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외인’ 윌슨이 외투에 숨겨놓는 234㎜의 희망

입력 2019-04-29 09: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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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윌슨. 스포츠동아DB

LG 트윈스 타일러 윌슨(30)은 자신의 외투에 234㎜ 크기의 희망을 하나씩 넣어 다닌다. 설레는 마음으로 선수들의 퇴근길을 기다리는 어린이 팬들에게 선물하고자 챙겨놓는 야구공이다.

실력과 인성을 두루 겸비한 윌슨에게는 ‘명품 외인’이라는 별칭이 딱 어울린다. KBO리그 2년차 시즌을 치르며 진정한 ‘에이스’로 거듭나고 있다. 28일까지 선발등판한 7경기에서 모두 퀄리티스타트(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 투구)를 작성하며 평균자책점 1위(0.57)를 순항 중이다. 무결점 피칭에 따른 4승의 성과로 리그 정상급의 LG 1~3선발진을 이끄는 선봉장이다. 이와 더불어 온화한 성품으로 주위사람들을 살뜰히 챙기는 그는 팀 내 외국인선수들 사이에서도 리더의 책임을 다하고 있다.

경기장 밖에서도 윌슨의 미담은 끊이질 않는다. 그에겐 KBO리그에서 시작된 특별한 루틴이 하나 있다. 원정경기를 마친 뒤 선수단 버스에 오르기 전 외투 호주머니에서 야구공을 하나 꺼내 출입구 앞에서 선수들을 기다리던 어린이 팬에게 건네는 일이다. 미리 사인을 해두는 것은 아니지만, 요청을 받으면 그 자리에서 흔쾌히 사인도 해준다. 선수들의 퇴근길을 자주 구경하는 팬들이라면 이제는 윌슨이 아이의 손에 공을 하나 쥐어주고 떠날 것으로 짐작할 수 있을 만큼 오래 이어온 행동이다. 윌슨 특유의 따뜻한 마음씨가 돋보인다.

자신도 어린 시절 같은 경험을 했고, 지금까지도 좋은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어서다. 윌슨은 “나도 어릴 때 경기장에서 선수가 던져주는 공을 받은 적이 있다. 정말 특별한 순간이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며 “내게는 1초에 불과한 시간이지만, 아이에게는 그 장면이 오래도록 기억된다. 야구에 대한 즐거움도 커질 것”이라고 미소 지었다. 야구공을 받아들고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보며 자신의 어릴 적 모습까지 되돌아보는 윌슨이다.

남다른 팬 사랑을 보여주는 윌슨은 열성적인 대형 팬덤을 거느린 LG에서도 단연 ‘팬 퍼스트’에 앞장서는 모범생이다. 그는 “팬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팬은 아주 중요한 존재’라는 이야기를 한다”며 “팬들이 나를 지지해주는 덕분에 그들로부터 큰 동기부여를 얻는다. 내가 KBO리그에서 뛰고, 이곳의 생활을 즐기는 이유 역시 팬”이라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도 계속 공을 선물할 것이다. 가끔 까먹기도 하겠지만, 매번 하기 위해 노력할 생각이다. 열에 아홉은 잊지 않고 팬들에게 공을 선물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둘레 234㎜의 작은 공 하나로 야구를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꿈을 선물하는 윌슨이다. 윌슨이 그러했듯 그가 남기는 찰나의 순간들이 KBO리그의 새로운 영웅을 탄생시킬지도 모를 일이다.

서다영 기자 seody306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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