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통수 맞고 2㎏씩 빠져도…“행복하다”는 KT 마스코트 체험기

입력 2019-08-02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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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동아 최익래 기자는 7월 28일 수원 위즈파크에서 KT의 마스코트 또리로 변신했다. 무더위 속 워터 페스티벌로 물 대포까지 발사돼 인형 탈 안팎이 흠뻑 젖었지만 한시도 쉬지 못하고 치어리더와 함께 응원 율동을 계속해야 했다. 수원|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어느 야구장에나 있지만 정체는 아무도 모르는 존재. 바로 마스코트다.

응원단장, 치어리더와 함께 마스코트도 팬들 사이 스타 대접을 받는다. 하지만 그라운드의 스타들과 달리 마스코트는 자신의 진짜 얼굴을 철저히 숨긴다. 동심을 깨서는 안 된다는 이유다. 가장 양지에 있으면서도 가장 음지에 있는 존재들이다.

폭염이 이어지던 7월 말, 이들의 고충을 직접 겪어보고 싶었다. 10개 구단 마스코트 중 가장 인기가 많은 KT 위즈의 마스코트 ‘빅’과 ‘또리’ 중 또리를 택했다. KT 마스코트는 두꺼운 털옷을 입고 있기 때문에 생생한 체험기 작성이 가능할 것 같았다.


● 최고기온 36도·습도 81%의 행복

이왕 마스코트 체험을 기획했으니 제대로 도전하고 싶었다. 집중호우가 지나간 뒤 폭염이 시작된 7월 28일 수원 LG 트윈스-KT전을 택했다. 하늘도 이러한 진심을 알았는지 경기 개시 2시간 전까지 장대비를 뿌렸다. 최고기온 36도, 습도 81%로 마스코트 체험하기 딱 좋은 날씨였다. 이래서 사람은 평소에 착한 일을 많이 해야 한다.

경기 전 김주일 응원단장은 “지금이라도 포기하는 게 좋다”라고 조언했다. KT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한 워터페스티벌 이벤트가 진행 중이라 인형 탈이 흠뻑 젖어있다는 걱정이었다. 탈 무게만 3㎏, 복장을 다 갖추면 6㎏ 정도인데 물 때문에 두세 배는 더 무겁게 느껴진다고 염려했다. 평소 팬들에게 “안 된다, 못한다 하지 말고 어떻게? 긍정적으로!”를 외치면서 나한테는 왜….

KT 마케팅팀 관계자는 기자에게 “뚱뚱해서…. 옷이 맞을지 모르겠다”고 염려했다. 사실이었다. 또리 옷을 착용하는 것부터 일이었다. 체험 덕에 잠시 자유의 몸이 된 기존 또리가 힘겹게 복장을 채워줬다. 탈을 쓰는 순간 시야가 평소의 절반 이하로 줄었다. ‘선배’ 빅은 “팬들이 물총을 쏘면 앞이 아예 안 보일 것이다. 그러다 넘어진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산재보험 적용이 되는지 미리 알아보지 못한 게 아차 싶었다.

관중석에 서는 순간 마스코트는 절대 탈을 벗을 수 없고 말을 해서도 안 된다. 아이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장난을 치자 한 걸음을 내딛기도 어려웠다. 수원|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 “그래. 나 사람이다!”

빅 선배에게 전해들은 마스코트 3대원칙은 ‘탈을 벗지 말 것’, ‘말을 하지 말 것’, ‘화를 내지 말 것’이었다. 탈을 쓴 채 1루 응원석으로 향하는 그 짧은 시간에 이 원칙을 깰 뻔했다. 초등학교도 입학하지 않은 것 같은 아이들이 뒤통수를 마구 때리기 시작했다. 탈이 워낙 크기 때문에 공간이 넓어 맞을 곳도 많았다. 고사리손에 맞았는데도 울림 탓에 얼얼했다. 꼬마들의 “너 사실 사람이지? 인형 아니지?”라는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하는 내가 미웠다. 탈을 벗고 “그래. 나 사람이다. 인생이 이렇게 힘들다. 사실 산타클로스는 이 세상에 없다”고 동심을 깨고 싶었다. 한 어머님이 딸과의 사진촬영을 부탁해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딸이 울기 시작했다. 함께 울고 싶었다.

3년째 KT를 담당한 덕에 대부분의 응원가와 율동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단상에 서자 이것이 오산임을 깨달았다. 동선 하나도 제대로 외우지 못하고 있었는데, 김진아 치어리더가 친절히 의자 앞으로 잡아끌어줬다. 역시 ‘찌나뇽’이 ‘갓’이었다.

안타 하나마다 곳곳에 설치된 물대포가 터지며 팬들의 환호성을 자아냈다. 16대의 워터캐논, 18대의 워터젯, 3대의 스프링클러에서 자유로운 공간은 없었다. 마스코트의 시야는 철저히 봉쇄됐다. 앞이 안 보여 팔을 허우적댔는데 밖에서 보기에는 환호하는 것처럼 보였을 것 같다.

기사 작성을 위해 하이파이브 및 사진촬영 횟수를 세려고 했다. 하지만 20분 만에 하이파이브는 100회, 사진촬영은 30회를 돌파했고 세는 걸 포기했다. 쪼그려 앉기도 힘들었지만 일일이 사진촬영에 응대했다. 귀여운 또리와 촬영했다고 생각한 팬들에게는 이 자리를 빌려 사과드린다. 그 안에는 시커먼 ‘아재’가 들어 있었다.

또리를 보며 환호하는 팬들과 함께하는 순간은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았다. 수원|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 양지와 음지의 공존, 마스코트에게 박수를

KT는 올해 워터페스티벌 컨셉을 ‘수원 해수욕장’으로 잡았다. 전광판 우측 외야에 25m 길이의 해변가를 조성했고 썬 베드를 설치했다. 잠시 썬 베드에 누워 휴식을 취하려는데도 숱한 사진촬영 요청을 받았다. 팬들에게 워터페스티벌은 말 그대로 축제였다. 이런 축제 분위기를 깨지 않기 위해 모든 요청에 일일이 응답했다.

장점도 있었다. 험상궂게 생긴 빅 대신 귀여움의 상징인 또리 체험을 택한 덕에 “귀엽다”는 얘기를 수십 번 들었다. 태어나서 귀엽다는 얘기를 가장 자주 들은 하루였다. 한 KT 팬은 “매일 고생한다”며 과자를 건네줬다. 나는 오늘만 고생한다. 차마 내가 먹지 못해 빅 선배에게 전해줬다.

확실히 빅과 또리는 KT 팬들 사이 스타였다. 빅, 또리 선배들은 “또리는 확실히 만인의 스타다. 빅은 약간 ‘매니악한’ 취향을 가진 분들이 좋아한다”고 설명했다. 아직 철이 없는 아이들이야 마스코트를 때리고 지나가지만, 대부분의 팬들은 “또리야, 너무 덥지?”, “고생이 많아” 등의 위로를 건넨다. 얼음 팩을 쥐어준 팬부터 휴대용 선풍기 바람을 쐬어준 팬들까지…. 그들의 진심이 느껴질 때마다 힘을 얻었다.

빅, 또리 선배들도 같은 얘기를 전했다. “더위 걱정을 많이 하는데 많이 익숙해졌다. 물론 힘들긴 하지만 어느 정도 내성이 생긴 느낌이다. 다만 가끔 인신 공격성 발언이 들릴 때면 마음의 상처를 입는다. ‘냄새가 난다’는 지적도 마찬가지다. 최대한 세척을 자주하지만 한계가 있다. 그래도 응원해주시는 팬들이 많아 힘이 난다.”

김주일 응원단장도 “마스코트는 선수, 응원단장, 치어리더 중 가장 체력 소모가 크다고 확신한다. 매 경기 체중이 2㎏씩 빠진다. 다만 마스코트도 하나의 직업이다. 가끔 목을 조르는 팬들도 있다. 때리거나 욕하는 분들만 없어진다면 덜 힘들게 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마스코트는 가장 밝은 곳에 서있지만 실은 가장 음지에 머물고 있다. 폭염이 이어지는 때도 경기 시작 2시간 전부터 경기 시간 내내 자신을 숨긴 채 팬들의 환호를 이끌어낸다. 이들의 땀과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수원|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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