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김정은 피아노 독주회 ‘객석으로 스며드는 아픔’

입력 2019-04-01 16: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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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글씨로 눌러 쓴 듯한, 건강한 모차르트. 3월30일 서울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열린 독주회에서 피아니스트 김정은은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B장조 KV333으로 관객을 맞이했다. 모차르트 절정기의 양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소나타 작품이다.

손으로 꾹꾹 글씨를 눌러 쓰듯 무게감이 느껴지는 터치다. 사뭇 건강한 모차르트라고나 할까. 3악장 론도조차 가볍게 흩날리지 않는다. 스케일도 힘이 있다. ‘타라라락’ 스치듯 치기보다는 한 음 한 음 신중하게 건반을 고르는 느낌이다.

모차르트 다음은 드뷔시. ‘기쁨의 섬’과 ‘판화’ 세 곡을 연달아 쳤다. 모차르트에서 보여줬던 무게감이 드뷔시에서는 확실히 덜어졌다. 드뷔시 특유의 공기가 공연장 허공을 부옇게 떠돈다.

‘판화’의 첫 번째 곡 ‘탑’은 드뷔시가 1900년 파리에서 열린 만국박람회에서 접한 인도네시아 자바음악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파리지앵이 상상한 동양의 정서가 흥미로운 곡이다. 드뷔시다운 너울거림은 여전하다.

세 번째 곡 ‘비 내리는 정원’은 개인적으로도 좋아하는 곡. 연주자에게 상당한 테크닉을 요구하는 곡이기도 하다. 악센트가 강한 김정은의 연주는 꽤 입체적이었다. 부서진 햇빛, 빗방울이 손에 잡히듯 선명하다.

인터미션 뒤의 프로그램은 슈베르트의 마지막 걸작으로 꼽히는 3대 소나타 중 C단조 D.958. 1828년 세상을 떠나기 불과 몇 달 전에 작곡됐고, 사망 후인 1838년에야 비로소 출판된 유작이다. 슈만에게 헌정되었다. 드뷔시가 추상, 인상 묘사의 대가라면 슈베르트는 한 장의 그림을 놓고 100여 편의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작곡가다. 슈베르트가 평생 존경의 마음을 품고 살았던 베토벤의 그림자가 깊게 드리워진 작품으로도 알려져 있다.

김정은의 연주는 과연 슈베르트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강한 터치, 독특한 악센트, 깊은 음영, 회색빛 음색. 슈베르트 특유의 아픔이 객석으로 비누거품처럼 스며온다. 설득하지 않는다. 3악장 미뉴에트에서는 슈베르트의 가칠가칠한 유머가 느껴졌다. 웃을 자만 웃을지어다.

두 곡의 앙코르 곡을 들으며 2009년 금호영재 대상 출신으로 현재 독일 하노버국립음대 재학 중이라는 이 피아니스트의 앞날이 많이 궁금해졌다. 다음엔 김정은이 연주하는 베토벤을 들어보고 싶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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