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만든 ‘나랏말싸미’…개성 강한 ‘엑시트’ ‘사자’

입력 2019-07-25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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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랏말싸미’. 사진제공|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 여름 스크린 대전…7월 기대작 3파전

‘나랏말싸미’ 진중한 사극 매력
‘엑시트’ 재난영화 공식 비틀어
‘사자’ 오컬트 영웅 탄생 기대감


여름시즌, 영화 흥행 대전의 닻이 올랐다. 24일 ‘나랏말싸미’(제작 영화사두둥)를 시작으로 31일 ‘엑시트’(제작 외유내강)와 ‘사자’(제작 키이스트)가 관객을 찾는다. 7월과 8월은 연중 가장 많은 관객이 극장으로 몰리는 시기. 매년 1000만 흥행작이 한두 편씩 탄생하는 빅 시즌으로 통한다. 7월 개봉작들에 대한 관객 반응에 따라 8월 출격하는 ‘봉오동 전투’ 등 이후 판도가 달라질 수도 있다. 저마다 경쟁력으로 극장에 나서는 세 편을 3개 키워드로 읽는다.


● 이야기…한글 창제 vs 재난 vs 악령

‘나랏말싸미’는 역사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작품이다. 억불정책에 집중한 세종이 실존인물인 신미 스님에게 ‘나라를 위해 세상을 이롭게 한 분’이라는 법호를 내렸다는 기록에서 착안, 한글 창제의 비밀에 다가가는 이야기다. 지식을 백성과 나누고자 했던 세종(송강호), 왕의 뜻에 맞서 신념을 굽히지 않는 신미(박해일), 이들을 연결하고 자극한 ‘대장부’ 소헌왕후(고 전미선)의 불꽃 튀고 빈틈없는 대결이 압권이다.

무게감 있는 배우들이 이끄는 ‘나랏말싸미’와 달리 ‘엑시트’는 신선한 조합인 조정석과 윤아가 나선 재난 탈출극이다. 어머니 칠순 잔치에서 가스 테러에 맞닥뜨린 대학 선후배가 이를 피해 건물 옥상을 넘나들며 필사의 탈출을 벌이는 이야기. 두 사람이 산악부 동아리 출신이란 설정은 옥상 탈출이 절실한 재난과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명쾌한 이야기인 ‘엑시트’에 비해 ‘사자’는 복잡한 서사가 뒤엉킨 작품. 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자란 이종격투기 선수(박서준)가 손에 생긴 ‘성흔’을 계기로 바티칸 구마사제(안성기)를 만난 뒤 악에 맞서는 내용이다. 구마의식을 함께하는 둘은 도시를 피로 물들인 악령에 다가선다.

영화 ‘엑시트’.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 경쟁력…웰메이드 vs 짠내 폭발 vs 장르

세 편은 저마다 경쟁력으로 관객을 공략한다. 다만 ‘대중성’ 면에서 차이가 있다. 한글 창제 원리를 집요하게 파고들어 미처 몰랐던 사실을 곱씹게 만드는 ‘나랏말싸미’는 세종을 현실적이고 이상적인 지도자로 그리는 미덕까지 발휘한다. 10년 넘는 준비 끝에 밀도 높은 영화를 완성한 조철현 감독은 “세종을 인간에 대한 빚이 많고 상처가 깊은 분으로 바라봤다”고 밝혔다.

같은 날 격돌하는 ‘엑시트’와 ‘사자’의 개성도 극명하다. ‘엑시트’가 기존 재난영화 공식을 비틀어 웃음과 눈물을 동반한 ‘짠내 폭발’ 탈출극을 지향한다면, ‘사자’는 익숙한 오컬트(초자연적 현상) 장르를 안정적으로 답습하면서 영웅탄생 서사까지 버무린다.

가족에게 구박당하는 취업준비생이 대학 때 익힌 뜻밖의 기술로 가족을 구하는 ‘엑시트’는 흡사 현실에서 일어날 법한 상황을 재치 있게 그려 공감을 높인다. 이상근 감독은 “지진, 쓰나미가 아닌 유독가스를 택한 건 주변 환경을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상황으로 만들고 싶어서였다”며 “이를 마주한 젊은이들이 생존을 위해 계속 달리며 기지를 발휘해 역경을 헤쳐 나가는 모습을 관객이 체험하길 바랐다”고 말했다.

‘사자’는 ‘다크 히어로’ 시리즈를 지향한다. 할리우드에선 익숙하지만 한국영화에선 본격적으로 시도된 적 없는 어둠의 세계관을 구현하려는 김주환 감독의 의지가 크다. 감독은“ 피의 수녀단, 귀신을 부리는 승려단 등 설정으로 세계관을 확장하고 싶다”고 했다.

영화 ‘사자’.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 약점…진지하거나, 과하거나, 가볍거나

‘나랏말싸미’와 ‘엑시트’의 총 제작비는 나란히 130억원, 컴퓨터그래픽이 많은 ‘사자’는 이 보다 높은 147억원이 투입됐다. 저마다 350만∼400만 명씩을 모아야 투자금 회수가 가능하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경쟁력이 확실하지만 약점이 없을 순 없다. ‘나랏말싸미’는 한글 창제 과정을 설명하는 데 지나치게 집중했다. 진중한 역사극을 선호한다면 만족할 수 있지만, 학구적인 구조가 한계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사자’는 오컬트와 공포, 영웅 서사에 감성 드라마까지 뒤섞인 탓에 오히려 집중력을 떨어뜨린다. 앞서 ‘검은 사제들’과 ‘사바하’로 이어진 신과 악의 세계관 구축을 이미 경험한 관객에게 얼마만큼 새로운 재미를 선사할지 미지수다.

이들과 비교해 ‘엑시트’는 재난을 가볍게 그리지만 곱씹을수록 약점보다 미덕이 많은 작품이다. 민폐 유발 캐릭터, 억지 눈물을 자극하는 신파 코드도 없다. 허술한 주인공들이 코믹한 상황을 딛고 극적인 성공을 얻는 과정에선 올해 초 흥행한 ‘극한직업’의 향기가 난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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