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인터뷰] 정은지 “아이돌 아니었다면 배우로도 사랑 못 받았겠죠”

입력 2019-06-08 0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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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주)스마일이엔티

“언니, 영화는 재미있게 보셨어요?”

순간,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 배우와 인터뷰를 할 때 거의 들을 수 없는 호칭이다. 그래서 처음엔 당혹스러웠지만 이내 정겨웠다. ‘언니’는 처음 들어봤다고 하자 정은지는 익숙한 경상도 사투리로 “아, 진짜요?”라며 웃었다. 이후 빗장이 풀린 듯 정은지는 마치 카페에서 친한 언니를 만난 듯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언니”의 효과가 이렇게 크다니.

정은지는 공포 영화 ‘0.0MHz’에 출연했다. 그가 공포물에 도전한 이유는 극적인 연기 변신을 해보기 위함이었다. “그동안 밝고 긍정적인 ‘캔디’ 캐릭터가 내게 많이 들어왔다”라고 말한 그는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역할이 들어와 끌렸다. 스크린 첫 진출이라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0.0MHz’에서 귀신을 볼 수 있는 ‘소희’ 역을 맡은 그는 역할을 위해 ‘엑소시트트’나 퇴마 영상을 집에서 몰아봤다고 말했다.

사진제공=(주)스마일이엔티


“무당집안에서 태어났고 보고 싶지 않은 귀신이 보이는 역할이라 상상력이 많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필요한 영상을 많이 찾아봤는데 자면서 가위도 많이 눌렸어요. 그러다 보니 소희가 가져야 하는 살갑지 않은 눈빛이나 예민한 성격을 이해하게 된 것 같아요. 무서운 거 잘 보냐고요? 보고 나서는 십자가 보고 기도했어요.”

이번 영화에서 정은지는 신의 감응을 받아 윤정(최윤영 분)에게 빙의된 귀신을 쫓아내는 연기를 펼치기도 한다. 이를 위해 지인을 통해 무속인을 소개 받아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그는 “귀신이 어떤 식으로 보이는지, 무속인들은 어떻게 생활하시는지 물으며 다녔다”라며 “굿하는 영상을 많이 보기도 했는데 접신이 됐을 때 하는 몸짓, 손짓을 관찰했다. 그래도 그 연기는 여전히 어렵더라”고 말했다.

“제가 귀신을 쫓아내려고 나뭇가지로 윤영 언니를 막 때리는 부분이 있잖아요. 거의 한 주 내내 찍었는데 무섭다는 표현을 쓸 만큼 힘들었어요. 나는 계속 때려야 했는데 언니가 아프면 안 되니까 힘 조절을 잘 해야 했어요. 그 촬영이 끝나고 한 동안 팔을 못 들었을 정도였죠.”

사진제공=(주)스마일이엔티


‘0.0MHz’로 스크린에는 첫 발을 내딛었지만 드라마로 ‘응답하라 1997’에서 성시원 역을 맡으며 성동일의 첫 번째 ‘개딸’로 활약한 바 있다. 이후 ‘그 겨울, 바람이 분다’, ‘트로트의 연인’, ‘발칙하게 고고’, ‘언터처블’ 등 필모그래피를 쌓았다. 많은 작품으로 연기를 했지만 아이돌 가수 출신이라 ‘연기돌’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결국 ‘배우’로는 인식이 안 되는 것에 대해 속상한 부분도 많지만 아이돌이기에 자신에게 주어지는 많은 기회들이 더 감사하다고 말했다.

“제가 에이핑크가 아니라 그냥 정은지로 ‘응답하라 1997’에 나갔다면 그 때 같은 큰 사랑을 받을 수 있었을까요? 전 아니라고 생각해요. 배우로 인정받으려면 실력을 더 쌓을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솔직히 아이돌이라서 큰 역할을 맡는 다는 게 부담이 될 때도 있어요. 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 이후 계속 주인공으로 나섰는데 현장에 나갈 때마다 신인 연기자분들에게 죄스러웠어요. 또 뮤지컬 ‘리걸리 블론드’할 때 앙상블 배우 분들이 정말 열심히 하시는데 뮤지컬을 한 번도 안 해본 제가 주인공이어서 마음이 얼마나 무거웠는지 몰라요. 그 때 함게 했던 배우가 ‘네가 필요하니까 그 역할로 뽑은 거야’라고 용기를 주셨죠. 그래서 연기자로 발전할 생각을 늘 해요. 후퇴는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해요. 그렇게 나아가다 보면 언젠간 배우로 인정받는 날이 올 거라 생각해요.”

배우로서 전향을 이야기 하던 중 아이돌 그룹의 해체 이야기도 나왔다. 최근 10년 가까이 활동한 아이돌 가수들이 대거 해체를 선언하거나 잠시 활동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10대 시절, 가수로 데뷔를 하겠다고 연습생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던 이들이 활동 기간이 10년이 채 되지 않는 게 현실이다. 그룹 멤버 중 대부분은 연기자나 또 다른 직업으로 자신의 길을 걷는다. 이에 대해 정은지는 “오랫동안 한 그룹의 멤버로 오랫동안 활동 할 수 없는 점은 아쉽다”라고 말했다.

사진제공=(주)스마일이엔티


“속상하죠. 10대 후반 혹은 20대 초반에 활동을 시작하더라도 그 전부터 연습생 시절을 보냈으니 인생의 절반 이상은 가수로 살기 위해 보낸 거잖아요. 그런데 언제까지 할지 알 수 없고 또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 걱정이 되고 아쉬워요. 저희는 되도록 음악방송 등 무대에 나갈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러기 쉽지 않은 게 아쉽죠.”

이에 정은지는 두 가지 토끼를 다 잡고 싶다. 그는 “에이핑크를 제가 나올 일은 없을 것 같다”라며 “음악과 연기를 모두 다 하고 싶다”라고 의지를 드러냈다.

“바다언니도 계속 S.E.S. 멤버로 기억되듯이 저도 에이핑크 정은지로 남아있고 싶어요. 그러면서 연기도 잘 하고 싶고요. 드라마 뿐 아니라 연극과 뮤지컬 등 많은 영역에서 활동해보고 싶어요. 제가 신년운세를 보니 80세까지 일복이 많대요. 뭐라도 찾아다니며 일할 사주라고. (웃음). 그건 좋은 것 같아요.”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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