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정일우 “왜 그리 조급하게만 살았을까 젊은 영조처럼 부딪치며 살걸”

입력 2019-05-08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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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BS 드라마 ‘해치’ 연잉군 이금 완벽 소화 정일우

13년 연기하는 동안 늘 자괴감·슬럼프와 싸워
‘이금’ 가장 힘든 캐릭터…성장통 겪은듯한 여운
두번의 순례길·2년간 치매 어르신 돌본 게 도움


연기자 정일우(32)가 변했다. 한결 여유로워진 표정이다. 과거엔 어떤 질문 하나에도 ‘정답’에 가까운 정형화된 말을 하기 위해 애썼다면 이제는 아니다. 먼저 농담을 꺼내며 분위기를 띄우는 노련함도 익혔다. 이전보다 빈틈이 많아진 만큼 한층 더 인간미가 느껴진다. 정일우 자신도 “왜 그리 조급하게 살았을까 아쉽기만 하다”고 말할 정도다. 치열했던 13년 연기의 길에서 얻은 깨달음일까. “이제는 더 부딪치며 살겠다”며 새롭게 다짐한다.


● “‘해치’ 이금, 데뷔 이후 가장 힘든 역할”

정일우는 작년 11월 전역 후 곧바로 SBS 드라마 ‘해치’에 합류했다. 4월30일 종영하기까지 젊은 영조인 연잉군 이금 역을 맡아 드라마를 이끌었다. 2일 서울시 강남구 논현동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이에 “쉽지 않은 결정이었고, 과정도 마찬가지였다”고 돌아봤다.

“이금은 데뷔 이후 가장 힘든 캐릭터였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불가능에 가까운 ‘왕’이 된 인물이기 때문이다. 주변 인물이 이렇게 많이 죽은 드라마도 처음이었다.(웃음) 이금의 성장 통을 내가 고스란히 겪어 감정적 소비가 많았다. 하지만 무사히 끝나 다행이다. 좋은 PD님과 작가님, 오래 볼 수 있는 배우들을 만나게 된 게 이번에 얻은 가장 큰 자산이다.”

그가 전력을 쏟은 덕분에 ‘해치’는 7∼8%대(닐슨코리아) 시청률을 기록했다. “성적이 신경 안 쓰인다고 하면 거짓말”이라며 웃던 정일우는 “동료들과 함께 고생한 덕분에 후회 없이 유종의 미를 거뒀다”고 말했다. 자신에게도 “잘 마무리했다며 격려해주고 싶다”고 했다.

“체력적으로 힘들고, 배우로서 부족함도 느꼈다. 부담도 컸다. 그런데도 좋은 제작진을 만나 완성도 높은 드라마를 만들었다. 사람들이 ‘진짜 왕 같다’고 말해줘 힘을 얻었다. ‘진정성으로 연기하는 널 보며 감동받았다’고 말해준 이용석 PD님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타인을 이해하며 정치를 펼친 영조를 연기하기 위해 가장 중점적으로 생각했던 게 바로 진정성이었다. 정말 ‘마음으로’ 연기하려 했다.”


● “슬럼프의 반복, 순례길 오르며 치유”

‘해치’로 2년의 공백을 지웠음에도 정일우는 여전히 만족하지 못한다. 그는 “스스로에게 참 짠 편”이라며 웃었다. 2006년 데뷔작인 MBC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 이후 쭉 그랬다는 정일우는 “내가 왜 인기가 많은지 몰라” 자신에게 더 엄격해지기만 했다. 작품이 끝날 때마다 “땅 파고 들어가고 싶을” 정도로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다.

“몇 번이고 슬럼프에 빠졌다. 그럴 때면 무작정 걸었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도 두 번이나 완주했다. 하루 40∼50km를 걸으면 땀이 쫙 빠지면서 마음이 정화된다. 생각이 많아 힘든 스타일인데, 걷다 보면 아무 생각도 안 난다. 숙소에서 만난 또래 외국인 친구들과 고민을 나누면 마음이 풀리기도 한다. 그 과정을 통해 ‘다 내려놓고’ 온다.”

그렇게 “나 자신을 찾는 시간”을 반복하니 이제는 조금씩 순간을 즐길 줄 알게 됐다고 한다. “데뷔 때에는 ‘지금의 인기를 지켜야 한다’는 강박과 조급함이 있어 너무 조심하기만 했다”며 후회도 한다. 사고방식이 이토록 유연해진 이유에는 2년간의 대체복무 경험도 한몫했다.

“서울 구립서초노인요양센터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하면서 200여 명의 치매 어르신을 돌봤다. 그들을 보면서 삶을 좀 더 진지하게 바라보게 됐다. 함께 복무한 20대 초반의 친구들에 날 비춰보며 ‘내가 참 우물 안 개구리였구나’ 싶기도 했다. 세상은 바뀌었는데 왜 나는 멈춰있었나 놀라며 생각도 많이 열렸다. 그만큼 작품을 대하는 태도도 많이 바뀌었을 것이라 믿는다.”


● “‘인간 정일우’로 다가가고파”

과거에 대한 후회 중 하나로 “작품 사이 공백”을 꼽은 정일우는 “이제 최대한 촘촘히 일할 것”이라고 말했다. 배우에게 남는 건 ‘작품’ 밖에 없다는 걸 실감하고 그렇게 결심했다. 새로운 장르에도 끝없이 도전할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어느 순간부터 부딪치는 게 낫다고 생각을 바꿨다. 때로는 깨지고, 욕도 먹어야 단단해지고 성장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언젠가는 자비에 돌란 감독의 작품처럼 특유의 분위기가 있는 독립영화나 저예산영화도 해보고 싶다. 그런 과정을 통해 드라마나 예능프로그램에 비친 나를 넘어 ‘원래의 나’를 대중에게 보여줄 수 있을 거다.”

그렇기에 새 도전은 연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3월부터는 ‘크리빗’이란 계간지를 창간해 직접 글을 쓰고 있다. 대중과 “인간 대 인간”으로 소통하고 싶어 시작한 일이다. 정일우는 앞으로도 “내가 더 잘 묻어나는 작업”을 하고 싶다며 열정을 드러냈다.

● 정일우

▲1987년 9월9일생 ▲2014년 한양대 연극영화학과 졸업 ▲2006년 MBC ‘거침없이 하이킥’으로 데뷔 ▲2007년 MBC 방송연예대상 시트콤 신인상(거침없이 하이킥) ▲2009년 MBC ‘돌아온 일지매’ ▲2012년 MBC ‘해를 품은 달’ ▲2014년 MBC ‘야경꾼 일지’·연기대상 최우수연기상 ▲2016년 tvN ‘신데렐라와 네 명의 기사’ ▲2019년 SBS ‘해치’

유지혜 기자 yjh030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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