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베이스볼] ‘해태 순혈’ 이강철, ‘베이스볼 블러드’를 버리다

입력 2019-08-06 13: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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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이강철 감독. 스포츠동아DB

“그래서, 네가 야구를 해봤어?” 불과 몇 년 전까지 야구는 야구인들의 전유물이었다. 야구를 해보지 않은 이들의 담론은 철저히 장외에서만 머물렀다. 미국 메이저리그(MLB)에서는 비야구인들의 토론에서 촉발된 ‘세이버메트릭스’가 주류로 자리매김했지만 KBO리그에서는 그 속도가 더뎠다. 외부의 제언에 “야구를 직접 해보긴 했나?”라고 반문하면 그만이었다.

선수 시절 쌓아온 커리어가 강할수록 비야구인에 대한 성벽은 철옹성처럼 두터운 편이다. 그래서인지 야구계에는 ‘해태 출신 지도자는 성공하기 어렵다’는 고정관념이 존재했다. 선동열 전 감독이 삼성 라이온즈에서 우승을 달성했지만, 서정환·김성한·이순철·한대화 감독 등 대부분은 성공하지 못했다. 역대 최다인 9차례 우승을 이룩한 팀이니 걸어왔던 세월이 좀 대단했나. 여기에 해태는 감독 개인의 카리스마가 팀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구조였다. 선수 시절 쌓아올린 것에 대한 자부심에 선수단 휘어잡기가 더해지며 자율성이 필요한 현대 야구에서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또다른 ‘해태 출신’ 이강철 KT 위즈 감독(53)의 행보는 독특하다. 이 감독은 현역 시절 통산 602경기에서 152승, 평균자책점 3.29를 기록했다. 데뷔 시즌인 1989년부터 1998년까지 10년 연속 두 자릿수 승수를 기록했는데 이는 아직까지도 깨지지 않는 대기록이다. 화려한 커리어를 바탕으로 은퇴 직후 KIA 타이거즈에서 코치직을 시작했지만 정작 감독 영전은 쉽지 않았다. 수석코치로 염경엽(넥센 히어로즈·현 키움)~김태형(두산 베어스) 등 야구 후배를 감독으로 모시기도 했다. 그럴수록 이 감독은 자신의 내실을 다지는 데 전념했다. 이 감독도 넥센 코치로 막 부임했을 즈음, 해태 스타일을 고집해 혼란을 겪었지만 자신의 귀를 열고 비야구인들의 여러 담론에 대해 학습했다. 유연한 투구폼을 앞세워 최고의 투수로 군림했던 그의 사고가 유연해진 것이다. 그는 “해태 출신에 대한 외부의 편견을 넘기 위해 애썼다”고 회상했다.

이 감독은 지난해 11월 취임식에서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스타일보다는 새로운 지도 방법을 추구하고 공부할 수 있는 코치들을 모셨다”고 밝혔다. 이 감독이 넥센에서 수석코치로 있을 때 투수코치로 호흡을 맞춘 박승민 코치가 대표적이다. 박 코치는 은퇴 후 각종 웹사이트를 뒤져가며 자료 수집 및 공부에 매진하며 시스템을 학습했다. 이 감독으로서는 자신의 야구를 잘 아는, 가장 든든한 참모다. 올 시즌 주권·정성곤의 불펜 전환은 데이터에 대한 철저한 이해로 나온 결과다. 우투수 주권이 좌타자 상대, 좌투수 정성곤이 우타자 상대로 등판하는 것도 단순한 ‘좌우놀이’에 매진되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지난해까지 열풍이었던 ‘발사각 혁명’에서 벗어나 강한 라인드라이브 타구 생산에 초점을 맞추게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KT 코칭스태프는 매주 전력분석 파트와 기록에 대한 미팅을 갖는다. 선수들의 변화를 매주 모니터하며 한 주의 운용 계획에 참고한다.

자존심도 버렸다. 이 감독은 “판단이 틀렸다면 빨리 바꿔야 한다. 뱉은 말의 번복은 감독 입장에서 자존심이 상할 수 있다. 하지만 난 그런 자존심은 없다. 내가 생각만 바꾸면 팀 전체가 강해진다. 내 고집으로 거듭 패한다면 그게 더 창피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유연한 사고의 증거다. 유격수 황재균, 선발 이대은 등 자신의 구상이 결과로 이어지지 않으면 즉각 변화의 메스를 댔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존심을 버리자 성적이 나기 시작하며 위상이 더욱 올라갔다.

베이스볼 블러드(Baseball Blood). 선수 출신들이 자신의 경험들이 만든 편견으로 철옹성을 쌓는, 이른바 야구인 순혈주의를 의미한다. 성공의 정도가 클수록 성벽은 두터워진다. 이강철 감독과 KT 코치진은 그 철옹성을 스스로 허물었다. 창단 첫 후반기 5위는 베이스볼 블러드를 버린 결과다.

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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