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호의 해피존] 감독이 훼손한 올스타전의 가치

입력 2019-07-18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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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염경엽 감독(왼쪽)-이재원. 스포츠동아DB

‘야구란 무엇인가’의 저자이자 기자로 명예의 전당에 오른 레너드 코페트는 올스타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올스타에 뽑힌다는 것은 선수에게 대단한 명예다. 그렇지만 더 좋은 것은 올스타로 뽑힌 뒤 올스타전이 비로 취소되는 것이다.”

팀 성적, 자신의 시즌 기록과 상관없는 올스타전에 대한 많은 선수들의 솔직한 마음을 표현한 문장이지만 야구와 선수를 사랑하는 팬의 입장에선 왠지 쓸쓸해진다.

그러나 모든 선수가 올스타전을 이렇게 바라보는 것은 아니다. 감독시절 자신의 팀 경기 결과에 돈을 걸어 영구 제명됐지만 선수 때는 ‘최고 중의 최고’였던 피트 로즈는 올스타전에서도 부상을 두려워하지 않는 허슬 플레이로 인기가 높았다. 1970년 올스타전 연장 12회말 2사 2루에서 후속 타자의 안타가 터지자 홈으로 질주했다. 이미 포수 레이 포시는 송구된 공을 잡고 홈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충돌방지 규정이 없던 시절이었지만 올스타전이었다. 모두가 로즈의 트레이드마크인 헤드 퍼스트슬라이딩을 보여주며 아웃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로즈는 그대로 달려가 강하게 포수와 충돌했다. 포수는 공을 떨어트렸고 로즈는 결승득점에 성공했다. 경기는 이겼지만 레이 포시는 올스타전에서 쇄골골절이라는 큰 부상을 당했다. 로즈는 “올스타전은 축제지만 승부를 가리는 경기다”고 말했다.

몇 해 전 현역에서 은퇴를 앞둔 진갑용 삼성 라이온즈 배터리 코치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승도 많이 했고 행복했다. 아쉬운 순간? 이걸 말해도 될까…. 2010년 올스타(대구시민구장) 때 8회까지 2안타를 쳤다. 8-8 동점이었던 9회말 무사 2·3루에 다시 기회가 왔다. 결승타를 치면 무조건 ‘미스터 올스타’가 될 수 있는 찬스였다. 그러나 존경하는 스승님 (상대팀) 조범현 감독이 고의사구 사인을 내더라. 하하”

조범현 전 감독은 당시 웨스턴리그 사령탑이었다. 당시 상황에 대해 “덕아웃에서 동시에 ‘고의사구’라는 말이 나왔다. 올스타전이지만 승부욕은 발동하기 마련이다. 진갑용에게는 미안했지만 승부는 승부다. 그런데 결국에는 다음 타자 황재균에게 끝내기 안타를 맞았다”고 기억했다. 조 전 감독과 진 코치는 최고의 포수로 성장을 함께한 특별한 사제지간이었지만 승부는 승부였다.

올스타전은 팬들을 위한 큰 선물이다. 팬과 동료 선수가 뽑은 최고 인기 선수가 베스트로 출전하고 리그 최고의 실력을 가진 선수들이 감독추천 선수로 함께하는 것이 팬들에 대한 예의고 도리다.

그러나 올해 이 원칙을 감독들이 스스로 무너트렸다. 드림팀 사령탑인 SK 와이번스 염경엽 감독은 소속팀 주전 포수 이재원에게 휴식을 주기 위해 올스타전에 뽑지 않았다. 이재원은 팬 투표에서도 삼성 라이온즈 강민호에 이어 2위, 그리고 누가 보더라도 당연히 올스타전에 뛰어야 하는 포수지만 팬이 아닌 팀을 위해 푹 쉬게 됐다. 감독부터 선수 선발에 전력을 다하지 않으니 누가 올스타전에서 전력을 다할까? 로즈의 말처럼 올스타전도 승부를 가리는 야구 경기다. 팬들은 최고의 선수들이 모여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 ‘마지막 4할 타자’ 테드 윌리엄스는 스트라이크존을 77개의 공으로 나눠 공략했다. 그중 자신이 4할 이상 타율을 기록할 수 있는 코스의 공 3.5개를 ‘해피존’이라고 이름 지었다. 타자는 놓쳐서는 안 되는, 반대로 투수는 절대로 피해야 할 해피존은 인생의 축소판인 야구의 철학이 요약된 곳이다.

이경호 스포츠부 차장 rush@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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