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길의 스포츠에세이] 연하 감독·연상 코치에 대한 단상(斷想)

입력 2020-01-08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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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2 경남FC 지휘봉을 잡은 설기현 감독(가운데)은 선배를 수석코치에 선임하는 등 코칭스태프 구성을 끝냈다. 유럽에서 오랜 기간 선수생활을 한 설 감독은 서열보다 코치 각자의 역할을 더 중시한 선택을 했다. 사진제공|경남FC

요즘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가장 핫한 팀은 RB라이프치히다. 2019~2020시즌 전반기 17경기에서 단 2패(11승4무)만 기록한 채 단독 선두(승점 37)에 올랐다. 리그 7연패의 절대 강자 바이에른 뮌헨과 전통의 강호 도르트문트 모두 발아래다. 음료업체 레드불이 메인 스폰서를 맡아 2009년 재창단한 라이프치히는 사상 첫 리그 우승을 노린다. 유럽챔피언스리그 16강에도 진출해 다음 달 손흥민(28)의 토트넘 홋스퍼(잉글랜드)와 맞붙는다.

돌풍의 중심엔 율리안 나겔스만 감독이 있다. 분데스리가를 쥐락펴락하는 그는 이제 겨우 33세, 선수로 뛰어도 좋을 나이다. 무릎부상으로 21세에 일찌감치 선수생활을 접은 뒤 처음 지휘봉을 잡은 건 29세 때다. 2015~2016시즌 강등권이던 1899호펜하임을 1부에 잔류시키며 주목을 받았다. 단지 운이 좋았던 게 아니었다. 지도력은 타고 났다. 이번 시즌 라이프치히에서 더욱 빛을 발하며 주가를 높이고 있다.

나겔스만은 선수뿐 아니라 코칭스태프 관리도 탁월한 듯하다. 코치진 대부분은 감독보다 나이가 많다. 한명만 한 살 어리다. 감독 혼자 힘으로 성과를 내기는 어렵다. 아마도 감독은 코치가 역량을 발휘할 수 있게끔 판을 깔아줬고, 코치는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면서 좋은 성적을 냈을 것이다.

나겔스만이 보여준 건 나이와 지도자 역량은 별개라는 점이다. 감독 중엔 풍부한 경험으로 성과를 내는 베테랑이 있는가 하면, 비상한 전술로 성적을 올리는 젊은 지도자도 수두룩하다. 중요한 건 나이가 아니라 능력이다.

선후배 구분이 뚜렷한 우리 환경에선 감독과 코치의 거꾸로 된 나이가 생경스러울 수도 있다. K리그에서 나이가 역전되는 경우는 드물다. 선배가 감독이고, 후배가 코치인 게 일반적인 그림이다. 하지만 성적으로 말하는 프로의 세계에서 나이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불편할 수 있다.

K리그에서 한 때 연하 감독·연상 코치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2003년 포항 스틸러스를 이끌던 최순호 감독은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에 힘을 보탠 박항서 코치를 수석코치로 영입했다. 서열 문화가 엄격한 우리 사회에서 자신보다 3년 선배(호적상 나이와 별개로 박항서 77학번, 최순호 80학번)를 코치로 영입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구단 고위층의 반대도 심했다. 코치 입장도 껄끄러웠을 것이다. 그래서 당시로선 파격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역할 분담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내며 2004년 전반기 우승을 했다. 또 새로운 문화를 선보였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도 받았다. 하지만 이후에 이런 모양새는 좀처럼 보기 힘들었다.

2020시즌을 앞두고 K리그2(2부리그) 경남FC 사령탑에 오른 설기현 감독의 코치진 선임이 화제다. 1979년생인 설 감독은 자신보다 7년이나 위인 선배(김종영)를 수석코치에 앉혔다. 서로 개인적인 친분은 없다. 일 때문에 만났다. 이번 결정은 유럽 무대를 경험한 설 감독의 실용적인 사고가 반영됐다. 감독은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는 자리인데, 그 막중한 책임을 감당하기 위해 나이불문하고 능력 있는 코치를 쓰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설 감독은 “나이를 따지고 싶진 않았다. 나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사람을 골랐을 뿐”이라고 했다.

감독과 코치는 서열이 아니라 역할이다. 위계보다는 각자 맡은 일에 충실하면 된다. 그런 점에서 후배 감독이 선배 코치를 쓰는 부담감이나 선배 코치가 후배 감독을 돕는 껄끄러움을 떨쳐내는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 생각을 바꾸면 K리그에도 새로운 문화가 정착될 수 있다. 설 감독의 신선한 생각이 널리 퍼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최현길 전문기자·체육학 박사 choihg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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