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호의 해피존] 퓨처스리그는 선수만을 위한 ‘미래’가 아니다

입력 2019-06-13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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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7일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와 SK 와이번스의 경기에서 LG 류중일 감독(가운데)이 무사 1,2루에서 이형종의 희생 번트 때 3피트 수비방해로 아웃 판정을 받자 심판에게 강하게 항의하고 있는 모습. 스포츠동아DB

메이저리그는 2019시즌 시범경기에서 ‘20초룰’을 적용해 큰 관심을 받았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2015년부터 마이너리그에서 충분한 시간을 갖고 20초룰이 경기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검토해왔다. 인터벌이 긴 투수들은 반대하고 있지만 사무국은 경기시간 단축을 위해 20초룰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시범경기 적용은 이를 위한 단계적 접근이다.

KBO리그에서 적용 중인 12초룰과는 전혀 다르다. KBO리그 규칙은 20초보다 더 빠른 12초 안에 투수가 공을 던져야 하지만 타자를 보호하기 위해 보완 규정을 더했다.

KBO리그 심판은 타자가 타격 준비를 끝낸 시점부터 초시계 버튼을 누른다. 각 타자마다 루틴이 다르기 때문에 판단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메이저리그 20초룰은 포수가 던진 공을 투수가 잡는 순간부터 계측이 시작된다. 타자에게도 룰이 엄격히 적용된다. 투수가 공을 잡으면 15초 이내에 타격 준비를 끝내야 한다.

메이저리그는 20초룰이 경기 시간 단축에 큰 효과가 있음을 마이너리그에서 확인했다. 또한 20초룰이 적용되면 야수들이 극단적인 수비 시프트 위치로 이동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이 부분 역시 메이저리그가 원하는 방향이다. 실제 경기에서 충분히 검토하지 않았다면 얻을 수 없는 결과물이다.

지방자치제의 가장 큰 장점은 실험실이 없는 사회과학 영역의 정책을 실제로 테스트해볼 수 있다는 점이다. 각 지방자치단체의 창의적인 정책이 효과를 인정받으면 국가 전체적으로 확대될 수 있다. 반대로 어떠한 부작용이 뒤따르는지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확인할 수 있다.

메이저리그는 마이너리그를 이처럼 커다란 실험실로 잘 활용하고 있다. 앞으로 구원 투수의 최소 3타자 상대 규칙, 로봇의 스트라이크 판정 등도 마이너리그에서 테스트가 이뤄질 전망이다.

KBO리그에도 ‘미래’를 뜻하는 퓨처스리그가 있다. 과거 2군리그로 불렀지만 KBO의 미래라는 멋진 이름이 주어졌다. 그러나 퓨처스리그는 미래 KBO리그에서 활약할 선수들만의 무대가 돼서는 안 된다.

메이저리그처럼 다양하고 파격적인 테스트가 이뤄지는 창의적인 공간이어야 한다. 올 시즌 KBO는 3피트 수비방해를 엄격히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심판부터 갈팡질팡하고 있다. 오심이 이어지고 있고 몇 차례 경기 결과에 큰 영향을 미쳤다. 퓨처스리그에서 몇 개월 동안 테스트를 하고 심판들에게도 적응할 기회를 줬다면 어땠을까. 문제점을 미리 확인하고 검토 보완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새 공인구 역시 지난해 퓨처스리그를 통해 실제 경기에서 사용했다면 품질의 안정성을 확보하고 리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측이 가능했다. 12초룰 역시 서둘러 도입하다 보니 이런저런 이유로 보완 규정이 덧칠됐다.

KBO는 이처럼 규칙 등 새로운 변화를 줄 때 곧장 1군리그에서 적용하고 있다. 심판들도 준비가 안 됐고 감독, 코치, 선수들은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다. 리그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는 팬들 역시 혼란스럽고 화가 난다.

# ‘마지막 4할 타자’ 테드 윌리엄스는 스트라이크존을 77개의 공으로 나눠 공략했다. 그중 자신이 4할 이상 타율을 기록할 수 있는 코스의 공 3.5개를 ‘해피존’이라고 이름 지었다. 타자는 놓쳐서는 안 되는, 반대로 투수는 절대로 피해야 할 해피존은 인생의 축소판인 야구의 철학이 요약된 곳이다.

이경호 스포츠부 차장 rush@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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