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길의 스포츠에세이] 김신욱은 벤투의 애제자가 될 수 있을까

입력 2019-08-27 1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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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남자 축구대표팀 벤투 감독(왼쪽)-김신욱. 사진|스포츠동아DB·대한축구협회

어울림의 정도를 나타내는 궁합은 남녀 사이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스포츠에서도 자주 인용된다. 선수 성장의 첫째 요소는 누가 뭐래도 실력이겠지만, 능력 말고도 다양한 관계가 작용하는 게 사실이다. 특히 지도자와의 궁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축구의 경우 국가대표팀을 맡은 외국인 감독이 다른 종목에 비해 많다 보니 감독의 성향에 따라 선수의 운명이 달라지는 경우를 자주 봐왔다.

거스 히딩크 감독은 부지런하고 투지 넘치는 박지성이나 김남일 등을 발굴해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의 초석을 만들었다. 반면 엔트리에서 탈락한 이동국과는 인연이 닿지 않았다. 2006년 월드컵 본선을 목표로 영입된 요하네스 본프레레 감독은 박주영에 대한 혹평으로 곤욕을 치렀다. 2004년 아시아청소년선수권과 이듬해 K리그 데뷔를 통해 신드롬을 일으켰던 박주영을 두고 그는 “훅 불면 날아갈 것 같다. 개인기는 좋지만 체력에 문제가 많다”면서 처음엔 달가워하지 않았다. 체격조건을 우선시한 본프레레는 이동국에 대한 신뢰가 두터웠다. 본프레레 경질 이후 지휘봉을 잡은 딕 아드보카트 감독 체제에서 황태자는 이호와 김동진이었다. 아드보카트는 기존 감독들과는 다른 시각으로 이들을 평가하면서 애제자로 삼았다. 2018년 월드컵을 대비해 영입된 울리 슈틸리케 감독은 무명에 가깝던 공격수 이정협을 발굴해 중용했다. 이렇듯 감독의 성향은 선수 성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2022년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을 앞두고 파울루 벤투 대표팀 감독이 김신욱(상하이 선화)을 선발해 화제다. 지난해 8월 지휘봉을 잡은 벤투는 그동안 김신욱을 선택지에서 배제해왔다. 자신의 빌드업 축구와는 거리가 멀다고 판단했다. 6월 평가전을 앞두고도 “득점과 도움 등 단순한 기록 숫자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며 당시 K리그 득점 선두였던 김신욱을 외면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중국 슈퍼리그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아시아의 즐라탄’으로 거듭난 김신욱에 대해 벤투는 “이번에 선발하는 것이 시기적으로 맞다. 김신욱의 특징을 잘 살릴 수 있는 조합을 고민하겠다”고 했다. 물론 소집 명단과 경기 투입은 별개의 문제다. 벤투도 “대표팀 스타일에 얼마나 적응하는지 점검할 계획”이라며 선을 그었다. 하지만 장신 공격수(197cm)에 대한 기대치가 올라간 건 사실이다.

그동안 김신욱은 국내 대표팀 감독들과는 궁합이 잘 맞지 않았다. 허정무 감독의 2010년 월드컵에서는 가능성을 보였지만 본선에 발탁될 정도의 기량은 아니었다. 홍명보 감독의 2014년 월드컵에서는 많은 기대를 받았지만 부응하지 못했다. 신태용 감독의 2018년 월드컵도 신통치 않았다. 상하이 선화를 맡고 있는 최강희 감독과는 특별한 인연을 이어왔지만 대표팀에서는 ‘계륵’으로 취급될 만큼 존재감이 흔들렸다.

그런 김신욱이 축구인생의 전환점이 될 수도 있는 기회를 잡았다. 벤투호의 황태자가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벤투의 설명대로 김신욱은 다른 유형의 스트라이커다. 벤투는 1월 아시안컵 실패를 거울삼아 상대 밀집 수비를 뚫을 방법 중 하나로 김신욱을 선택한 듯 하다. 벤투의 필요성이 더 큰 것이다. 자신의 철학이 흔들리지 않는 범위에서 김신욱을 어떻게 활용할지 관심이다. 김신욱은 더 간절해야 한다. 벤투 스타일에 적응하는 게 우선이다. 벤투가 강조하는 기술과 연계 플레이에 대한 더 많은 연구와 노력이 필요하다.

벤투와 김신욱, 처음으로 엮어진 이들의 사제 궁합이 어느 정도일지 궁금하다.

최현길 전문기자·체육학 박사 choihg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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