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리그레이더] 여자배구 올림픽 최종예선전과 아시아쿼터 도입

입력 2020-01-16 09: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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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3회 연속 올림픽 본선에 진출한 한국여자배구대표팀이 13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여자배구대표팀 라바리니 감독이 및 선수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인천국제공항 |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12일 도쿄올림픽 아시아대륙 최종예선전 태국과의 경기는 한국 여자배구의 많은 것이 걸려 있었다. 그동안 남자배구의 그늘에 가려져 지내던 여자배구가 막 기지개를 켜기 시작하는 시점에서 주저앉을 것인지 아니면 폭발적으로 더 성장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분수령이었다. 다행히 우리 선수들은 3-0으로 이겼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공수의 밸런스, 다양한 득점분포와 중압감이 큰 상황에서도 스스로 헤쳐 나가는 정신력 등에서 압도했다. 이 한 경기만 놓고 보자면 태국은 우리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만큼 우리 선수들의 정신무장이 좋았고 개인기량은 뛰어났다.

관중석에서 이 경기를 지켜본 3개 여자팀 단장과 KOVO 관계자들도 그 것을 확실히 느꼈을 것이다. 구자준 전 KOVO 총재도 경기장에서 우리 선수들을 위한 뜨거운 응원에 동참했다. 비록 현직을 떠났지만 팬의 입장에서 먼 곳을 찾아가 응원을 해주는 열정이 지금 우리 여자배구를 든든하게 받쳐주는 힘이다. 많은 열성적인 팬들도 여자대표팀과 함께 했다. 스포츠전문 채널이 아닌 종합편성 채널에서 했던 중계도 축구경기 못지않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그만큼 지금 여자배구를 좋아하고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2020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3회 연속 올림픽 본선에 진출한 한국여자배구대표팀이 13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여자배구대표팀 김연경이 인터뷰에 앞서 주먹을 쥐며 환호하고 있다. 인천국제공항 |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도쿄올림픽에서 메달을 노리는 주최국 일본은 자국대표팀의 경기를 프라임타임 시간대에 편성할 계획이라고 알려졌다. 시차가 없는 곳에서 벌어지는 경기이기에 우리도 편한 시간대에 여자배구 경기를 안방에서 지켜볼 수 있게 됐다. 만일 올림픽 본선에서도 우리 여자대표팀이 극적인 장면을 많이 만들어낸다면 앞으로 몇 년간 여자배구의 인기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절호의 기회다. 이 경기를 지켜볼 수많은 꿈나무들이 도쿄올림픽 뒤 여자배구에 뛰어들 것으로 기대한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2020년은 V리그는 물론이고 한국 여자배구의 미래에 정말 중요한 해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 확실히 해둘 것이 있다. 최근 V리그 남녀부 단장들은 아시아쿼터 제도를 도입하려고 한다. 팬들의 반응은 상당히 부정적이지만 남자구단들은 새 시즌부터 당장 도입하는 것을 목표로 의견을 조율하고 있다. 걱정스럽다. 구단들은 감당하기 힘들만큼 커지는 연봉부담의 해결방법의 하나로 아시아쿼터 실시를 생각한다. 반면 팬들은 웜업존에서 사라지는 수많은 토종 선수들에게 기회를 더 주라고 요구한다.

세상 어느 누구도 대중을 상대로 싸워서 이길 수는 없다. 팬의 관심과 사랑으로 먹고 사는 프로배구가 팬의 분노와 저항을 받아가며 굳이 이 제도를 도입해야 할지는 의문이다. 여자부도 마찬가지다. 4-2로 반대보다는 찬성이 많지만 태국전에서 확인된 사실이 있다. 일방적으로 태국을 이길 정도로 우리 대표선수들의 수준은 아시아 정상급이다. 이런 선수들과의 경쟁에서 이기면서 연봉 1억원 미만(주택과 차를 주고 통역이 붙으면 실제로 들어가는 돈은 2~3억원)을 받는 아시아선수는 없다. 환상이다. 그나마 경쟁력이 있다는 각국의 대표선수들이 V리그에 오면 어떤 성적을 낼지 확실히 보여준 것이 최종예선 결과였다. 냉정하게 따져서 특별히 탐나는 선수는 많지 않았다. V리그를 아시아에 수출해서 돈을 벌겠다는 상업적인 목적이 아니라면 아시아쿼터로 팀간 전력 불균형을 해소하고 토종 선수들의 몸값을 줄이겠다는 계산은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2020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3회 연속 올림픽 본선에 진출한 한국여자배구대표팀이 13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여자배구대표팀 라바리니 감독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인천국제공항 |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이름 밝히기를 꺼려하는 어느 대표선수는 “아시아쿼터 도입에 반대한다”고 했다. “이제 우리도 대표선수들 대부분 이 30대를 향해 가고 몇몇은 마지막 올림픽인데 지금부터 새로운 선수를 V리그에서 키워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우리 선수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줘야한다. 아시아쿼터는 그런 기회를 원천적으로 막는다”고 했다. 이번 최종예선전에서 큰 활약을 했던 흥국생명 이재영, 현대건설 이다영도 V리그에서 많은 경험을 하고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국제대회에서 이 정도의 기량을 발휘하게 됐다. 라바리니 감독이 하늘에서 떨어진 새로운 지도방법으로 선수를 조련한 것이 아니다. V리그에서 실전을 통해 우리 선수들이 꾸준히 성장한 결과가 3연속 올림픽 본선진출이다. 라바리니 감독의 성과를 깎아내리는 것은 아니지만 V리그와 우리 지도자들도 충분히 역할을 했다. 이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시아쿼터 도입은 우리의 육성 노하우를 다른 나라로 누출시킬 위험도 있다. 프로선수 딸을 둔 어느 부모의 의견도 같았다. 전문가 이상의 시각을 가진 그는 “외국선수를 데려와서 육성시키며 우리가 가진 기술을 알려주면 다음 올림픽 예선전 때 당할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아시아쿼터 도입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고 했다. 제발 서두르지 말고 보다 많은 사람들의 얘기를 듣고 정책을 결정했으면 한다. 민심이라는 바다는 조용해보이지만 한 번 화가 나면 배를 뒤엎을 정도로 무서워진다. 팬을 화나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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