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길의 스포츠에세이] 명분과 실리 모두 챙겨야 성공한 축구외교다

입력 2019-04-10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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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아시아축구연맹(AFC)이 창립된 해는 1954년이다. 창립 멤버는 12개국이었는데, 한국은 초창기 AFC 행정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경기력 향상이 더 급했다. 처음으로 AFC 부회장에 당선된 인물은 장덕진 제31대 대한축구협회장이었다. 그는 1970년 12월 AFC총회에서 수석부회장에 선출됐다. 하지만 경제 관료이자 국회의원이었던 그는 박스컵을 창설하는 등 국내 저변확대에 더 많은 신경을 썼다.

축구외교에 본격적으로 눈을 뜬 건 1990년대 들면서다. 1993년 대한축구협회 수장에 오른 정몽준 회장은 1994년부터 2010년까지 AFC 몫의 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으로 활약하며 한국축구의 위상을 높였다. 특히 2002년 월드컵의 한·일 공동 개최를 이끌어낸 건 16년간의 재임 기간 중 가장 큰 업적으로 평가받는다.

당시 정 회장의 위상은 아시아를 넘어섰다. AFC를 장악하고 있던 중동에 맞설 정도의 세력 확보는 물론이고 개인적인 리더십이 돋보였다. 가장 눈에 띈 건 특유의 자신감이었다. 상대가 누구든 거침이 없었다. 대표적인 게 2002년 FIFA 회장 선거 때였다.

그는 이사 하야투 아프리카축구연맹(CAF) 회장을 지지하면서 재선을 노린 블래터 FIFA 회장과 대척점에 섰다. 유럽축구연맹(UEFA)과도 가까웠다. 그만큼 인적 네트워크가 폭넓었다. 정 회장은 블래터의 독단적인 재정운영과 공금 횡령 등 각종 비리를 폭로하며 경쟁을 주도했다. 그의 주장에는 공감을 살만한 부분이 많았다. 비록 선거에서 패했지만 정 회장의 위상은 더 높아졌다는 분석도 나왔다.

2011년 정 회장의 FIFA 부회장 낙선은 큰 충격이었다. 2015년 FIFA 회장에 도전장을 냈다가 중도에 징계를 받은 것 또한 악재였다. 마피아처럼 자기들끼리의 울타리가 공고한 FIFA나 AFC에서 발언권이 줄어든다는 건 심각한 문제였다.

정 회장의 사촌인 정몽규 축구협회장이 AFC에 도전장을 내민 건 2015년이다. 하지만 집행위원 선거에서 탈락했다. 중동 세력이 내민 ‘합종연횡’ 제의를 거부했던 게 패인으로 분석됐다. 아시아축구는 쿠웨이트를 비롯한 카타르, 바레인이 형성한 카르텔이 지배하고 있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셰이크 살만 AFC 회장(바레인)과 셰이크 아흐마드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회장(쿠웨이트) 등이 중심인물이다.

정몽규 회장은 2017년 2년 임기의 FIFA 평의회 위원에 당선되면서 국제무대에 첫발을 내디뎠다. 비리 혐의를 받던 셰이크 아흐마드 OCA 회장이 출마를 포기한 덕분이다.

하지만 재선을 위한 자산 확보에는 실패했다. 6일 치러진 FIFA 평의회 위원과 AFC 부회장 선거에서 졌다. 이제 한국축구는 또다시 무관이다. 실력에 어울리지 않는 행정력이라는 점에서 걱정스럽다.

아쉬운 대목은 정 회장의 행보다. 그는 “중동 세력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낸 게 낙선 원인”이라면서 “AFC가 중동 쪽으로 편향되어 있다”고 비판했다. 중동 카르텔이 견고하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한 축구인은 “죽기 살기로 싸우지 않으면 카르텔을 깰 수 없다”고 했다. 과연 그 정도의 집념과 열정으로 싸웠는지 자문해 봐야한다.

선거에서 이기는 지름길은 세력 규합이다. 동아시아 세력이 똘똘 뭉친다든지 또는 아시아 전체에 걸쳐 다양한 네트워크를 형성해 중동 세력을 압박해야 한다. 중요한 순간마다 판이 깨진 한·중·일의 관계를 고려하면 쉽지는 않겠지만 이런 상황을 극복할 때 리더십은 더욱 빛나는 것이다. 또 아시아 전체를 위한 비전 제시와 함께 과연 공감을 살만한 진정성을 보였는지도 되돌아볼 일이다.

이는 개인 문제가 아니라 한국축구의 위상과도 직결된다. 아무리 명분이 좋아도 그걸 설득시키지 못한다면 소용없다. 즉 실리를 챙기지 못하는 명분은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명분과 실리 모두를 챙겨야 성공한 축구외교라 할 수 있다.

최현길 전문기자·체육학 박사 choihg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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