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길의 스포츠에세이] 애국가와 평양, 그리고 월드컵 남북축구

입력 2019-07-19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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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카타르월드컵으로 가는 길목에서 남북 축구가 정면충돌한다. 한국은 17일 열린 ‘2022년 카타르월드컵 및 2023년 아시안컵 통합 예선 조추첨’에서 H조에 배정, 레바논·북한·투르크메니스탄·스리랑카와 한 조에 편성됐다. 사진은 2009년 남아공월드컵 예선 때 박지성(7번)이 북한 이광철과 볼 다툼을 하고 있는 모습. 동아일보DB

분단 이후 남북 축구(A매치)가 처음으로 자웅을 겨룬 건 1978년 12월 방콕에서 열린 아시안게임에서다. 1974년 테헤란 대회에서도 마주칠 뻔했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무산됐고, 4년 뒤 만났다. 결승 무대는 축구를 넘어 정권 차원의 싸움이었다. 선수 입장에선 이기면 영웅이고 지면 역적이 되는, 그야말로 사생결단의 승부였다. 한국대표팀 주장 김호곤(현 수원FC 단장)은 “후반 초반에 벌써 근육 경련이 일어날 정도로 부담이 컸던 경기”라고 회고한 바 있다. 서로가 다행인지는 몰라도 결과는 0-0 무승부, 공동 우승으로 끝이 났다.

남북 대결은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과는 무관하게 예측불허의 승부가 펼쳐진다. 일본전이 민족적인 감정의 문제라면, 북한전은 정치와 이념이 깊숙이 파고든 살 떨림의 대결이다. 물론 같은 민족이라는 애틋함은 숨길 수가 없지만 말이다.

지난 40년 동안 남북한의 A매치 결과는 7승8무1패로 남한이 월등하다. 그 1패는 1990년 10월 ‘남북통일축구대회’ 평양 원정경기다. 그 경기는 평양서 열린 유일한 남북 A매치이기도 하다.

남북이 월드컵 본선으로 가는 길목에서 맞붙은 경우는 모두 6번이다. 1989년 10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이탈리아월드컵 최종예선에서 황선홍의 결승골로 1-0으로 이겼다. 1993년 10월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미국월드컵 최종예선에서도 3-0으로 승리했다. 홈&어웨이 방식으로 진행된 남아공월드컵 3차 예선과 최종예선에서 남과 북은 연거푸 한 조에 속했다. 4번의 경기 중 3번을 비겼을 정도로 팽팽했다.

아쉬웠던 건 정치적인 요소가 축구를 흔들어놓았다는 점이다. 애초 평양에서 열릴 예정이던 원정경기는 북한이 태극기 게양과 애국가 연주를 거부해 국제축구연맹(FIFA)의 중재 끝에 제3국 개최가 결정됐다. 서울 하늘에 인공기가 게양되듯, 평양 하늘에 태극기가 펄럭이든 건 아주 정상적인 일이다. FIFA는 마지막까지 “축구가 정치논리에 따라 움직이면 안 된다”고 설득했지만, 북한은 끝내 태극기와 애국가를 허용하지 않았다. 원칙대로라면 몰수 패를 줘도 할말 없겠지만, FIFA도 남북의 특수성을 고려해 그냥 넘어갔고, 원정 경기는 모두 중국 상하이에서 열렸다.

선수단 입장에서 홈과 원정의 차이는 아주 크다. 아무래도 홈 팬의 일방적인 응원과 친숙한 환경 덕분에 홈경기가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당시 김정훈 북한대표팀 감독도 “평양에서 했으면 우리에게 좀 더 유리한 점이 많았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런 축구의 속성은 정치논리에 파묻혀 버렸다.

2022년 카타르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조 추첨에서 남북은 또다시 한 조에 속했다. 남북은 레바논, 투르크메니스탄, 스리랑카 등과 함께 H조에서 순위다툼을 벌인다. 북한과는 10월15일 원정과 2020년 6월4일 홈경기를 갖는다.

이번에도 관심의 초점은 평양에서 원정경기를 치를 수 있느냐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최근 아시아축구연맹(AFC) 주최 대회를 정상적으로 열고 있다는 점에서 낙관하는 분위기다. 여자축구의 경우도 2017년 아시안컵 예선전을 갖기 위해 평양을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태극기가 게양됐고, 애국가도 연주됐다.

조 추첨식을 마치고 돌아온 파울루 벤투 감독은 남북 대결에 대해 “특별한 의미가 없고, 다른 팀과 마찬가지로 두 경기씩을 치른다는 점이 중요하다”며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남북축구는 워낙 민감한 사안이어서 현재로선 그 어떤 것도 장담할 수 없다. 아마도 마지막 순간까지 남과 북은 물론이고 FIFA가 장소를 놓고 논의를 계속할 것이고, 이런저런 조건이 따라 붙을 것이다. 그걸 놓고 또 지루한 협상이 진행될 것이다. 분명한 건 생각처럼 쉽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축구는 축구일 뿐이다. 거기에 다른 요소가 개입되면 그 순수성은 비틀어질 수밖에 없다. 또 다시 제3국 개최 같은 왜곡만은 막았으면 한다. 부디 이번엔 서울과 평양을 오가는, 아주 정상적인 절차대로 진행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최현길 전문기자·체육학 박사 choihg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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