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세 거장이 묻는다, ‘지나칠 것인가’

입력 2019-10-31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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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13일 개봉하는 영화 \'블랙머니\' 촬영 현장에서의 정지영 감독. \'남부군\' 부터 \'하얀전쟁\'을 넘어 \'부러진 화살\'까지 우리 사회를 향해 꾸준히 질문을 던진 감독이 이번에는 \'모피아\'와 \'검찰 개혁\'을 이슈를 꺼낸다. 사진제공|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73세의 거장 감독이 사회에 던지는 날카로운 질문이 관객을 찾아간다. 11월13일 개봉하는 영화 ‘블랙머니’를 통해 경제 문제와 검찰 권력의 민낯을 파헤치는 정지영 감독이 건네는 물음이다. 주연 배우로 영화 작업을 이끈 조진웅은 “무관심을 치유하는 백신을 맞은 기분”이라고 밝혔다. 이제 관객이 느낄 차례다.

‘블랙머니’(제작 질라라비)는 성추행 누명을 쓴 열혈 검사(조진웅)가 의도치 않은 사건에 휘말리면서 금융비리를 파헤치고 폭로하는 이야기다. IMF 외환위기 직후인 2003년 외국 자본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헐값에 인수한 뒤 막대한 이익을 챙기고 매각한 이른바 ‘론스타 먹튀 사건’을 소재 삼았다. 허구의 인물인 검사와 외국 펀드의 법률고문을 맡은 미국 대형 로펌의 엘리트 변호사(이하늬)를 두 축으로 이야기를 구축해 론스타 사건의 진실로 관객을 안내한다.

실화 사건을 전면에 내세워 미처 몰랐던 진실을 추적하는 ‘블랙머니’는 일찍이 ‘남부군’ ‘하얀전쟁’을 비롯해 최근 ‘부러진 화살’ ‘남영동 1985’에 이르는 작품으로 관객과 호흡해온 정지영 감독의 작품이란 사실에서 기대의 시선을 얻는다. “이 영화를 하지 않으면 잠을 잘 수가 없었다”는 감독은 “사건을 파헤칠수록 매우 흥미로웠고 반드시 해야 하는 이야기라는 결심이 굳어졌다”고 밝혔다.

11월13일 개봉하는 영화 '블랙머니'는 외한은행 헐값 매각 사걱을 극화한 작품이다. 자본과 결탁한 경제 관료 출신의 금융가, 즉 '모피아'의 문제를 전면에 다루면서 강렬한 메시지를 던진다. 사진제공|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 강렬한 ‘실화의 힘’…“함께 토론의 장을 마련했으면”

탐욕스러운 외국 펀드와 불법도 서슴지 않는 국내 금융자본, 그리고 나라 경제를 움직인다고 자평하는 고위 관료들이 결탁했을 때 벌어지는 ‘참사’를 파고드는 영화는 특히 ‘모피아’의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한다.

경제 관료들이 퇴임 후 금융권으로 진출해 막강한 세력을 구축하는 행위를 마피아에 빗대 표현한 ‘모피아’는 외환은행 헐값 매각 뿐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 논란을 야기해왔다. 영화에서는 전직 국무총리 출신의 경제학 박사(이경영)가 모피아를 상징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이에 더해 전직 금융 감독원장, 대통령의 전화도 ‘나중에 받겠다’고 미루는 연봉 1000억 원의 스타 변호사까지, 극적이지만 일면 현실적인 인물들이 이야기를 채운다.

실화가 만드는 힘은 역시 강하다.

'블랙머니'의 정지영 감독(왼쪽 첫 번째)이 주인공 검사 역을 맡은 조진웅(가운데)와 상의하는 모습. 사진제공|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특히 조진웅이 연기한 검사를 중심으로 드러나는 검찰 조직의 모습은 최근 검찰개혁 이슈와 맞물려 씁쓸함을 남긴다. 단지 영화라고 치부하기엔 현실에 던지는 메시지 또한 강하다. 조진웅은 “눈 뜨고 코 베인다는 말이 뭔지 이 영화가 담고 있다”며 “영화를 통해 진실을 접하고 분개했다”며 “함께 보면서 토론의 장을 마련했으면 한다”고 밝혔다.

여전히 관련 재판이 진행 중인 실화 소재인데다 모피아와 검찰, 금융자본까지 고발하는 영화인만큼 제작 과정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정지영 감독은 가까운 주변 사람들까지 “걱정하고 (연출을)만류할까봐 알리지 않고 조심스럽게 제작을 준비해왔다”고 털어놨다. 내심 투자도 어려울 거라 예상했지만 뜻을 모은 50여 명의 제작 위원들이 힘을 합해 영화화를 이뤘다.

방대한 자료 조사도 험난한 과정이긴 마찬가지. 감독과 제작진은 2011년 외환은행 매각을 전후로 나온 감사원의 보고서뿐 아니라 대법원 판결자료, 노동조합 백서 등 온갖 자료를 취합해 시나리오에 녹여냈다. 다소 어려운 경제 문제를 잘 모르는 관객도 쉽게 따라오도록 만드는 게 이들 앞에 놓인 가장 큰 숙제였다.

정지영 감독은 “경제에 사회 비리 고발까지 하는 영화이다 보니 대다수 관객이 ‘이 시국이 이런 영화까지 봐야 하나’라고 말할 수도 있다”며 “어떻게 하면 재미있을까, 쉽고 재미있을까,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완성했다”고 밝혔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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