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 김태술이 4쿼터 이상범 감독 대신 작전 판을 잡은 이유는?

입력 2019-10-15 06: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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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DB의 김태술(가운데·1번)이 13일 창원에서 열린 ‘2019~2020 현대모비스 프로농구’ 창원 LG와의 원정경기 4쿼터 종료 50초를 남기고 타임 아웃 때 선수들을 불러모아 작전지시를 하고 있다. 이는 지도자와 선수가 수직관계인 국내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장면이었다. 사진제공|KBL

미국프로농구(NBA)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그렉 포포비치(70)는 일흔의 나이에도 소통하는 지도자로 잘 알려져 있다. 특히 샌안토니오의 전성시대를 일군 팀 던컨, 마누 지노빌리, 토니 파커(이상 은퇴)와는 가족 이상의 신뢰를 쌓았다.

2013년 샌안토니오는 파이널(7전4승제)에서 마이애미 히트와 만났다. 1차전 92-88로 앞선 경기 종료 5.2초 전 작전타임 때 파커는 코치들과 의견을 나누려던 포포비치 감독에게 다가가 ‘선수들끼리 작전을 상의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포포비치 감독은 흔쾌히 이를 허락하고 벤치에서 한 발 물러섰다. 선수들은 파커를 중심으로 머리를 맞대고 함께 작전을 짰다. 이 장면은 중계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그대로 전해져 화제가 됐다.

이와 비슷한 장면이 13일 창원체육관에서 열린 원주 DB와 창원 LG의 ‘2019~2020 현대모비스 프로농구’ 정규리그에서도 나왔다.

DB선수들은 68-51로 앞선 경기 종료 50초 전 LG의 작전타임에 벤치로 들어왔다. 사실상 승기를 잡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DB의 이상범 감독(50)은 선수들에게 별도의 지시를 하지 않았다. 팀의 고참선수인 김태술(35)이 이 감독을 대신해 작전판을 잡고 선수들에게 움직임을 지시했다. 김태술은 “4쿼터 막바지에 선수들끼리 LG를 만난 (김)종규에게 1대1 몰아주기를 하자고 이야기를 했었다. 그런데 1대1이 계속 되면서 정체가 된 느낌이었다. 그냥 경기를 끝내기보다는 우리끼리 움직임을 가져가면서 공격을 하나 만드는 것이 좋을 것 같아 패턴을 그렸다”고 설명했다.

감독과 선수가 수직 관계인 국내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이지만, DB에서는 어색한 모습이 아니다. 감독의 생각 못지않게 코트 위에 있는 선수들의 생각도 중요하다고 여기는 이 감독의 지도 방식이다. 선수들에 대한 존중과 신뢰가 담겨 있다.

김태술은 “상대 팀이 지역방어를 하거나 변칙적인 수비를 하면 감독님이 나와 (윤)호영이에게 ‘야, 너희끼리 얘기 좀 해서 잘 풀어보라’고 하신다. 그러다 보니 창의적인 움직임도 나오고 서로 재미있게 농구를 하게 되는 것 같다”며 웃었다.

개막 4연승. DB가 괜히 잘나가는 것이 아니다.

정지욱 기자 stop@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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