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훈련장을 가다] 한국전력 장병철 감독이 만드는 자율과 올바른 습관의 배구

입력 2019-06-03 14: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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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는 조직에 얼마나 큰 영향을 줄 수 있을까. 리더십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스포츠 팀에서 많은 사례를 찾는다. 스포츠 팀은 올바른 지도자의 선택과 결정으로 가장 극적으로 그리고 빨리 눈에 띄는 성과를 만든다.

그런 면에서 비 시즌에 리더를 바꾸며 변화를 선택한 한국전력의 행보는 궁금했다. 기자는 최근 한국전력 의왕 훈련장을 찾았다. 소문으로만 들리던 변화의 바람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한국전력은 시즌 뒤 장병철 새 감독을 선임했다. 새 감독과 선수단은 4월29일부터 다음 시즌을 대비한 훈련에 들어갔다. 4시간여 동안 한국전력 배구팀과 배구를 주제로 다양한 얘기를 들었다.

새 감독은 몸보다 정신, 팀 문화의 변화에 포인트를 줬다. 새로운 배구스타일이나 기술, 훈련이 아니라 생각과 태도의 변화를 선수들에게 요구했다.


● 감독 되자마자 숙소에서 선수를 내보낸 장병철 감독

달라진 한국전력의 키워드는 자율과 올바른 습관 새로운 팀 문화다. 지난 시즌까지 수석코치 역할을 했던 그는 감독이 되자마자 선수들에게 자유부터 안겼다. 가장 먼저 합숙소에서 나갈 권리를 줬다. 선수를 강제로 가둬놓고 훈련하는 방식을 버렸다. 원하는 사람은 따로 집을 얻어서 나가도 된다고 했다. 기혼자나 베테랑만 허락한 것이 아니다. 이호건 김인혁 등 젊은 선수들도 원하면 나가라고 했다. 다만 집을 얻을 형편이 아니거나 본인이 원한다면 합숙소에서 지내도 된다고 했다. 뜻밖의 자유를 얻은 많은 선수들은 훈련 뒤 집으로 돌아가서 원하는 생활을 마음껏 한다. 대신 규율은 꼭 지켜야 한다.

선수들은 주중 훈련 때 반드시 오전 9시까지 훈련장에 모여야 한다. 한 번 지각하면 월급의 10%가 벌금이다. 2번 지각하면 20%로 올라간다. 세 번 늦으면 유니폼을 벗어야 한다. 자유를 준만큼 책임지고 올바른 생활과 행동을 하라는 뜻이다. 오전훈련 시작은 9시30분이다. 선수들은 각자 알아서 테이핑을 하고 몸을 풀면서 훈련준비를 마쳐야 한다. 함께 뛰면서 준비하던 예전의 방식은 쓰지 않는다. 목표했던 훈련을 소화하면 남은 시간과 관계없이 끝낸다. 오후 3시30분에 시작하는 훈련도 마찬가지다. 대신 개인기술을 다지는 훈련은 각자가 해야 한다. 따로 선수들을 모아서 강제로 시키지도 않는다. 팀 훈련은 말 그대로 모두가 모여서 하는 것이고 프로페셔널답게 개인기량이나 모자란 것을 채우는 훈련은 스스로 알아서 준비하라는 뜻이다.


● 성인답게 행동하고 자신이 한 행동에 책임도 져라

밤 10시면 코치들이 숙소에서 수거해갔던 휴대전화도 돌려줬다. 대신 SNS 등에 글이나 사진 등을 올려서 문제가 될 경우 책임도 져야 한다. 성인답게 스스로 알아서 행동하도록 많은 자유를 준 대신 행동의 결과에 책임은 지라는 뜻이다. 이런 자율을 통해 선수들에게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면서 운동선수 이전에 사회인으로서의 바른 자세와 생각을 가지라고 주문했다.

장병철 감독은 “평소의 올바른 태도가 모여서 선수와 팀을 바꾼다”고 했다. 그래서 훈련 뒤 얼음찜질용 비닐을 버릴 때는 남을 시키지 말고 선수가 스스로 휴지통에 분리수거해서 넣으라고 했다. 물리치료사가 마사지를 해줄 때는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휴대전화를 사용을 금지시켰다. 훈련 뒤 나오는 쓰레기는 항상 분리해서 버리고 주변정리를 깨끗하게 는 등의 기초적인 생활예절과 바른 습관을 반복해서 강조한다. 유니폼이 아닌 사복은 스스로 세탁해서 입고 빨래도 분리해서 통에 넣어 세탁을 도와주시는 분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배구와는 상관없어 보이는 이런 평소 행동들이 모여서 새로운 팀 문화를 만들고 올바른 습관 즉 루틴으로 이어진다고 믿는다.

코트에서 훈련 때도 마찬가지다. 스스로의 생각을 선수들에게 당부한다. 세터에게는 “우리 공격수가 평소 가장 때리기 좋아하는 코스가 어디인지”미들블로커에게는 “상대팀 세터가 특정 상황에서 어떤 공격을 선호하는지” 등을 미리 생각하고 플레이하라고 강조한다. “잠자기 전에 단 3분만이라도 어떤 플레이를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 하라. 그렇게 하다보면 다음날 훈련 때 몸이 저절로 그 생각대로 움직인다. 매일 3분이지만 이 습관이 쌓이면 큰 결과를 만든다”면서 몸보다 생각이 먼저 바뀌는 배구를 주문하는 감독이다.


● 장병철 자율배구의 성공여부는 선수들의 생각에 달려 있다

물론 이런 변화들이 하루아침에 결과로 나타날 수는 없다. 오랫동안 해오지 않던 것이 하루 이틀 사이에 한다고 쉽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또 생각은 다른 곳에 있는데 우선은 새 감독의 눈치를 봐야하기 때문에 흉내만 내는 선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감독은 항상 선수와 신경전을 벌여야 한다. 그는 “내가 원하는 생각의 변화와 달라진 팀 문화가 정착하지 못하면 언제든지 책임을 지고 물러날 것이다. 대신 한 번 정한 방향을 바꾸는 일은 없다. 지금 하지 않으면 기회도 없다”면서 자율배구의 강력한 추진을 말했다.

장병철 감독은 자신이 원하는 팀 문화를 만들기 위해 스태프의 역할도 강화했다. 스태프 각자가 선수들을 공정하게 평가해 점수를 매기고 이를 공지해 선수 스스로가 팀에서 어떤 평가를 받는지를 알도록 했다. 감독은 매주 스태프가 매긴 평가점수를 알려서 선수들이 스스로 자신의 행동과 훈련과정을 되돌아보도록 했다. “평가는 남이 한다. 항상 경계하고 열심히 생활하라.” 요즘 장병철 감독이 선수들에게 자주 강조하는 말이다. 이를 통해 낮은 평가점수를 받은 선수는 과감하게 정리하고 새로운 조직문화에 따라가겠다는 의지를 가진 선수들과 새 시즌을 꾸려가겠다는 것이 달라진 한국전력 배구의 바탕이다. 벌써 지난 시즌 구성원에서 절반 이상이 달라졌다. 변화의 바람은 의왕 훈련장에서 강력하게 분다.

의왕|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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