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건의 아날로그 스포츠] 악화된 한일관계와 눈치 보는 스포츠

입력 2019-07-23 09: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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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아베 정부의 경제보복 조치로 요즘 한일관계가 아주 나빠졌다. 이전부터도 ‘가깝고도 먼 사이’였지만 지금은 역대 최악의 관계를 향해 치닫고 있다. 끝이 잘 보이지도 않는다. 감정적인 대응은 자제해야겠지만 역사인식 문제가 아니라 다른 의도로 우리 경제를 비신사적으로 공격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국민감정을 건드렸기에 해결도 쉽지 않다. 예전 반일, 극일운동, 일본제품 불매운동과는 대응방식이나 분노의 차원이 달라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반일감정의 불똥이 스포츠로 옮겨붙을까봐 걱정하는 사람들도 생겼다. 스포츠와 정치는 엄연히 분리해야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란 것이 두부 자르듯이 간단하지 않기에 문제다. 8월 일본에서 전지훈련을 치르기로 한 V리그의 몇몇 구단들은 갈까 말까를 놓고 고민이 생겼다. 요즘 분위기에서 일본에 갔다가 괘씸죄에 걸릴까봐 걱정한다. 어느 누구도 선뜻 나서지 않고 눈치만 보고 있다. 당분간 분위기를 보면서 뒤를 따르겠다는 생각이다.

그동안 V리그 대부분 팀들은 일본의 팀들과 자매결연을 맺고 전지훈련 때 숙식 등의 도움을 주고받았다. 연습경기도 했다. 지난해 충북 제천에서 벌어진 남자부 KOVO컵 때는 일본의 JT썬더스를 초청했다. 요즘이라면 상상도 하기 어려운 일이다. 외국인선수가 팀에 합류하는 8월부터 각 팀은 기존 선수들과 집중적으로 손발을 맞춰봐야 한다. 도쿄올림픽 대륙간예선에 출전했던 대표선수들이 복귀하는 8월 중순 이후 며칠이 중요하다. 이때 훈련의 집중도를 높이고 팀의 장단점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많은 연습경기가 필요하다.

그동안은 가까운 일본이 시차도 없고 플레이스타일도 비슷해서 선호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일본 전지훈련을 가야 하지만 대중의 사랑과 지지로 먹고사는 스포츠 팀이기에 지금의 상황이 조심스러운 것이다. 남녀 배구국가대표팀도 딜레마에 빠졌다. 대표팀 유니폼은 일본제 아식스다. 마음대로 계약을 파기할 수도 없다. 사실 스포츠계 여기저기에 일본제품은 많이 들어와 있다. 우리의 용품시장이 그만큼 성숙하지 못해서다. 골프도 마찬가지다. 일본제품을 판매하는 몇몇 골프용품 회사들은 현재의 상황이 아주 불편하다. 어느 용품 회사는 7월 말 예정됐던 대외용 이벤트를 고민 끝에 전격적으로 취소했다.

지금의 복잡한 상황은 배구나 골프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나마 배구는 전지훈련 기간이 짧고 최악의 경우 중국이나 국내에서 하면 되지만 프로야구는 사정이 다르다. 현재 많은 구단이 2월에 일본의 오키나와, 규슈에 캠프를 차리고 최소 보름 이상 전지훈련을 한다. 날씨가 따뜻하다는 장점도 있지만 그곳에서 일본 프로팀과 연습경기를 하며 실전감각을 높여왔다. 프로야구단이 그곳에 뿌린 돈도 상당하다. 만일 훈련장소를 옮기면 일본의 지역 경제에도 큰 영향을 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일관계가 좋아지지 않고 지금보다 더 나빠질 경우 프로야구단도 고민해야 한다. 스프링캠프 훈련계획은 몇 개월 전에 확정해야 하기에 준비시간이 많지도 않다. 대체 장소가 마땅치 않은 것도 문제다. 가을에 하는 마무리캠프도 당분간 일본행이 꺼림칙할 것이다.

고민할 사람들은 또 있다. 앞으로 한국과 일본이 만나는 경기에 출전하는 종목의 선수와 감독이다. 국가간의 감정대립과 스포츠의 승패는 별개로 봐주면 좋겠지만, 국가대표팀은 국민의 열기를 하나로 모으고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존재로 큰 역할을 해왔기에 어쩔 수 없이 부담이 생길 것이다. 당장 올해 말과 내년에 열리는 프리미어12 슈퍼라운드에서 일본을 상대할지도 모르는 대표팀과 김경문 감독의 고민거리가 하나 더 늘었다. 물론 이런 때마다 현명하게 행동하고 더욱 투지를 불태워서 좋은 결과를 만들었던 우리 선수들의 ‘일본전 DNA’를 믿기에 큰 걱정은 하지 않는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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