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점검①] 현실 이슈땐 무차별 ‘1점 테러’…순수창작물 영화가 위험하다

입력 2019-11-04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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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부러진 화살’(왼쪽)-영화 ‘변호인’ 포스터. 사진제공|NEW

■ 영화 ‘82년생 김지영’으로 짚어본 평점테러

‘부러진 화살’ ‘변호인’ 대표적 사례
표현의 자유 ‘평점’, 혐오 수단 변질
대응책 없어 왜곡된 시선 확산 우려


적지 않은 영화에 대한 ‘평점 테러’의 피해가 심각하다. 영화 개봉 전, 이를 보지도 않고 악의적인 혐오와 공격을 더해 10점 만점에 1점을 부과하며 일부러 점수를 낮추는 행위다. 포털사이트 영화 게시판이 공격의 주요 무대다. 최근작 ‘82년생 김지영’ 역시 피해를 피할 수 없었다. ‘평점 테러’가 최근 더욱 광범위하게 자행되면서 영화계 안팎에서 ‘경고등’이 켜진 가운데 이에 대한 건전한 비판이 절실하다. 3회에 걸쳐 평점 테러의 폐해를 짚고, 그 대안을 모색한다.

온라인 영화 평점은 영화에 대한 감상평과 만족도를 점수로 매기는 것이지만, 어느새 표현의 창구 기능을 잃고 공격과 혐오의 수단으로 악용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 특히 사회적 의제를 담거나 현실 이슈와 맞닿은 영화들이 주 공격 대상이다. 하지만 그 정도가 도를 넘어선다는 지적이 많다. 10월23일 개봉해 2주 연속 박스오피스 정상에 오른 ‘82년생 김지영’에 가해지는 융단폭격에 가까운 공격에서 그 민낯이 낱낱이 확인된다.


● 송강호의 ‘변호인’…평점 테러 융단폭격

‘평점 테러’라는 말이 본격 등장한 것은 2012년 영화 ‘부러진 화살’부터다. 해고 당한 대학교수가 사법권력에 맞선 실화를 다룬 영화가 개봉하자 포털사이트 영화 게시판에서 ‘의문의 1점 평점’이 속출했다. 사법부에 대한 정면 비판, ‘남부군’ 등 영화로 현실에 대한 날선 시선을 견지해온 정지영 감독의 연출작이란 점을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는 광주민주화운동 피해자 가족의 이야기인 ‘26년’, 1980년대 공권력의 고문과 가혹행위를 비판한 정지영 감독의 또 다른 영화 ‘남영동 1985’로도 이어졌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개봉 이후, 그것도 비교적 소극적인 형태에 그쳤다.

그야말로 ‘맹공’ 수준으로 본격화한 건 2013년 12월 개봉한 송강호 주연 ‘변호인’이다. 개봉을 앞둔 11월 초부터 본격 시작된 주된 공격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야기’라는 데 집중됐다. 일찌감치 관심을 차단하려는 움직임 속에 혐오와 막말이 쏟아졌다. 연출자인 양우석 감독은 당시 “여러 의견이 공존할 수 있다”면서도 “우리 사회가 성숙해 대중은 자체적으로 판단하고, (평점 테러는)일종의 해프닝이 되지 않을까 싶다”고 밝혔다. 실제 ‘변호인’은 영화 자체의 힘으로 1137만 여 관객을 동원했다.

‘변호인’과 ‘82년생 김지영’의 홍보마케팅사인 퍼스트룩 강효미 대표는 “순수 창작물이 아닌 정치·사회·문화적으로 첨예한 화두나 인물을 다루는 영화일수록 평점을 통한 지지층과 반대층이 대립하는 현상이 두드러진다”고 짚었다.

영화 ‘82년생 김지영’ 포스터.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 “왜곡된 시선 확산 우려”

문제는 이에 대한 대응책이 사실상 없다는 점에서 피해의 양상은 더욱 심각하다. 강 대표는 “작품이 어떤 주제를 다뤘는지도 확인하지 않은, 개봉 전부터 이뤄지는 비방성 공격은 어떤 식으로든 영화에 영향을 미친다”고 밝혔다.

특정 프레임을 영화에 덧씌워 이슈를 생산하는 행위도 종종 목격된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이야기인 ‘군함도’는 밑도 끝도 없는 ‘역사왜곡 논란’에 휘말려 ‘평점 테러’를 당했고, ‘인랑’은 난민 문제에 대해 적극 발언한 정우성이 주연한다는 이유로 공격받았다. CJ엔터테인먼트 오지은 과장은 “평점을 통한 공격은 영화의 본질이 채 전달되기도 전, 대중 사이에 선입견이나 왜곡된 시선을 확산할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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