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길의 스포츠에세이] 격세지감…팬들이 살려 놓은 대한민국 축구

입력 2019-03-28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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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한민국 축구대표팀과 콜롬비아 축구대표팀의 평가전에서 대한민국이 2-1 승리를 거뒀다. 경기 후 대한민국 선수들이 기쁨을 나누고 있다. 스포츠동아DB

2년 전 이맘때 한국축구를 생각하면 아찔하다. ‘쇼크의 연속’이었다.

축구대표팀은 3월 23일 원정으로 치른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중국에 0-1로 졌다. ‘창사 참사’는 통산 두 번째 중국전 패배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의 위상은 크게 흔들렸다. 퇴진 요구가 빗발쳤다. 6월 13일 카타르 원정에서 ‘도하 참사’(2-3 패)를 당하며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결국 감독은 경질됐다.

팬들은 이미 한국축구에 등을 돌렸다. 신태용 감독이 지휘봉을 잡아 천신만고 끝에 월드컵 본선 티켓을 따냈지만 팬들의 마음은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감당하기 힘든 비난을 쏟아냈다. 게다가 ‘히딩크 영입’이라는 광풍까지 몰아쳤다. 10월 유럽 원정 2연패는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부었다. 일은 꼬일 대로 꼬였다. 한국 축구사에서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공황상태’는 한동안 지속됐다.

지옥과도 같은 국면에서도 얻은 건 있었다. 바로 팬의 소중함이다. 팬들의 마음이 얼마나 중요하고, 또 무서운지를 일깨워준 시간들이었다.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콜롬비아와 평가전을 앞둔 3월 26일 서울월드컵경기장은 미어터졌다. 경기장에 들어가기 조차 힘들 정도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한국축구는 예매 없이는 입장을 못하는 매진의 연속이다. 벌써 6경기째 A매치(대표팀 간 경기)의 표가 동이 났다. 2년 전을 떠올리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특히 국내에서 규모가 가장 큰 서울월드컵경기장(6만4338명)을 가득 채웠다는 건 팬들이 마음이 얼마나 뜨거운지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2001년 개장한 서울월드컵경기장의 역대 9번째 만원 관중이다.

한국축구는 올 초 아시안컵에서 실패하며 주춤했다. 하지만 팬들은 다시 일어서라며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상암에 울려 퍼진 6만의 함성 속에 그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26일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대한민국 축구대표팀과 콜롬비아 축구대표팀의 평가전이 열렸다. 스포츠동아DB


파울루 벤투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뒤 경기력이 좋아진 건 사실이다. 허나 더 중요한 건 선수들이다. 최근 축구장은 ‘아이돌 문화’를 방불케 한다. 손흥민을 비롯한 기존 스타플레이어뿐 아니라 이승우, 이강인, 백승호 등 신예들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하다. 경기는 물론이고 이런 스타들을 보기 위해 팬들은 경기장을 찾는다. 선수 캐릭터 상품은 없어서 못 팔 정도다.

관중 증가는 축구 브랜드 가치 상승과 맞물린다. 그만큼 한국축구의 상품성이 높아졌다는 의미다. 얼마나 잘 관리하느냐는 대한축구협회를 비롯한 축구인들의 몫이다. 축구협회는 입장권 차별화 및 고급화 전략을 짜는 등 갖은 노력을 하고 있다. 각종 이벤트로 팬들과 소통하는 모습도 보기 좋다. 이런 건 지속적으로, 그리고 멀리 보고 진행해 가기를 바란다.

2019년 한국축구의 화창한 봄은 팬들이 보낸 성원 덕분이다. 이제 재정적으로 풍족해지면 축구발전을 위해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 그 과정을 통해 한국축구는 경기력뿐 아니라 모든 면에서 한 단계 올라설 수 있다. 그러면 팬들의 즐거움도 늘어나게 된다. 이런 선순환 구조를 확실하게 만들어가는 게 한국축구의 지상과제다.

최현길 전문기자·체육학 박사 choihg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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