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인터뷰] 루시드폴 “손가락 부상=터닝포인트, 안테나 단점 없는 소속사”

입력 2019-12-16 11: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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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인터뷰] 루시드폴 “손가락 부상=터닝포인트, 안테나 단점 없는 소속사”

유기농 귤을 재배하는 가수 루시드폴이 이번에는 소리를 채집했다.

16일 공개되는 루시드폴의 정규 9집 [너와 나]는 반려견 보현과의 컬래버레이션으로 완성된 기묘한 앨범이다. 그동안 반려 동물을 대상으로 한 작품집은 많았으나, [너와 나]처럼 반려동물과 대등한 파트너로 작업한 경우는 드물다. 루시드폴은 보현이 내는 소리를 채집, 가공했다.

루시드폴은 “내 아내를 앞세워서 보현의 저작권을 등록하고 보현 전용 계좌 통장도 만들 예정이다. 이제 보현이는 경제적으로 독립하는 셈”이라며 “아쉽지만 저작권료는 내가 위탁 관리를 해야 한다. 보현과의 작업을 하게 된 계기이기도 한 유기견 센터에도 보현의 이름으로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동네에 개인이 하는 유기견 보호소가 있거든요. 점점 규모가 커져서 운영이 힘들어졌어요. 때마침 출판사에서 ‘손으로 말해요’라는 그림책 번역 일을 제안 받았고 번역을 해서 번 돈으로 보호소를 지원하는 것도 의미 있다고 판단했죠. 출판사에선 덧붙여서 보현의 사진집까지 제안했고요. 그런데 굳이 강아지 사진을 책으로 낼 필요가 있을지 고민이 되더라고요. 마침 올해 정규 앨범을 내야하니, 함께 할 수 있는 작업을 하기로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소리를 채집했을까. 루시드폴에 따르면 2018년 농장 일을 하다 손가락 부상을 당했고, 기타를 켜며 노래를 해야 하는 입장에서 ‘음악적 거세’를 당한 기분이었다. 그는 “돌파구를 찾다 손가락을 안 쓰는 음악, 전자 음악, 실험 음악 위주로 관심을 갖게 됐다”며 “인간이 만드는 소리 이 외에 귀 기울였다”고 보현의 소리로 앨범을 구성한 배경을 되돌아봤다.

“계절마다 들을 수 있는 소리가 다 다르잖아요. 총 13개 곡이 수록돼 있고, 루틴 베이스 사운드예요. 산책하는 보현이, 짓는 보현이, 밥그릇을 긁는 보현이.. 이런 소리들이 신기하게도 말이 되더라고요. 소리DNA라고 할 것이고, 이 DNA로 또 다른 음악을 만들었을 때 보현이에게도 영혼이 있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지난 12일 선공개된 ‘콜라비 콘체르토’는 보현이 직접 연주하고 넓은 범주에선 작곡까지 한 트랙이다. 루시드폴은 편곡을 맡았다. 루시드폴은 ‘보현의 데뷔’를 자랑스러워했고 “이번 앨범을 보현에게 들려주니 짖지 않고 편안하게 듣더라. 자기 소리가 있는 것을 인지한 것 같다”며 강아지를 위한 콘서트 개최 계획도 덧붙였다.

“저는 진지해요. 결정되진 않았지만 강아지를 위한 콘서트를, 사람의 시선이 아닌 개의 시선으로 기획한 공연을 하고 싶어요. 아침 산책 후 공연을 보고, 마사지를 받는 아침 스파 콘서트 패키지라면 어떨까요? 보현은 제 노래 들으면 1분도 되지 않아 자요. 사람도 자는 마당에(웃음) 심적으로 안정적이라는 의미죠. 공연은 실제로 회사와 의논하고 있어요.”


타이틀곡 ‘읽을 수 없는 책’은 루시드폴이 만들고 루시드폴 자신이 위로받은 노래다. 인간에게 반려견은 한 권의 읽을 수 없는 책이라고, 함께 보낸 시간들이 쌓여있지만 정작 페이지를 열면 아무 것도 읽을 수 없는 너를 노래한다. 432Hz로 낮춰서 튜닝한 연주는 곡의 온도를 사람 체온에 가깝게 끌어내려 계속 듣게 하는 매력을 지녔다.

루시드폴은 “‘보현이 아닌 다른 강아지를 입양했다면 어땠을까’ 나는 똑같이 사랑했을 것”이라며 “그럼 개와 인간은 서로 사랑할 수 있을까? 있다면 그 사랑은 무엇일까. 나는 왜 사랑할까. 솔직히 아직도 답을 모르겠다”고 타이틀곡을 설명했다.

“다만,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원형에 가장 가까운 느낌을 받곤 해요. 저는 아이가 없고, 아이가 있을 때 느낄 수 있는 하이레벨의 사랑이랄까요? 누구나 사랑하고 싶고 사랑 받고 싶어서 반려동물과 사는 것 같아요. 인간이기 때문에 할 수 없는 종류의 사랑. ‘읽을 수 없는 책’은 음식을 맛있게 만들어서 누굴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먹었는데 맛있고 나를 위해서 맛있는 음식을 했을 때와 비슷한 노래죠. 제가 보현에게 혹은 우리에게 느끼는 마음을 가장 잘 녹인 노래예요.”


지금은 기타를 켤 수 있는 손가락 상태지만, 앞선 부상이라는 경험은 루시드폴의 음악적 스펙트럼을 넓히는 계기였다. 그에 따르면, 어쿠스틱 악기는 굉장히 인공적이며 오히려 디지털 음악의 시대로 넘어오면서 우리는 원음에 가까운 소리를 듣는다. 그는 “나 역시 일반적인 어쿠스틱함이란 것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소리를 써보니 도구가 많아 졌더라”며 “취향의 문제일 뿐 어쿠스틱, 디지털, 전자식 등 도구는 무의미하다”라고 본질에 충실하겠다고 다짐했다.

“굳이 비유하자면, 내가 화가이고 팔레트 위에 물감이 한 가지만 있어도 그림을 멋있게 그릴 수 있겠죠. 그러나 100가지 물감 중에 하나를 선택해서 그리는 것과 물감이 하나밖에 없어서 그것 하나로 그림을 그리는 것은 다르잖아요. 가능하다면 내 팔레트 위에 있는 물감 수를 늘리고 싶어요. 물론 쉽지 않죠. 음악은 언어와 같아서 어느 날 갑자기 제가 악기를 다 다룰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요. 그래서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어떤 사람이 가진 물감을 슬쩍해서 같이 쓰는 등 적극적으로 노력을 하면 저의 표현 방식이 조금씩 늘어나지 않을까요?”

요즘에는 식물의 소리를 실험하고 있다. 그는 “나는 나무에 둘러싸여 사는 사람이다. 인간 기준에서 나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나무도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살지 않나. 식물의 신호를 받아서 음악화하고 싶다. 실제로 녹음을 했고 더 체계화시키는 방안을 고안 중”이라고 또 다른 도전을 귀띔했다.


이처럼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할 수 있는 배경에는 소속사 안테나뮤직의 인내심이 있지 않을까. 아티스트의 도전을 기다리고 속도를 맞출 줄 알기에 남달라보였다. 루시드폴 역시 “그렇다. 안테나 뮤직의 장점은 음악을 계속 하게 해준다는 것”이라며 “단점은 정말 없다. 사실 나는 이미 원로격이라 회사에서도 제쳐놓은 것 같다(웃음)”고 애사심을 나타냈다.

“농사꾼으로서의 목표는 없고요, 저는 배우는 단계입니다. 이제 6년 됐는데, 아직까지는 서울 혹은 다른 도시에서 살 자신이 없어요. 기한 없이 제주도로 갔고 과수원 나무들이 있는 현 환경에 만족하죠. 유기농 인증이 목표도 아니고요. 단지, 조금 더 나무에 대해 구체적으로는 귤나무와 레몬나무에 대해, 더 넓게는 땅에 대해 알고 싶어요. 실험으로 치면, 1년에 한 번밖에 할 수 없는 실험인지라 시간이 많이 필요하죠. 음악인으로서의 목표는 아까 말했듯 제 팔레트에 물감을 하나씩 늘려가고 싶은 것이에요. 2년에 한 번씩은 꾸준히 음반을 내고 싶고요. 싱글 단위더라도 컬래버레이션을 적극적으로 한다든지 해서 제가 할 수 없는 음악을 과감하게 해보는 것도 바람이고요.”

루시드폴은 오늘(16일) 저녁 6시 새 앨범을 발매하고, 오는 28일과 29일 서울 연세대학교 백주년 기념관 콘서트홀에서 단독 콘서트를 개최한다.

동아닷컴 전효진 기자 jhj@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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