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100년, 최고의 작품 ‘마부’

입력 2019-04-18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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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승호(왼쪽)와 황정순은 영화 ‘마부’에서 서민의 애환을 드러내며 관객의 사랑을 받았다. 사진은 영화의 한 장면. 사진제공|한국영상자료원

전근대 상징하는 마부의 눈으로
요동치는 시대의 흐름 잘 그려내
‘오발탄’과는 결이 다른 리얼리즘
11회 베를린영화제 은곰상 영광

1919년 10월27일 ‘의리적 구토’ 이후 시작된 한국영화 100년의 역사는 수많은 걸작을 관객에게 선사해왔다. 당대 대중의 감성을 어루만지며 진한 감동과 웃음과 눈물을 안겨준 대표적 작품이 여기 있다. 창간 11주년을 맞은 스포츠동아가 감독, 제작자, 평론가 등 100인의 영화 전문가들에게 한국영화 100년, 그 최고의 작품을 꼽아 달라고 요청해 얻은 답변이기도 하다. 그 걸작들을 시대순으로 소개한다.

초로의 아버지와 새롭게 어머니가 되고자 하는 여인, 그리고 이들의 곁을 따스하게 지키는 자식들. 이들을 축복하듯 눈이 내린다. 그 길 위에서 가족은 이제 또 달리 새로운 일상으로 향하는 중이다. 이들의 뒤로 지금은 사라진 중앙청 건물이 보인다.

중앙청! 중앙 돔 상부의 첨탑으로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권위주의의 냄새를 잔뜩 풍겨낸 건축물은 조선 왕조의 역사를 상징하는 경복궁 근정전 앞에 버젓이 들어섰다. 일제가 1926년 완공해 식민통치의 핵심적 거점으로 삼았던 조선총독부 건물이었다. 해방 이후 미 군정청으로 쓰였던 건물은 훗날 정부청사로, 다시 국립중앙박물관으로 변모했다. 하지만 일제 잔재의 상징적 건물로서 마땅히 청산의 대상이 됐다. 1996년 11월 완전히 철거됐다.

어쨌거나 해방 이후 중앙청은 광화문과 함께 서울 도심 한복판을 지칭하는 곳이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바로 그 앞을 지나며 새로운 내일을 맞으려는 가족. 그 차림새로 보아 그저 일상을 연명하기에 급급한 서민의 일행이었으니, 이들은 도심의 근대적 풍경 앞으로 막 진입하는 것처럼 보인다. 강대진 감독이 연출한 1961년작 영화 ‘마부(馬夫)’의 마지막 장면이다.

‘마부’는 말이 끄는 수레로 짐을 실어 나르며 자식들을 키워내는 아버지의 이야기다. 장남의 고등고시 합격을 꿈꾸는 아버지는 언어 장애로 남편에게 쫓겨나 돌아온 맏딸을 애써 내친다. 터무니없는 욕망으로 신분 상승을 꿈꾸는 둘째 딸과 말썽꾸러기 막내아들도 속을 앓게 하기는 마찬가지다. 장남의 고시 실패와 맏딸의 비극적 운명, 부잣집 아들에게 농락당하는 둘째 딸 등 시련은 끝이 없다. 다만 마주의 식모와 나누는 따스한 교감이 작은 위안이다.

전쟁과 혁명 등 굴곡진 역사의 언덕을 수없이 넘나드는 동안 현실은 어느새 전근대적 현실에서 채 벗어나지도 못한 채 근대의 대로로 빠르게 나아가던 시대. 마부라는 직업과 그가 이끄는 말이 상징하는 전근대적 상황은 빠르게 흘러가는 근대적 현실과 부딪히는데, 아버지의 일을 부끄러워하는 자식들이 바로 그 증거다. 남편의 폭력이라는 전근대적 억압에 시달리는 여성으로서 딸의 고통을 외면하는 아버지의 가부장적 태도도 마찬가지다. 아버지로서 그 아픔을 끝내 감당해내야 하지만 현실은 서럽고 가난하기만 하다.

장남의 고시 합격은 그래서 이 모든 상황을 해결해주는 아버지의 유일한 희망. 마침내 장남은 아버지의 소원을 이루고, 아버지와 식모는 새롭게 인연을 맺으며 한 가족을 다시 이룬다.

강대진 감독은 세밀하고 밀도 있는 현실을 카메라에 담아내며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과는 결이 다른 또 다른 리얼리즘의 세계를 보여줬다. 특히 1960년대 초반 말수레를 끄는 마부의 시선을 따라 드러나는 서울이라는 도시와 거리의 다양한 근대적 풍경을 이룬다.

아버지 역의 김승호는 역시 강대진 감독과 호흡을 맞춘 전작 ‘박서방’에 이어 서민의 한 전형적 캐릭터로서 기록되고 있다. 장남 신영균을 비롯해 황정순, 엄앵란, 조미령 등이 함께한 영화는 제11 회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은곰상(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하며 한국영화사에 또 한 편의 걸작으로 남았다.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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