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호의 해피존] ‘거래의 기술’과 KBO 트레이드

입력 2019-05-02 09: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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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희섭. 스포츠동아DB

지난 10년간 KBO리그에서 가장 아깝게 불발된 트레이드를 꼽는다면 2012년 KIA 타이거즈 최희섭(현 MBC스포츠+ 해설위원)과 넥센 히어로즈(현 키움) 불펜 투수와의 이적 협상일 것이다. 2011년 12월 당시 KIA와 히어로즈 프런트 최고 책임자는 최희섭과 불펜 핵심전력 투수를 트레이드하는 데 합의했다.

이장석 전 대표는 경영윤리를 저버려 현재 복역 중이지만 선수를 보는 안목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인물이었다. 당시 이 대표와 히어로즈 경영진이 왜 최희섭의 트레이드를 위해 팀 핵심 불펜 투수를 내놨는지 취재를 했다. 결론을 요약하면 이렇다. ① 홈런이 많이 나오는 목동 홈구장에 최적화된 타선을 구축하기 위해 우타 홈런타자 박병호, 강정호와 함께 왼손 거포가 필요하다. ② 외부에서 영입 가능한 왼손 홈런타자 중 최희섭은 소속팀 코칭스태프와 불편한 관계다. 전력 손실을 최소화하고 트레이드 할 수 있다. ③ 만 33세의 검증된 그리고 티켓 파워를 갖고 있는 타자다. 쉽게 오지 않는 기회다.

KIA의 입장도 맞아 떨어졌다. 선동열 감독 취임 첫 시즌을 앞두고 대대적인 팀 컬러 변화를 시도하고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베테랑 선수들과 마찰이 일고 있었다. 최희섭을 트레이드하고 불펜 투수를 영입하면 선수단 쇄신과 마운드 보강이 동시에 가능할 것으로 봤다.

그러나 발표 직전 KIA는 트레이드를 틀었다. 대외적으로는 ‘트레이드 대상 투수의 몸 상태가 완전치 않은 것 같다’고 했지만 사실 내부적으로는 ‘만약 최희섭이 히어로즈 유니폼을 입고 홈런 30개, 40개를 치면 누가 책임지나?’라는 문제제기가 있었다. 이장석 대표는 당시 ‘트레이드는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고 ‘훈계’했다.

최근 KIA와 키움 팬 사이에서는 김세현과 이승호의 트레이드가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2017년 김세현은 리그에서 손꼽히는 마무리 투수였다. 이승호는 촉망받는 좌완 신인 투수였다. 이승호를 포기하고 김세현을 얻은 KIA는 그해 한국시리즈 우승컵을 품었다. 이승호는 올해 키움의 핵심 선발로 성장했다. 반대로 김세현은 부진을 거듭하고 있다. 누가 트레이드의 승자라는 소모적인 논란이 다시 시작된 계기다.

최희섭의 트레이드가 불발된 이유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지금까지도 KBO리그 트레이드 시장의 가장 큰 장벽은 승자가 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이 두려움에 있다. 성패와 관계없이 트레이드는 리그에 활력을 준다. 팀 전력 강화와 리그 평준화의 지름길이다. 프리에이전트(FA) 시장보다 더 흥미롭고 드라마틱하다.

키움은 트레이드 잘하기로 소문난 구단이다. 올 시즌을 앞두고 사상 최초 삼각 트레이드를 통해 포수 이지영을 영입했다. 그러나 이 역시 함정은 존재한다. 만약 FA 제도가 혁신적으로 바뀐다면 올 시즌 후 FA가 되는 이지영을 단 한 시즌 만에 놓쳐버릴 수도 있다. 그만큼 트레이드는 변수가 많고 앞날을 예측하기 어렸다. 그래서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정치와 무관했던 30대에 쓴 ‘거래의 기술’은 이미 당시에 베스트셀러로 인기가 높았다. 부동산 사업가가 쓴 책이지만 ‘더 크게 생각하라’, ‘항상 최악의 경우를 예상하라’, ‘언론을 이용하라’등의 내용은 그 어떤 거래에도 적용할 수 있는 전략이자 철학이다. 상대방을 혼란에 빠트려서 서둘러 선택을 이끌어내는 무자비한 방법도 담겨져 있지만 ‘거래의 기술’의 메시지는 분명 KBO리그에도 훌륭한 지침서가 될 수 있다. 선수의 인생을 바꾸고, 팀의 운명을 바꾸고, 리그 판도를 바꾸는 용기 있는 트레이드를 기대해 본다.

# ‘마지막 4할 타자’ 테드 윌리엄스는 스트라이크존을 77개의 공으로 나눠 공략했다. 그중 자신이 4할 이상 타율을 기록할 수 있는 코스의 공3.5개를 ‘해피존’이라고 이름 지었다. 타자는 놓쳐서는 안 되는 반대로 투수는 절대로 피해야 할 해피존은 인생의 축소판인 야구의 철학이 요약된 곳이다.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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