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리그 레이더] 남자 신인드래프트에서 나왔던 숨은 얘기들

입력 2019-09-17 13: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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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서울 청담동 리베라호텔에서 2019~2020 KOVO 남자 배구 신인선수 드래프트가 열렸다. 드래프트에 선발된 신인 선수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16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 리베라호텔에서 벌어졌던 2019~2020 KOVO 남자 신인선수 드래프트 결과 43명이 지원해 30명이 프로에 입단했다. 약 70%의 취업률이다. 젊은이들이 취업하기 어렵다는 요즘에 별천지처럼 느껴지는 수치다. 어느 팀 단장은 “정부의 정책에 따라서”라면서 농담처럼 애기했지만 사실 그 이면에는 이렇게라도 해서 많은 배구유망주를 뽑아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감을 모두가 가지고 있었다. 샐러리캡 한도 때문에 12명으로 선수등록을 해야 하는 대한항공마저도 3명의 신인을 지명했다.

● 배구선수와 가족에게는 운명의 순간인 신인 드래프트

선수출신의 한국전력 공정배 단장은 “우리 차례가 오면 패스하지 않겠다. 선수들이 많이 뽑아서 잘 키우는 것이 프로팀의 할 일”이라고 했다. 오랫동안 선수들을 뒷바라지 해온 학부모의 입장에서는 신인드래프트가 모든 것이 걸린 운명의 순간이다. 만일 프로팀에 지명을 받지 못하면 그 선수는 그동안 쌓아온 배구와 인연을 끊어야 한다. 동시에 다른 인생을 찾아봐야 한다. 물론 말은 쉽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가족의 생계까지 걸린 중대한 일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에 수련선수로 가장 마지막에 삼성화재 유니폼을 입은 김재남(명지대·세터)의 말은 인상적이었다.

삼성화재가 머뭇거리는 순간, 사회자는 드래프트가 종료됐다고 선언했다. 이때 행사장 구석에서 결과를 기다리던 그는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이때 신진식 감독이 단상으로 올라와 지명했으니 짧은 순간에 지옥과 천당을 모두 경험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는 “사회자가 끝났다고 하는 순간 이제 군대에 가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해온 배구와의 이별은 이처럼 신인드래프트 현장에서 잔인하게 찾아온다. 기자는 이번에 프로팀 유니폼을 입은 30명보다는 선발되지 못한 23명의 미래와 그동안 열심히 뒷바라지 해온 학부모의 속상함에 더욱 눈길이 간다. 경쟁사회에서 누군가 앞서면 누군가는 뒤에 서야겠지만 운동만 하면서 지내온 이들이 새로운 환경과 세상에서 잘 적응하고 배구와 좋은 인연을 이어가기를 바란다.

● 배구 꿈나무와 미래를 위한 장기계획이 필요하다

70%의 높은 지명은 현장 감독들의 의지가 많이 반영된 결과였다. 남자부 7개 구단 감독들은 그동안 2군리그와 엔트리 확대의 필요성에 공감을 해왔다. 물론 문제도 많다. 몇 년째 변하지 않는 엔트리 때문에 입단하는 숫자만큼의 선수들이 조용히 유니폼을 벗는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각 팀에게는 모든 것이 걸린 전쟁이나 마찬가지인 V리그와 KOVO컵에서 출전기회가 적다 보니 제대로 평가도 받지 못한 채 짧은 시간에 프로생활을 끝내는 선수들도 많다. 이들을 위해서라도 뭔가 새로운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하지만 현재의 제도에서는 할 방법이 많지 않다.

어느 구단 관계자는 “1~2라운드로 신인을 지명하면 구단 입장에서는 입단금과 학교지원금 등으로 약 5억원이 들어간다. 이런 상황에서 무조건 선수 숫자만 늘리라고 하면 동의하기 어렵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구단은 모기업에서 정해주는 예산 한도 내에서 돈을 쓰는 조직이다. 요즘처럼 어려운 경제 환경에서 무턱대고 배구발전을 위해 돈을 더 내놓으라고 모기업에 요구할 만큼 무모한 단장은 없다. 그래서 새로운 방안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구단 선수단 지원금을 받는 학교 등 모두가 고통을 분담하면서 보다 많은 선수가 혜택을 받는 방안을 찾아봐야 한다.

새로운 시스템은 구단들의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는 미래에 실현하는 것으로 모두 약속을 하고 전문가들이 해법을 찾아보는 방식을 택해야 한다. 여기에는 엔트리 숫자뿐만 아니라 신인지명과 2군 운영방식, 2차 드래프트와 귀화선수의 처리방안, 샐러리캡의 현실화를 포함한 다양한 계약형태 등을 종합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4~5년의 충분한 시간여유를 두고 V리그 출범 20주년을 맞아 새로운 V리그를 탄생시킨다는 각오로 방법을 찾다 보면 길이 나올지도 모른다. 물론 V리그가 앞장서서 한국배구에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팬이 만족스러운 경기를 해야 한다는 명제는 변함이 없다.

● 행운이 필요했던 한국전력, 스카우트가 현장에 오지 않은 이유

이번 신인드래프트에서 가장 눈길을 가는 팀은 한국전력이었다. 예상대로 장신세터 김명관을 선택했다. 강민웅을 지도자로 변신시키기로 결정한 한국전력은 이호건과 FA영입선수 이민욱 모두가 군 입대 예정자여서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한국전력은 KB손해보험과 OK저축은행이 어떤 선택을 할지 사전에 정보도 모았다. 그 결과 KB손해보험은 문제가 없었지만 OK저축은행은 김명관을 원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15%의 확률을 가진 OK저축은행이 첫 번째 구슬을 뽑는 경우만 아니면 김명관을 품에 안겠지만 그래도 장담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팀의 스카우트와 선수발굴을 책임지는 김철수 전 감독을 드래프트 행사장에 데려오지 않았다. 김철수 전 감독 시절 구슬 뽑기에서 몇 차례 좌절을 맛본 터라 혹시라도 이번에 불운이 이어지면 안 된다는 노심초사가 만든 결정이었다. 다행히 장병철 새 감독은 외국인선수 트라이아웃과 신인드래프트 등 두 번의 중요한 구슬 뽑기에서 원하던 순번을 모두 뽑았다. 그래서 감독은 지혜와 용기 덕보다 행운이 때로는 필요하다.

16일 서울 청담동 리베라호텔에서 2019~2020 KOVO 남자 배구 신인선수 드래프트가 열렸다. 경희대 알렉스(가운데)가 1라운드 6순위로 대한항공에 선발된 후 박기원 감독(맨 왼쪽)을 비롯한 관계자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 대한항공 알렉스가 불러일으킬 나비효과

대한항공의 유니폼을 입은 귀화선수 알렉스는 이번 신인드래프트에서 가장 화제를 모았다. 한국생활 5년차답게 한국어 인터뷰도 능통했다. 발음이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의사소통을 하기는 충분했다. 그의 프로행을 놓고 생각해봐야 할 것은 많다. 다문화가정이 일반화된 가운데 만일 피부색이 다르고 체격조건이 월등한 선수를 알렉스와 같은 방식으로 드래프트에 참가시킨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갈수록 낮아지는 한국배구의 국제경쟁력을 감안할 때 문호개방 전략을 택할 것인지 순수한 우리 핏줄 위주로만 경기를 하는 것에 만족할 것인지를 놓고 많은 의견을 들어봐야 할 것 같다.

여담이지만 알렉스와 대한항공의 궁합은 좋을 것 같다. 이미 대한항공은 탁구팀에서 중국선수를 귀화시켜 성공을 거둔 경험이 있다. 탁구대표팀 감독 출신의 이유성 단장이 이를 가장 잘 아는 전문가라는 점도 참고사례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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