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알고 싶은 봉준호의 ‘사소한 이야기’

입력 2019-06-05 06:57: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영화 ‘기생충’이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봉준호 감독과 ‘인간 봉준호’에 대한 궁금증, 호기심 등이 쏟아지고 있다.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 칸에서 나눈 소소한 이야기와 기자가 본 ‘봉준호의 세계관’

중학생때 자주 놀던 아파트 지하실
30년이 지난 지금도 자세하게 기억
영화서 ‘봉테일’ 찾는 관객 시선 부담
마더의 ‘남일당’도 잘 타서 쓴 달력

김혜자 선생님께 10년전 콘티 한 장
착하고 겸손한 원빈, 저평가된 배우
적당한 긴장감…카페서 시나리오 써
차기작은 서울 복판서 벌어지는 공포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감독이라는 거창한 타이틀은 잠시 접어두자. 때로는 편안하게 풀어내는 이야기에서 그 사람의 세계관이 엿보이기도 한다. 5월26일 폐막한 제72회 칸 국제영화제 기간, 현지에서 두 차례의 공식 기자회견과 한 번의 인터뷰 그리고 국내 취재진과 격 없이 나눈 티 미팅을 통해 오간 봉준호 감독의 소소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그의 세계를 살짝 살필 수 있는 ‘사소한 입문서’ 쯤 되겠다.


● 언제부터 ‘지하’에 꽂혔나

‘기생충’을 통해 새삼 주목받는 키워드는 ‘봉준호와 지하’이다. ‘플란다스의 개’에선 경비원이 사건을 만드는 곳으로, ‘살인의 추억’에선 형사들의 취조실로, ‘괴물’에선 괴물의 은신처인 한강 하수구 지하 공간이 나온다. 이번엔 주인공의 보금자리인 ‘반지하’가 등장한다.

칸에서도 ‘지하’와 관련한 질문을 수차례 받은 봉준호 감독은 “아파트에 살던 중학생 때” 이야기부터 꺼냈다. 농담을 섞어가면서 “친구가 없어 혼자 놀다보니 아파트 지하실을 자주 가곤 했다”고 밝힌 그는 30년이 지난 지금도 당시 아파트 지하 풍경을 정밀하게 묘사한다. “경비원 아저씨가 놔둔 냉장고 안에 음식이 있고”, “주민들이 버린 생활 용품들이 쌓여있던”, “그 틈에 경비원 아저씨가 쉬던 매트리스까지 있던 곳”이 그에게 각인된 지하의 이미지다.


● 닉네임 ‘봉테일’, 좋아하지 않는 까닭

칸에서 진행된 ‘기생충’ 기자회견에서 한 중국인 기자는 ‘실제로 냄새를 풍기면서 촬영했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냄새’는 극 중 갈등의 기폭제로 쓰인다. 감독은 “충격적인 질문”이라고 놀랐지만, 외신 기자마저 이런 걸 묻는 이유는 ‘봉테일’의 국제적인 유명세 때문이다.

‘봉테일’은 2003년 ‘살인의 추억’ 당시 꼼꼼하게 현장을 지휘하는 봉준호 감독을 향해 류성희 미술감독이 ‘봉준호’와 ‘디테일’을 섞어 만든 별칭. 지금껏 유효한 수식어이지만, 정작 그는 탐탁지 않아 한다. “다들 그런 관심(‘봉테일’)으로 영화를 보니 부담스럽다”는 이유다. “현장 스태프들도 내가 모든 걸 컨트롤 하는, ‘컨트롤 악마’로 보는 듯 하다”며 웃었다.

일일이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데도, 관객은 ‘뭔가 있을 것’이라면서 눈 부릅뜨고 본다는 하소연과 함께 ‘마더’에 나오는 고물상 화재 장면을 예로 들었다. 불타는 고물상 한 켠에 얼핏 비추는 달력에 적힌 ‘남일당’이란 단어가 발단이 됐다. ‘남일당’은 용산참사 당시 철거민과 경찰이 충돌한 건물 이름. 이 점을 눈여겨 본 관객들이 ‘어떤 의도’를 유추했지만 정작 감독은 “그저 잘 탈 것 같아서 쓴 달력”이라고 했다.


● 다시 만나고픈 배우…김혜자와 원빈

봉준호 감독은 ‘마더’를 함께 한 김혜자, 원빈과는 꼭 다시 작업하고 싶다고도 말했다. 올해 2월 김혜자의 집에 “놀러갔다”는 그는 “‘마더’ 마지막 촬영 날 김혜자 선생님께 꽃다발과 다음 영화의 콘티 한 장을 봉투에 담아 드리면서 함께 하자고 말씀드렸는데, 벌써 10년이 지났다”고 멋쩍어 했다. 물론 작품 구상은 유효하다.

원빈도 마찬가지. 아무리 칭찬을 건네고, 주변에서 나오는 긍정적인 반응을 전달해도 쉽게 믿지 않는 원빈의 “착하고 겸손한 성격”을 거론한 감독은 “지금도 그 자체로 훌륭하지만 배우로서 어느 정도 저평가된 부분이 있는 것 같다”는 속내를 조심스레 꺼냈다.


● 시나리오는 카페에서, 훗날 은퇴한다면…

봉준호 감독은 카페에서 시나리오를 집필한다. ‘기생충’도 마찬가지. 카페 몇 곳을 정해두고 자리를 옮겨가며 썼다. 그는 칸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도 “시나리오를 카페에서 쓰는 이유는 주변 소음이 적당한 긴장을 주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늘 한 쪽 어깨에 둘러메는, 조금 낡은 갈색 가죽가방이 그의 ‘시나리오 창고’다.

다음 작품으로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공포”를 계획한 감독은 미국 스튜디오와도 작업을 논의 중이다. 쉼 없이 작업하지만 문득 “은퇴”를 떠올릴 때도 있는 모양. 봉준호 감독은 자신에게 ‘직언’을 해주는 인물로 “영화와 무관한 일을 하는 대학친구”를 꼽았다. 그 친구에게 감독은 ‘영화를 그만해야할 때로 느껴지면, 주저 없이 알려달라’는 주문을 일찌감치 해 놓았다고 했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오늘의 핫이슈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