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유재명 “누가 짐승이냐고? 현장 자체가 ‘비스트’”

입력 2019-06-24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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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극단 ‘배관공’을 세워 배우이자 연출가로 활동한 유재명은 그렇게 쌓은 실력을 밑바탕 삼아 최근 다양한 영화에서 활약하고 있다. 26일 개봉하는 ‘비스트’는 새로운 유재명을 만날 수 있는 무대다. 사진제공|NEW

■ 상업영화 첫 주연작 ‘비스트’ 26일 개봉, 유재명

서사 빼고 인물들 정서로 채워진 영화
‘너는 누구냐’라는 질문 던지는 이야기
극중 ‘민태’도 지독하게 현실적인 인물
뒤늦은 인기…몸 둘 바를 모르겠다
팬들 위해 예쁜 옷이라도 입어야죠


늦게 핀 꽃의 향기가 더 진하다. 오래도록 땅을 다지고 싹 틔운 나무가 더 건강하다.

배우 유재명(46)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이미지다. 연극배우로 출발해 영화 주연으로 안착한 이들은 여럿이지만 그처럼 40대 중반에 새롭게 스포트라이트를 차지한 경우는 흔하지 않다.

유재명이 26일 새 영화 ‘비스트’(감독 이정호·제작 스튜디오앤뉴)를 내놓는다. 상업영화 주연은 처음이다. 부담과 긴장이 교차하고 있는 유재명을 20일 서울 삼청동에서 만났다. 어둡게 침잠하는 영화와 캐릭터의 영향 때문인지 평소보다 더 진지한 모습이었다.


● “인간의 본성이란 무엇인가, 묻는 영화”

유재명은 지난해 추석 ‘명당’을 통해 주연급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그보다 앞서 드라마 ‘비밀의 숲’으로 진가를 증명한 그는 ‘마약왕’ 같은 상업영화는 물론 ‘죄 많은 소녀’, ‘봄이가도’ 등 저예산 독립영화를 넘나들며 왕성하게 활동해왔다. 차곡차곡 쌓인 관객의 신뢰가 이번 ‘비스트’로 향하고 있다.

“지독하리만치 인간에 내재된 야수성과 비인간성으로 밀어붙이는 영화죠. 외롭고 처절한 인간들이 나옵니다. 형사물인데도 그 흔한 형사들의 회식 장면 하나 없잖아요.(웃음)”

영화 ‘비스트’에서의 유재명. 사진제공|NEW


‘비스트’는 잔인한 살인사건과 뒤이어 드러나는 마약사건에 뒤엉킨 두 형사 한수와 민태의 이야기다. 이들은 형사과장 승진 후보에 나란히 오른 라이벌이다. 배우 이성민이 연기한 한수는 ‘직감’으로 범인을 좇는 형사. 유재명이 완성한 캐릭터 민태는 이성을 앞세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성공과 출세를 향한 욕망으로 들끓는 인물이다. 영화는 사건이나 인물에 대한 설명에 인색해 불친절하지만 해석의 여지는 그만큼 넓다.

“민태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느냐고 묻는다면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라고 답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정말 외로운 사람, 누구와도 교감하지 못하는 인간이죠. 하지 않아야 할 행동을 하면서도 그걸 ‘내 생각’이라는 칼로 슥∼ 잘라 버려요. 지독히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으로 봤습니다.”

유재명은 “서사나 개연성을 과감히 빼고 그 사이를 인물들의 정서로 채웠다”며 “그 과정에서 10번을 반복해 촬영한 장면도 있을 만큼, 촬영현장 자체가 ‘비스트’였다”고 돌이켰다.

“누가 짐승이냐고 묻는 듯 보이지만 궁극엔 ‘너는 누구냐’는 질문을 던지는 이야기입니다. 자기신념에 빠져 소통하지 못하는 인간, 불구덩이로 뛰어드는 인간, 외부 상황에만 끌려 다니는 인간. 이들 모두 짐승 같아 보입니다.”


● “지지하는 팬들 위해 ‘슈트’라도 입어야겠다”

요즘은 40대 배우들도 아이돌 못지않은 팬덤의 지지를 받곤 한다. 유재명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2017년 출연한 드라마 ‘비밀의 숲’의 성공이 기폭제가 됐지만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한 ‘힘쎈 여자 도봉순’ 등 드라마로 해외 팬덤까지 얻었다.

뒤늦게 얻은 인기에 그는 “뭐라도 돌려 드려야 하는데 방법을 모르겠다”면서도 “요즘 ‘예쁜 옷 입으라’는 팬들의 요구가 많아 그거라도 준비하고 있다”며 웃었다. 팬들이 지목한 ‘예쁜 옷’은 183cm의 키에 날렵한 그의 몸이 확연히 드러나는 ‘슈트’이다.

사실 슈트는 그에게는 아직 낯설다. 고향인 부산에서 대학 때 연극을 접한 뒤 20년 가까이 오직 연극에 빠져 산 그는 마흔 살에 서울 대학로로 상경하고 나서도 슈트 입을 일이 없었다. “편안 운동복만 입는” 일상은 지금도 비슷하다. 다만 자신을 필요로 하는 감독과 작품의 수가 늘어난 상황은 과거와 달라진, 가장 큰 변화다.

“부산에서 늦은 나이에 서울로 와 낯선 환경에서 연기를 했어요. 그때 밑바탕이 된 건 연극이었습니다. 마흔 중반이지만 앞으로도 배우로 살아갈 저에게 가장 중요한 건 기분 좋은 떨림인 것 같아요. 한때 잘해야 한다는 강박도 있었지만 지금은 조금 나아졌어요. 선배들의 충고도 도움이 됐고요.”

배우 유재명. 사진제공|NEW


유재명은 지난해 부산 극단 시절 함께 활동한 후배 연출가와 결혼했다. 8월엔 아빠가 된다. 결혼한 뒤 일상은 어떨까.

“결혼은 정말 현실이더라고요. 밖에서 일하는 시간이 많고 바쁘게 지내다보니 챙겨주지 못해요. 잘 할 수 있을까 늘 걱정하고 있습니다. 물론 든든한 후원자 겸 동반자가 생겼다는 건 좋죠. 제 작품의 모니터를 해주는데 아주 정확히 짚어요. 보는 눈이 저보다 더 매섭다니까요.(웃음)”

곧 태어날 아이에게 자신의 출연작 가운데 보여주고 싶은 작품을 하나 골라 달라고 했다. 잠시 고민한 그는 “아이가 영화를 보는 나이가 될 때까지 ‘아이의 눈으로도 재미있는 영화’를 찾겠다”고 답했다.

유재명은 7월부터 유아인과 함께 영화 ‘소리도 없이’ 촬영을 시작한다. 하반기에는 영화 ‘킹 메이커:선거판의 여우’ ‘나를 찾아줘’ ‘밀월’ 등 개봉을 앞두고 있다. 쉼 없는 활동의 여파로 “육체적인 과부하가 왔다”는 그는 “재충전 방법은 다른 분들과 조금 다르다”고 했다.

“딱 3일만 있으면 돼요. 목욕탕 다녀와서 산책하고, 다음 날 술 한 잔 하고, 그 뒤에 청소하고 빨래하면 됩니다. 하하! 연극할 때부터 습관이에요. 쉬는 방법을 잘 모르기도 하고. 얼마 전에 캠핑용품을 중고로 샀는데, 운전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아직 한 번도 쓰지 못했네요.(웃음)”


● 유재명

▲ 1973년 6월3일생
▲ 1992년 부산대 생명시스템학과 입학
▲ 2005년 부산 극단 ‘배우, 관객 그리고 공간’(배관공) 설립
▲ 2009년 영화 ‘바람’
▲ 2015년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
▲ 2016년 SBS 드라마 ‘질투의 화신’ tvN ‘굿 와이프’
▲ 2018년 영화 ‘명당’ ‘골든슬럼버’
▲ 2019년 tvN 드라마 ‘자백’, 영화 ‘킹메이커:선거판의 여우’ ‘나를 찾아줘’ 개봉 예정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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