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만에 부산 기장체육관에 나타난 4명 감독과 선수, 코치

입력 2019-07-21 17:17: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사진제공|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 배구단

2002년 10월 13일 부산 기장실내체육관에서는 한국남자배구의 화려했던 역사가 만들어졌다. 남자배구대표팀이 이란을 3-0으로 꺾고 24년 만에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낸 날이었다.

9개국이 참가했던 아시안게임은 남자배구 역사상 최강의 조합이라는 선수구성으로 큰 기대를 모았다. 한국남자배구가 마지막으로 올림픽본선에 나갔던 2000년 시드니올림픽 출전멤버들이 엔트리를 채웠다.

최태웅(왼쪽)-신진식. 스포츠동아DB


A조의 한국은 예선리그에서 이란~마카오~인도~카타르를 3-0으로 격파한 뒤 4강전에서도 일본을 3-0으로 완파했다. 결승전 상대는 예상을 깨고 중국을 누른 이란이었다. 박기원 감독이 지휘했다. 신치용 감독이 이끌고 삼성화재 선수들을 주축으로 했던 대표팀은 강력했다. 1,2세트를 쉽게 따냈던 대표팀은 3세트 24-23에서 최태웅의 연결을 신진식이 마무리하며 우승을 확정했다.

석진욱-장병철-여오현-권영민(왼쪽부터). 사진|KOVO·한국전력·스포츠동아DB


아시안게임 금메달의 주인공은 또 있었다. 석진욱과 장병철 여오현 권영민이었다. 이들 6명은 17년 만에 V리그의 사령탑과 선수, 코치로 기장 실내체육관 코트에 서서 팬들에게 인사를 했다. 감회가 새로운 듯했다. 당시 대표팀 주전세터에서 현대캐피탈 사령탑으로 성장한 최태웅 감독은 “경기장에 들어오니까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그날 이후 처음 왔다”고 했다. 그는 함께 사진을 찍으려고 몰려드는 수많은 팬들의 요청을 일일이 들어주면서 기억을 되살렸다.

“가장 긴장된 경기는 일본전이었다. 결승전에서 우승을 확정한 점수는 김세진 감독의 공격을 상대가 받아내 다이렉트로 올라온 것이었다. 내가 때리려다 신진식 감독에게 연결했다. 신 감독은 우승이 확정되자 가장 좋아했다. 관중석으로 막 뛰어올라갔다”고 했다. 신진식 감독 그 말을 받아 기억을 연결했다. “지금도 그때의 기억이 새롭다. 금메달을 확정하자마자 스탠드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가족에게 달려갔다”고 했다. 신 감독이 다른 선수들보다 유독 좋아했던 이유도 있었다. 아시안게임 뒤 군 입대가 예정된 상태였다.

그래서인지 신치용 감독도 아시안게임동안 선수들의 사생활관리에 많은 신경을 쏟았다. “혹시나 몰라서 밤마다 선수단 숙소 앞에 진을 치고 지켰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신 감독과 함께 숙소를 썼던 장병철 한국전력 감독은 “경기가 끝나면 방에 들어가서 아예 밖으로 나올 생각도 하지 않았다”면서 당시의 분위기를 기억했다 그런 노력 덕분에 이경수 석진욱 장병철 여오현 권영민 등 대부분 출전선수는 군에 입대하지 않고 V리그 출범 때 큰 역할을 했다. 당시 대학 4학년생이었던 권영민 한국전력 코치는 “군 면제 혜택이 당시에는 어떤 의미인지 잘 몰랐다. 하지만 2006년에 선배들이 금메달을 따고 좋아하는 것을 보니 실감이 났다”고 했다. 2002년 엔트리 가운데 김상우는 상근예비역으로 군 복무를 마친 상태였고 김세진은 군 면제자였다.

그날 자신을 포함한 많은 선수들의 군 면제를 확정해준 신진식 감독과 장병철 감독, 권영민 코치, 여오현은 4년 뒤 도하아시안게임에도 금메달을 따내며 한국배구와 후배들을 위해 봉사를 했다. 2연속 아시안게임 금메달 덕분에 출범 초창기의 V리그는 큰 혜택을 받았다. 이번 부산 기장에서 벌어지는 썸머매치는 당시에 응원해준 팬과 관중들에게 입은 은혜를 보답하는 자리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기장|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