다 그렇죠, 뭐! 하하! 음악이 전부는 아니니까요. 스포츠동아가 음악전문 신문도 아니고. 음악 이외의 삶, 이를테면 취미나 성격 등등, 뭐 주제가 뭐냐에 따라 다른 것이겠죠. 화제가 되는 얘기도 있고, 관심사도 대부분 비슷하니까요. 부담 갖지 말아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한 장면. 사진제공|이십세기폭스코리아


-강렬한 외모와 에너지 넘치는 무대 매너, 거침없는 표현 같은 것 때문일까요? 굉장히 괴팍한 분일 거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하! 사람들이 날 만나면 불안해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까요? 그래도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지 말아요. 제가 성격이 강하긴 합니다. 졸음은 질병이라고 생각해요. 위험을 무릅쓰는 것도 두렵지 않아요. 무대 위에서도 외향적입니다. 하지만 내면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죠. 드러머인 로저가 그랬잖아요. “아무도 프레디를 정말로 알지 못했다. 그는 수줍고 상냥하고 친절했다”고.”


-성격이 강하다면 팀 활동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요.


“멤버들 사이에 갈등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죠. 퀸은 늘 해체설에 시달리기도 했어요. 하지만 실제 해체한 적은 없잖아요. 우린 대학생 시절부터 서로 잘 아는 사이죠. 처음 만났을 때부터 싸웠어요. 음악과 관련해선 더 그랬죠. 다들 주장도 강하고 자부심도 크고, 더욱이 넷 모두 작곡을 할 줄 아는 흔치 않은 밴드이죠. 하지만 갈등이 우릴 하나로 만들어주죠. 다들 성격이 강해서 밴드에서 나가는 건 곧 지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하! 또 저마다 스타일이 달라서 각기 만든 노래 역시 달랐죠. 서로 비슷했다면 지겨워서 각자 혼자 앨범을 내려 했겠죠. 우리 앨범은 네 사람의 작은 솔로 앨범 네 장을 하나로 묶은 것입니다.”


-그만큼 완벽함을 추구했다는 말씀인가요.


“그렇습니다. 비록 완벽함이 불가능하다고 해도 우린 그러려고 노력했어요. 존 디콘을 베이시스트로 영입하기 전에도 최고의 연주자를 원했어요. 그래서 시간도 오래 걸렸고요. 우리는 꼼꼼합니다. 스태프에게는 화가 날 일인지는 모르지만, 완벽함과 꼼꼼함은 관객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한 것이니까요.”


-그토록 아끼고 사랑한 대중은 이제 한 편의 영화로 당신을 추억하고 있습니다. 내년에는 73살 생일(9월5일) 이틀 뒤 스위스 몽트뢰에서 축하행사 ‘프레디 포 어 데이(Freddie For A Day)’가 열립니다.

“감사할 따름이죠. 브라이언과 로저, 매니저인 짐이 제 이름을 따서 ‘머큐리 피닉스 재단’을 설립해 매년 여는 행사죠. 많은 분들이 제 의상을 입고 참여하고 있습니다. 에이즈 퇴치를 위한 자선무대로, 수익금 역시 그것을 위해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나이 얘기를…. 하하! 전 사실 70살까지 살기를 바라지는 않았어요. 너무 지루할 것 같았죠. 어딘가 다른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겁니다.”


-몽트뢰일까요.

“몽트뢰를 정말 사랑합니다. 평화로운 곳이죠.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몽트뢰의 레만호를 바라보노라면 음악적 영감이 무수히 떠올라요. 1991년 5월 제 마지막 노래 ‘These are the Days of Our Lives’를 녹음하며 서 있기조차 힘든 상태에서 두 잔의 보드카가 힘이 되어준 것처럼, 몽트뢰는 제 삶의 또 다른 안식처였어요. 그렇게 음악만을 하고 싶었어요. 난 충실한 삶을 살아왔고, 내가 가진 모든 것을 하며 살았습니다. 앞으로도 노래를 부르고 또 부르고 싶어요. 나는 스타가 되지 않을 겁니다. 전설이 될 겁니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한 장면. 사진제공|이십세기폭스코리아


■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는?

전국 500만 관객을 돌파한 흥행작. 프레디 머큐리의 삶을 중심으로 그룹 퀸의 이야기를 그렸다. 브라이언 싱어 감독이 연출하고, 배우 라미 말렉이 완벽에 가까운 ‘싱크로율’로 프레디 머큐리의 이야기를 펼쳤다. 퀸의 멤버 브라이언 메이, 로저 테일러, 존 디콘을 빼닮은 배우 귈림 리, 벤 하디, 조셉 마젤로 역시 주연이다. 하지만 핵심은 음악. ‘보헤미안 랩소디’ 등 퀸의 많은 명곡은 물론 라이브 공연의 정수, ‘라이브 에이드’ 무대가 영화의 절정을 이루며 많은 관객의 환호를 얻고 있다. 프레디 머큐리는 생전 “언젠가 나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를 한 편 갖는 상상도 해본다. 물론 거기서 내가 중요한 부분을 맡게 되겠지”라고 말한 바 있다.(‘퀸의 리드싱어 프레디 머큐리 - 낯선 세상에 서서 보헤미안 랩소디를 노래하다’) 상상은 현실이 됐다. 추억은 그렇게 살아 숨쉰다.

>>> 참조 및 인용

·프레디 머큐리 공식 사이트
·1984년 뮌헨 인터뷰 동영상(유튜브)
·1985년 ‘The Bigger The Better’ 인터뷰 동영상(유튜브)
·프레디 머큐리의 마지막 인터뷰 동영상(유튜브)
·네이버 지식백과 및 나무위키
·책 ‘퀸의 리드싱어 프레디 머큐리 - 낯선 세상에 서서 보헤미안 랩소디를 노래하다’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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