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사나이’ 허경민, “‘허묻두살’ 대신 ‘허잘두잘’은 안 되나요?”

입력 2019-10-26 20: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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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경민의 환하게 웃은 듯 어색한 듯한 표정. 고척 | 최익래 기자

“인터뷰 안 한 이유요? 승회 형 때문에….”

허경민(29·두산 베어스)은 ‘가을 사나이’라는 별명이 잘 어울린다. 올해 포함 포스트시즌(PS) 51경기에서 타율 0.353, OPS(출루율+장타율) 0.856, 24타점, 29득점을 기록했다. 통산 wRC+(조정득점생산)는 132.2로 역대 두산 타자 가운데 6위다. 김재환(173.2), 타이론 우즈(149.3), 안경현(146.5), 최준석(141.9), 전상렬(134.2) 다음이 허경민으로 김동주(121.1), 이종욱(116.4)도 그보다 낮은 생산력을 보였다.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허경민은 26일 한국시리즈(KS) 4차전 종료 후에도 활짝 웃지 못했다. 두산이 9-8로 앞선 9회 2사 만루, 서건창의 땅볼 타구가 3루 쪽으로 향했는데 허경민이 이를 더듬었다. 그는 “두산이라는 팀에 너무 큰 빚을 졌다. 특히 투수 (이)용찬이 형에게 정말 미안하다”며 “앞으로 형이 부르면 새벽에라도 나가겠다. 맛있는 게 먹고 싶다면 달려가서 사오겠다”고 다짐했다.

허경민은 올 PS를 앞두고 인터뷰를 자제했다. 포털사이트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표면적으로는 ‘부담스럽다’는 이유를 내걸었지만 정작 사연은 따로 있었다. 바로 투수 김승회의 꿈을 이뤄주고 싶다는 책임감이었다.

26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2019 신한은행 MY CAR KBO 포스트시즌‘ 두산 베어스와 키움 히어로즈의 한국시리즈 4차전이 열렸다. 4회초 2사 1루 두산 허경민이 1타점 2루타를 치고 2루에서 기뻐하고 있다. 고척 |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KS를 앞둔 훈련 기간, 김승회는 허경민 옆을 지나며 “올해는 꼭 우승하고 싶다”고 했다. 김승회는 프로 데뷔 이래 단 한 번도 우승반지를 끼지 못했다. 혼잣말을 우연히 허경민이 들은 걸 수도 있지만, 그 마음을 이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한 설레발을 치고 싶지 않아 인터뷰도 고사해왔다. 그는 “올해 정말 고생한 형 아닌가. 형의 우승 열망이 가슴에 박혔다”며 “우승 후 이 얘기를 멋지게 하고 싶어서 인터뷰를 자제했다”고 했다.

가족에 대한 고마움도 전했다. 허경민은 지난 시즌 종료 후 새신랑이 됐다. 아내는 매일 같이 야구장을 찾아 그를 응원했다. 아내가 응원한 날 3안타를 친 그에게 ‘아내 덕 아닌가’라고 묻자, “그렇다면 난 최다안타왕이 돼야 한다. 그만큼 매일 같이 응원을 와준다. 정말 고맙다”고 답할 정도였다. 그는 KS 우승 직후 “선수로서, 남편으로서 미안하다. 좋은 남편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허묻두살. 허경민이 묻혀야 두산이 산다는 뜻의 문장이자, 두산 팬들의 짓궂은 농담이 섞인 단어다. 매번 PS에서 활약함에도 시리즈 MVP 등 상복이 없다는 이유에서 나왔다. 허경민은 “그 뜻을 알고 있다. 하지만 ‘묻힌다’는 단어의 어감이 조금 그렇다”며 “내가 좀 더 잘하면 팬들께서 ‘허경민이 잘했고 두산도 잘됐다’고 해주시지 않을까”라며 인터뷰를 마쳤다.

고척 | 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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