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발리볼] 동창생 감독 3명이 공유한 교훈은

입력 2019-10-30 10: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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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서울 청담동 리베라호텔에서 ‘2019-2020 도드람 V리그’ 남자부 미디어데이가 열렸다. 한국전력 장병철 감독과 현대캐피탈 최태웅 감독, OK저축은행 석진욱 감독(왼쪽부터)이 출사표를 밝히고 있다.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도드람 2019~2020시즌 남자부에서 가장 팬들의 관심이 큰 것은 1976년생 감독 3명의 행보다.

인천 주안초등학교에서 배구를 시작한 이들은 초중고교시절 전국을 휩쓸었다. 연승기록도 만들었다. 이들은 대학을 따로 선택했지만 삼성화재에 다시 모여서 또 우승신화와 연승기록을 세웠다. 세월이 흘러서 유니폼을 벗은 3명은 이제 프로팀의 사령탑으로 다시 우정의 대결을 벌인다.

전 세계 스포츠계 어디에서도 쉽게 찾아보기 힘든 흥미로운 스토리다.

현대캐피탈 최태웅 감독은 3명 가운데 가장 먼저 지도자가 됐다. 4년간 2번의 리그우승과 2번의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했다. 이제 막 감독생활을 시작한 동기들보다는 한 발 앞서 있다. 시즌을 앞두고 동기들이 하나 둘 감독으로 선임되자 그는 “이제 고생길 시작이다. 그동안은 몰랐겠지만 두고 봐라”라며 겉으로 알던 감독생활과 실제는 많이 다를 것이라고 예견했다.

모든 결정에 책임을 지는 외로운 자리. 승패의 부담도 엄청나기에 감독자리가 주는 스트레스는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매일 해결해야 할 숙제가 끊이지 않고 결과로 모든 것을 말하는 감독은 승리를 위해 선수들을 다그쳐야 한다. 이 것이 지나치면 선수들과 사이가 멀어진다. 자신도 모르게 여유가 사라지고 오직 앞만 보고 달리며 결과만을 추구한다.

최태웅 감독은 순천 KOVO컵 때 인터뷰에서 이런 조급증을 고백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디펜딩챔피언의 자리를 지켜야한다는 부담에 나도 모르게 선수들에게 압박감을 줬다. 내 스타일답지 않았다. 몰입했다. 파고들다보니 부담을 줬다. 내 스스로 먼저 마음을 비워야 한다”고 했다.

지금 현대캐피탈은 최악의 상황이다. 외국인선수 에르난데스가 시즌 개막 2경기 만에 부상을 당했다. 아직 새로운 외국인선수는 정해지지도 않았다. 설상가상 팀의 중심을 잡아줘야 할 신영석은 29일 한국전력과의 경기를 앞두고 허리부상을 당했다. 결국 팀은 졌다.

현대캐피탈은 30일 현재 1승3패 승점3으로 최하위다. V리그 출범 이후 출발이 이렇게 나쁜 적은 없었다. 다급할 만도 한데 그는 동기생의 첫 승리를 먼저 축하하며 포옹도 했다. 자신보다는 개막 4연패로 아직 승리의 기쁨을 경험해보지 못했던 친구를 생각했던 그 마음씀씀이를 알기에 한국전력 장병철 감독은 승리 뒤 동기의 얘기를 꺼냈다. 감사의 마음도 전했다.

“최 감독이 나를 따뜻하게 감싸 안아줬다. 이전에도 경기가 안 풀리거나 연패를 당하면 조급해지고 시야가 좁아진다고 충고했는데 정말 그렇더라”라고 했다. 급할수록 시야를 넓게 하고 돌아가는 길을 찾아보라는 조언은 진정한 친구가 아니면 선뜻 해주기 어려운 말이었다. 연패의 부담에서 벗어난 장병철 감독과 한국전력 선수들은 앞으로 더 편한 마음으로 경기를 하게 됐다.

OK저축은행 석진욱 감독도 이 귀중한 교훈을 스스로 깨달았다. 시즌 전까지 새치머리를 고집했던 그는 어느 날 염색을 하고 나타났다. 뭔가를 깨닫고 난 뒤였다. “감독으로서 선수들과 같이 호흡해야 하는데 되돌아보니 내가 선수들에게 맡겨놓고 지적질만 하고 있었다. ‘내가 왜 이러고 있지?’라고 반성하고 염색부터 했다. 선수들이 원했다”고 털어놓았다.

내가 앞장서서 따라오라고만 강요하기 전에 먼저 한 발 다가가서 같은 눈높이로 대화하고 마음을 여는 기술을 이들은 공유했다. 최근 3연승으로 동기생 가운데 가장 잘 나가는 석진욱 감독은 “강한 훈련을 시키더라도 소통하고 선수들과는 동등하게 대화한다. ‘감독으로서 내가 원하는 것은 이것이다. 너는 무엇을 원하냐’는 대화를 많이 했다”면서 OK저축은행이 지난 시즌과 달라진 비결을 털어놓았다. 이들의 배구에 많은 영향을 줬던 신치용 전 삼성화재 감독은 “코트에 들어간 6명의 마음이 하는 경기가 배구”라고 했다.

말로만 원 팀이 아니라 선수들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기술과 생각. 그 것을 잘 유도하는 사람이 좋은 리더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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