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리뷰] ‘오이디푸스’ 무대 위 황정민의 장악력이란

입력 2019-01-31 10: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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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분 동안 황정민의 연기력에 사로잡혔다. ‘오이디푸스’를 보는 내내 마법이라도 걸린 듯 어느 샌가 그가 움직이는 방향과 섬세한 연기에 고개와 눈이 돌아간다. ‘연극은 배우의 작품’이라는 수식어가 맞아떨어지는 순간이다.

1월 29일부터 2월 24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공연되는 연극 ‘오이디푸스’(연출 서재형)는 ‘해롤드 앤 모드’, ‘로미오와 줄리엣’, 그리고 지난해에 연 ‘리차드 3세’에 이은 샘컴퍼니의 네 번째 라인업이자 배우 황정민의 연극 복귀작이기도 하다.

고대 그리스 3대 비극 작가 소포클레스의 작품인 ‘오이디푸스’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해 그 사이에서 자식을 둘 것이라는 신탁을 받은 어린 오이디푸스가 어머니에게 버려지지만 신에게서 받은 운명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비극적인 이야기를 그렸다. 작품으로도 유명하지만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어린아이가 어머니를 독차지하고 아버지를 경쟁상대로 여기고 증오하는 심리)라는 용어를 창시하면서 더 알려지기도 했다


앞서 말했듯, ‘오이디푸스’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근친상간을 저지를 것이라는 운명을 지닌 자다. 이 사실을 안 코린토스의 왕자인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고향을 벗어나 테베에 도착한다. 이후 ‘늙지 않는’ 이오카스테와 혼인을 하며 테베의 왕이 된다. 나라에 극심한 가뭄이 들자 신의 음성을 들으러 간 크레온에 의해 이오카스테의 전 남편인 라이오스의 살인범을 찾아내야 가뭄이 해결될 것을 알게 된다. 오이디푸스는 라이오스의 살인범을 찾아내려고 하던 중 그를 살해한 사람이 자신이며 이오카스테가 자신을 버린 친엄마였음을 알게 된다. 운명을 피하려 도망갔지만 결국 운명에 마주한 오이디푸스는 테베를 떠난다.

서재형 연출의 무대 미학과 황정민의 에너지로 똘똘 뭉쳐 탄생된 ‘오이디푸스’는 극 중 대사처럼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인간의 운명과 ‘내 발로 걸아가겠다’는 의지를 동시에 보여준다. “2019년에 새로운 인간상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던 서재형 연출은 먼지를 껴안고 고향에서 벗어나는 오이디푸스의 발걸음을 보여주는 장면을 반복적으로 넣으며 ‘의지’를 가진 인간의 모습을 강조했다. 이 모습에서 고전의 이야기지만 현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공감대를 형성하게 한다.

이를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사람은 당연 황정민이다. 과거의 기억과 함께 맹인 예언자 테레시아스, 코린토스 사자, 양치, 그리고 아내 이오카스테의 이야기를 들으며 감정이 휘몰아치는 오이디푸스를 연기하는 황정민은 슬픔과 막막함 그리고 자신에 대한 환멸을 무대 위에 그대로 쏟아내며 감정을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달된다.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운명, 그것이 인간”, “나는 살았고 그들을 사랑했고 그래서 고통스러웠다”, “나는 괜찮소. 내 발로 걸어가겠소” 등 오이디푸스의 여러 감정이 섞인 대사를 읊는 황정민의 모습을 보며 코를 훌쩍거리며 눈물을 닦는 관객들의 모습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리차드 3세’에 이어 ‘오이디푸스’로 또 다시 고전에 도전한 황정민은 그동안 스크린에서 접했던 모습과는 또 다른 얼굴로 관객들을 만난다. “무대에서 1시간 30분 동안 연기하고 있을 때 제일 자유롭다”고 말한 황정민은 무대를 날아다니듯 연기하며 장악한다. 1년에 한 편씩 연극을 하고 싶다는 그의 마음과 무대 위에서 자유롭게 연기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의 내년 무대 복귀작이 궁금해질 정도다.

‘이오카스테’ 역을 맡은 배해선은 황정민과 함께 뜨거운 연기 호흡을 펼친다. 특히 자신이 버렸던 아들이 자신의 남편이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감정을 폭발시키는 배해선은 극 중의 백미이기도 하다. 이 외에 ‘코러스 장’역의 박은석, ‘코린토스 사자’ 역의 남명렬, ‘크레온’역의 최수형, ‘테레시아스’역의 정은혜 역시 열연을 펼친다. 또 테레시아스와 오이디푸스와 마주하는 장면에서 나오는 까마귀를 연기하는 앙상블들의 호흡도 인상적이다.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제공|샘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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