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서만 아홉 차례 흥행…구름 관객 난리였지”

입력 2019-03-28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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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100년, 최고의 작품으로 선정된 영화 ‘아리랑’은 1926년 제작됐다. 1945년 광복 이후, 6.25전쟁 이후까지 상영되며 인기를 얻었다. 사진은 영화 속 한 장면. 스포츠동아DB

한국영화 100년 ‘최고의 작품’|① 1926년작 나운규의 ‘아리랑’

일제 지배 조선 민족의 현실 은유
1926년 개봉 당시부터 매진 행렬
광복 이후 재상영…‘아리랑’ 열풍
원본 필름 남아 있지 않아 아쉬움


1919년 10월27일 ‘의리적 구토’ 이후 시작된 한국영화 100년의 역사는 수많은 걸작을 관객에게 선사해왔다. 당대 대중의 감성을 어루만지며 진한 감동과 웃음과 눈물을 안겨준 대표적 작품이 여기 있다. 창간 11주년을 맞은 스포츠동아가 감독, 제작자, 평론가 등 100인의 영화 전문가들에게 한국영화 100년, 그 최고의 작품을 꼽아 달라고 요청해 얻은 답변이기도 하다. 그 걸작들을 시대순으로 소개한다.

“사람이 구름떼 같이 모여들고 기마대순사가 늘어서고, 우는 사람, 아리랑을 합창하는 사람,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단성사 앞은 난리였어요. 상영시간 한참을 앞두고 표는 매진이었고, 표를 못 산 사람들이 아우성치고….(중략) 영화 시작하고 끝날 때마다 밀려들고 밀려나 가는 손님들이 법석을 피우는 거다.”

1926년 10월1일 그리고 그 직후 서울 종로의 단성사 안팎에서 벌어진 풍경이다. 1990년 5월18일자 한겨레신문은 열 다섯 나이에 단성사에 내걸린 영화의 여주인공으로 출연했던 일흔일곱살의 배우 신일선, 훗날 나운규와 함께 일한 당시 양정고보생 전택이 씨의 회고를 이렇게 전했다.

영화는 변사의 목소리에 실린 다음의 자막으로 시작했다.

“평화를 노래하던 백성들이 기나긴 세월에 싸인 슬픔의 시를 읊으려 합니다. 평화가 깊이 잠들었던 고요한 촌락 넓은 들 가운데는 별안간 개와 고양이의 싸움이 시작되었다.”(위 신문)

‘아리랑’을 연출하고 주연한 나운규. 스포츠동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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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의 상징과도 같은 감독 겸 배우, 제작자 나운규가 연출하고 주연한 ‘아리랑’이다. 영화는 ‘개와 고양이’에 빗댄 자막으로부터 관객의 시선을 모았다.

대체 무엇이 이처럼 뜨거운 관객의 호응을 얻게 했을까, 그것도 “1945년 광복 이후에도 서울을 비롯한 지방 각처에서 재상영되었”고, “1950년 6.25 전쟁 직전까지 서울에서만 아홉 차례나 흥행에 부쳐졌고, 6.25사변 이후 1952년 9월 대구 만경관에서 1주일간 재상영(영남일보 광고)”될 정도로 대중은 ‘아리랑’에 열광했을까.(영화사학자 김종원, 한국영상자료원 ‘영화천국’)

정작 영화의 본편을 제대로 본 이가 이제 세상에 많지 않다는 점에서 호기심은 더욱 커진다. 이유는 단 하나. 현존하는 필름이 없기 때문이다. 아니, 필름이 여전히 존재하는지조차 아직 파악되지 않고 있다. 아마도 영화를 실제로 본 이들 역시 대부분 세상을 떠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바로 그런 점에서 ‘아리랑’은 충분히 “논쟁이 절실한 영화”로 꼽힌다. ‘아리랑’을 한국영화 100년 최고의 작품 가운데 한 편으로 꼽은 평론가인 부산국제영화제 이용관 이사장은 “이 영화가 왜 그토록 중요한 영화인지를 새롭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영화는 정신이상 증세에 시달리는 영진과 여동생 영희 그리고 영진의 친구 현구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영진이 정신이상 증세를 앓는 것은 제대로 설명되지 않지만 아마도 1919년 3·1 만세운동으로 투옥된 아픔이라고 추정된다. 영진의 아버지는 아들을 가르치기 위해 지주의 빚을 진 소작농으로 전락했다. 그런 ‘약점’으로 영진의 가족을 위협하는 지주의 마름 오기호는 현구와 사랑에 빠진 영희를 시시탐탐 노리다 겁탈하려 한다. 그때 영진은 오기호를 향해 낫을 휘두르고 결국 ‘살인범’이 되어 순사들에게 끌려가며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이야기에 앞서 영화는 ‘개와 고양이’라는, 결코 화해할 수 없는 두 대립적 존재로 당대의 현실을 은유한 듯 보인다. ‘개와 고양이’는 식민지 조선과 제국주의 일본을 빗댄 표현인 동시에, ‘마름’으로 대표되는 지배계급과 소작농의 피지배계급을 가리키는 것으로도 평가받는다. 당대 관객 역시 이 같은 은유를 통해 이중의 고통에 시달려야 했던 현실을 새삼 일깨우며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아리랑’ 개봉 즈음 극장 풍경이 바로 이를 증명한다. 또 이는 여전히 찾지 못한 원본 필름의 소중한 가치를 확인하는 것이 한국영화 100년의 여전한 숙제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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