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길의 스포츠에세이] 무모+무례+무능, 3無가 부른 ‘호날두 노쇼’ 참사

입력 2019-07-28 14: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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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동아DB

한 여름 밤에 뒤통수를 세게 맞았다. 상상도 못한 촌극 앞에 할 말을 잃었다. 사상 초유의 사태를 겪은 축구 팬들은 “대국민 사기극”이라고 울분을 토했다. 그 표현이 결코 자극적이지 않다는 건 경기장을 찾은 팬들이라면 다들 공감한다. 집단소송을 하겠다는 입장도 충분히 수긍이 가는 부분이다.

이른바 ‘호날두 노쇼 사태’는 26일 열린 유벤투스(이탈리아)와 팀 K리그 간 친선경기에 계약상 45분간은 출전했어야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4)가 뛰지 않은 게 핵심이다. 약속은 어떠한 경우에도 지켜져야 한다. 만약 지키지 못할 땐 상대가 이해할 수 있도록 양해를 구해야 한다. 그게 사람의 도리다.

하지만 이런 상식은 통하지 않았다. 호날두뿐 아니라 유벤투스 구단과 주최자(더 페스타), 한국프로축구연맹 등 어느 누구도 이번 사태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경기 다음날 프로축구연맹은 “당초 계약과 달리 호날두가 경기에 출장하지 않아 팬들에게 실망을 끼쳐드렸다”며 사과했다. 주최 측도 계약서에 호날두가 최소 45분 이상 출전하는 것이 명시되어 있다는 점과 유벤투스 구단의 계약 불이행에 대비하지 못한 점에 대해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이런 반성문이 머리끝까지 치민 팬들의 분노를 누그러뜨릴 수는 없다. 심지어 호날두나 유벤투스 구단은 한마디 사과도 없다. 이번 사태는 무모와 무례, 그리고 무능이 부른 참사다. 이해할 수 없는 일정을 짠 무모함과 팬들은 안중에도 없는 무례함, 그리고 최소한의 소통과 설득도 없는 무능함이 이번 사태의 핵심이다.

우선 일정 자체가 최악이었다. 유벤투스가 국내에 머문 시간은 10여 시간에 불과했다. 점심 때 들어와 오후에 팬 사인회를 갖고 저녁에 경기를 한 뒤 다음 날 새벽에 출국하는 스케줄이었다. 바늘구멍만큼의 여유도 없이 빡빡하다. 아무리 전세기를 탄다고 하더라도 국가 간 이동을 해야 한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이라면 시간적으로 충분히 대비하는 게 기본이다. 예고라도 하듯 처음부터 일이 꼬였다. 기상 악화로 2시간이나 연착되면서 팬 사인회도, 친선경기도 모두 엉망이 됐다. 유벤투스의 중국 일정과 K리그 일정을 맞추다보니 하루짜리 투어가 불가피했다지만 애초에 팬들을 만족시키기 힘든 일정이라면 무조건 재고했어야 했다.

그래도 팬들은 호날두만 출전한다면 이 정도는 용서해줄 마음의 자세였다. 호날두의 드리블과 골, 그리고 ‘호우 세리머니’면 보상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호날두는 기대를 저버렸다. 팬들은 ‘45분 출전’만 철석같이 믿었지만 전반에 이어 후반에도 벤치만 지켰다. 그는 이날 아예 몸을 풀지 않았다. 팬들 사이에 ‘우리 형’이었던 그는 이제 ‘날강두’로 바뀌었다. 전광판에 비친 모습마저 밉살스러울 정도로 호날두의 이미지는 한순간에 추락했다. 호날두를 향해 “메시”를 연호한 건 그만큼 심한 배신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뒤늦게 알려진 사실이지만 호날두는 경기 전날 이미 뛰지 않는 것으로 결정됐다. 그렇다면 최소한 팬 미팅과 사인회에는 참석하는 게 도리였다. 거기에서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점을 알리고 양해를 구했어야 했다. 또 경기장에서는 팬들의 환영에 진심 어린 인사를 하는 게 마땅했다. 경기 이후엔 미디어를 통해 미안함을 전하는 게 예의였다. 그런 기본 예의조차 내팽개친 호날두는 스타로서 대접받을 자격이 없다.

주최 측의 무능력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이번 친선전은 입장료만 60억원이 넘는 초대형 이벤트였다. 팬들이 이런 엄청난 액수를 지불했다는 건 주최 측이 약속한 ‘호날두 45분 출전’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었다. 팬들은 주최 측의 능력을 믿고 엄청난 액수를 지불했다. 그렇다면 주최 측은 어떤 수를 쓰더라도 약속을 지켜야했다. 많은 돈을 번만큼 깔끔한 일처리를 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

유벤투스나 호날두 모두 “위약금을 물면 그만”이라는 거만한 태도를 보인 게 문제이지만, 대회를 주최한 당사자가 이들과 소통하고 설득하는 능력을 보여주지 못한 것도 문제였다. 호날두의 사인회가 무산되자 주최 측은 “경기에 집중하기 위해서”라는 어설픈 해명으로 분노를 키웠다. 호날두의 컨디션을 알려주지 않은 구단도 문제지만, 그걸 후반에서야 알았다는 주최 측의 자세도 한심하다. 그건 변명이 아니라 무능함을 스스로 드러낸 꼴이다. 경기 외적으로도 불법 베팅 광고가 버젓이 지상파 중계를 탔다는 의혹이나 부실한 뷔페에 대한 원성도 해명해야 할 부분이다.

이번 참사의 가장 큰 피해자는 궂은 날씨에도 경기장을 찾은 6만여 명의 관중이다. 그들의 상처 난 마음을 달래줘야 한다. 프로축구연맹은 주최 측에 소송한다고 하고, 주최 측은 유벤투스에 위약금을 받아내겠다고 한다. 그럼 티켓 팔 때의 약속을 어긴 부분에 대해서도 당연히 구제를 해줘야 한다. 그게 올바른 셈법이다.

최현길 전문기자·체육학 박사 choihg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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