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모의 공소남닷컴] 메간 헤스 울린 심은진의 ‘500평 매직’

입력 2018-12-21 05:45: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전시회 대형 포스터 앞에서 포즈를 취한 심은진(왼쪽)과 메간 헤스. 베이비복스 출신의 가수 겸 배우 심은진은 전시장의 9개 존을 설계하고 꾸미는 공간디자이너로 참여했다. 사진제공|제이앤존

■ 메간 헤스전 공간디자이너로 참여한 심은진

‘기둥 30개 있는 500평을 디자인해달라’
“사흘간 시작도 못 하고 도면만 쳐다봤죠”
‘패션 거물’ 메간 헤스도 감동 눈물 펑펑


“요즘 심은진 뭐해?”. 궁금한 사람은 서울 성수동 갤러리아포레 더 서울 라이티움으로 가면 된다. 운이 어지간히 없지 않으면 전시장에 상주하다시피 하는 심은진을 볼 수 있고, 운이 살짝 따라준다면 심은진으로부터 직접 전시작품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곳에서는 메간 헤스 아이코닉전이 열리고 있다. 메간 헤스는 호주 출신의 세계적인 패션 일러스트레이터. 무명작가 생활을 전전하다 캔디스 부쉬넬의 ‘섹스 앤 더 시티’ 삽화를 그리게 되면서 일약 세계 패션계의 거물이 된 인물이다. 루이비통, 샤넬, 크리스찬 디올, 프라다, 지방시 등 명품 브랜드들이 메간 헤스에게 앞 다퉈 손을 내밀었다. 아마 우리가 알고 있는 럭셔리 브랜드들 중 그와 협업하지 않은 곳을 찾기가 더 어려울 것이다.

가수 겸 배우 심은진은 이번 메간 헤스 아이코닉전에 공간디자이너로 참여했다. 데이비드 라샤펠, 미이클 라우, 오드리 헵번 등 대형 전시회를 국내에서 성공시킨 최요한 예술감독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최요한 감독은 2013년 심은진의 첫 개인 전시회를 기획한 인연도 있다.

그래서 덥석 맡기는 했는데 막상 공간을 보고나서는 다리가 풀릴 지경이었다. “생각해 보세요. 텅 빈 500평 공간을 전시장으로 꾸며야 하는데 설상가상 모양도 다르고 크기도 다른 기둥이, 보이는 것만 30개가 있더라고요.”

최 감독은 심은진에게 “뻥 뚫린 공간으로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다. 기둥 30개가 사방에 아름드리나무처럼 서 있는 장소를 어떻게 ‘뻥 뚫린 공간’으로 만들 수 있지? 심은진은 “사흘 동안 시작도 못 하고 도면만 쳐다보고 있었다”라고 했다.

메간 헤스의 책과 자료를 뒤지고, 최 감독과 많은 대화를 나누고(싸우고), 연구와 고민을 거듭한 끝에 슬슬 공간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9개 존의 각 개성을 최대한 살릴 것, 관람객의 동선을 미로처럼 만들되 불편함이 없을 것, 기둥은 가리거나 이용할 것, 무엇보다 기승전결의 드라마가 있을 것.

수정 많기로 악명 높은 최요한 감독이 “내 전시사상 최소한의 수정이 이루어졌다”라고 할 정도로 멋진 전시공간이 완성됐다.

전시를 보기 위해 내한한 메간 헤스 역시 매우 흡족해 했다는 후문이다. 자신의 작품들로 채워진 공간들을 차례로 둘러 본 메간 헤스는 마지막 ‘핑크존’에서 수백 송이의 장미로 뒤덮인 로즈드레스를 마주하자 펑펑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최 감독의 반대를 무릅쓰고 탄생하게 됐다는 핑크존은 메간 헤스에 대한 심은진의 헌사이자 특별한 선물이었다.

심은진이 가장 심혈을 기울인 공간은 ‘캐리존’이다. 섹스 앤 더 시티에서 저널리스트로 나오는 그 캐리다. 심은진은 드라마 속 캐리의 방을 ‘재현’하지 않고 ‘재해석’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색깔은 화이트. 작가 특유의 정돈되지 않은 책상. 글을 쓰는 작가이니 블랙으로 포인트. 캐리 하면 역시 구두니까 …’.

이렇게 심은진의 아트워크로 완성된 공간이 캐리존이다. 심은진은 “보는 이들마다 각자 생각하는 캐리가 있을 것이다. 스스로 답하시라는 의미를 공간에 담고 싶었다”라고 했다.

10월에 오픈한 메간 헤스 아이코닉전은 원래 이달 30일까지 전시할 예정이었지만 관람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자 내년 3월30일까지로 연장됐다. 전시장에서 심은진을 볼 수 있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