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조정은’만을 보고 들었던 2시간, “다시 마주할 수 있을까”

입력 2019-11-22 14: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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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0일 블루스퀘어 아이마켓홀을 메운 2000여 팬들
- 옛 사진첩을 들추듯 지난 작품과 넘버들로만 채운 2시간
- 게스트로 등장한 김준수, 2020년 2월 ‘드라큘라’에서 재회

어두운 객석에 불 하나가 켜졌다. 하나는 둘이 되고, 둘은 열이 되고, 열은 서른, 백, 천으로 물에 푼 잉크처럼 번져 나갔다. 블루스퀘어 아이마켓홀을 밤하늘의 별처럼 밝힌 수많은 점, 점들. 그 불빛들이 서서히 좌우로 흔들리기 시작하자 노래가 시작됐다.

“이 밤 그날의 반딧불을 / 당신의 창 가까이 보낼 게요 / 음 … 사랑한다는 말이에요.”

뮤지컬배우 조정은의 첫 번째 단독 콘서트 ‘마주하다’가 11월 19일과 20일 두 차례에 걸쳐 열렸다. 조정은을 아끼고 사랑하고 기다려 왔던 2000여 명의 팬들이 한남동 블루스퀘어 아이마켓홀 객석을 가득 메웠다.

조정은은 뮤지컬 음악감독 양주인이 이끄는 19인조 오케스트라와 함께 120분이 넘는 시공간을 노래와 짧은 토크로만 채웠다. 조정은의 별명인 ‘선녀’에 맞춰 이 오케스트라의 이름은 ‘나뭇꾼’으로 명명되었다.

첫 조명이 ‘톡’하고 떨어지자 눈부시게 하얀 드레스를 입고 무대 한 가운데에 선 조정은은 네 곡의 노래로 인사를 대신했다. ‘Belle’, ‘Home’, ‘Part of your world’, ‘reflection’. 모두 디즈니의 곡이다.

이어 그가 출연했던, 혹은 출연하지 않았지만 “팬 분들께 꼭 들려드리고 싶었다”라는 뮤지컬의 넘버들이 무대 위의 조명보다 더 강렬하게 객석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피맛골연가’, ‘베르테르’, ‘지킬 앤 하이드’, ‘닥터지바고’, ‘레미제라블’, ‘스핏파이어그릴’, ‘드라큘라’, ‘모래시계’, ‘맨 오브 라만차’. 조정은은 500여 일의 긴 공백기가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기량과 감정을 실어 한 곡 한 곡 선물처럼 쌓아 올렸다.

관람한 19일 콘서트 첫날에는 세 명의 게스트가 조정은의 콘서트를 축하하기 위해 무대에 올랐다. 조정은이 게스트 최현주, 이혜경과 부른 ‘In his eyes’는 절창으로 이 곡은 ‘지킬 앤 하이드’에서 엠마와 루시가 부르는 2중창 곡이다. 세 사람은 모두 이 작품에서 엠마를 맡은 공통된 경험을 갖고 있다.


세 번째 게스트는 조정은과 ‘드라큘라’에서 호흡을 맞췄던 김준수 등장. 김준수는 조정은과 드라큘라의 애절한 ‘Loving you keeps me alive’를 듀엣으로 들려주었다. 두 사람은 2020년 돌아오는 뮤지컬 ‘드라큘라’에서 다시 한 번 영원한 연인으로 재회할 예정이다.

‘드라큘라’는 조정은이 “나의 배우 인생의 경계선이 된 작품”이라고 정의한 작품이기도 하다. 그는 “배우 조정은은 드라큘라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다”라고 했다.
‘드라큘라’는 조정은에게 배우로서의 경계선이 되었겠지만 아마도 그의 최고 애정작은 역시 ‘스핏파이어그릴’이 아닐까. 조정은은 종종 이 작품에 대한 애착을 드러내곤 했는데 이날 콘서트에서도 스핏파이어그릴의 넘버를 두 곡이나 불렀다. 조정은은 이 작품을 마친 뒤 영국 유학길에 올랐고, 당시 그의 나이 서른하나였다.

“저는 선녀 선녀하지 않아요. 화장, 머리, 옷에 속으시면 안 돼요. 제 속에는 화가 많아요(웃음).”

오로지 ‘조정은’으로만 채웠던 콘서트. 그만의 곱고 깨끗한 음색, 광폭대역의 표현력,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세포단위의 세밀한 해상력. 잘 들어보면 ‘선녀 선녀하지만은 않은’ 소릿결. 오직 ‘조정은’만을 보고 들었던 공연.

조정은은 기대했던 ‘나는 나만의 것(엘리자벳)’을 앙코르 곡으로 부르며 콘서트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작품 하나, 노래 한 곡. 사진첩을 보듯 그가 출연한 작품들을 들춰보면서 함께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조정은과 관객이 마주하고, 조정은과 조정은, 관객과 관객이 마주했던 시간.
하지만 아무래도 아쉽다. 서로를 알아가기에 마주한 2시간은 너무 짧았던 것이다. 20시간, 아니 200시간은 보아야 좀 알 수 있으려나.
그러니까 조정은의 ‘첫 콘서트’가 ‘혹시 마지막 …’ 따위의 말은 농담으로라도 하지 말아주시길. 지금이라면 “500일만 더 기다려”라는 말도 사양하고 싶군요.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제공 | 컴퍼니 휴락, PL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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