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쉬운 길’ 대신 ‘정공법’ 택한 서현우의 이야기

입력 2020-02-20 13: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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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남산의 부장들\'에서 보안사령관 역을 맡아 활약한 배우 서현우. 촬영을 마친 \'유체이탈자\'로 관객과의 만남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제공|풍경엔터테인먼트

작품마다 맡는 역할은 달라도 늘 비슷한 이미지의 배우가 있는 반면 출연하는 작품에서 매번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배우도 있다. 어떤 역할을 맡든 그 인물에 푹 빠져 연기하는 배우들이 창조한 세계는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절대적인 힘이다.

최근 개봉한 한국영화 가운데 단연 탁월한 완성도를 갖춘 ‘남산의 부장들’(감독 우민호·제작 하이브미디어코프)에서도 ‘빛나는’ 배우를 만날 수 있다. 이병헌, 이성민, 곽도원, 이희준이 팽팽히 이룬 4각 대결의 한쪽에 서서 또 다른 축을 이루는 배우 서현우(37)이다.

영화는 1979년 10·26사건이 벌어지기까지 40일간을 되짚는 이야기다. 서현우는 절대 권력자인 대통령과 권력의 2인자인 중앙정보부장들 틈에 놓인 보안사령관 전두혁을 연기했다. 실제 사건을 다루지만 일부러 실명을 쓰지 않은 감독의 선택 아래 전두혁이란 가상의 이름이 붙었지만 서현우가 연기한 인물은 12·12사태의 장본인 전두환이다.

영화 출연을 결정한 뒤 머리카락까지 ‘밀고’ 연기에 임한 서현우는 ‘남산의 부장들’에서 묘한 긴장감을 형성한다. 영화 후반부에 이르러 돌고 도는 역사의 아이러니한 상황을 몸소 표현하는 것도 서현우의 몫이다. 마치 실제 역사의 현장을 엿보는 듯한 분위기까지 연출한 서현우의 연기력이 이번 영화를 통해 다시 한번 빛난다.

‘남산의 부장들’ 뿐만이 아니다.

비슷한 시기 서현우는 또 다른 영화 ‘해치지 않아’로도 관객을 만났다. 폐업 위기인 동물원을 살리기 위해 동물의 탈을 쓰고 동물 흉내를 내는 직원들을 지켜보는 인물이지만, 뻔한 상황을 눈치 채지 못해 이야기를 새로운 국면으로 이끄는 역할로 웃음을 안겼다.

영화 작업을 쉼 없이 이어가는 서현우를 13일 만났다. ‘남산의 부장들’에서의 전두혁 역할이 남긴 잔상이 강렬하게 남아서인지, 어느새 머리카락이 자란 그의 얼굴이 낯설게 다가왔다. 출연을 앞둔 드라마 준비를 위해 체중 조절도 하고 있다는 그에게서 전두혁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 자리를 채운 건 ‘훈훈한’ 매력이다.

배우 서현우는 "앞으로도 독립영화 출연을 계속할 생각"이라고 했다. 자신을 실험하는 무대이자, "고향"과 같은 곳을 떠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사진제공|풍경엔터테인먼트


● “머리카락, 자를 것인가 말 것인가”

서현우는 ‘남산의 부장들’ 촬영을 앞두고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우민호 감독으로부터 역할을 제안받은 뒤 시작된 고민이다. 역할이 역할인 만큼 헤어스타일이 중요했다. 제작진은 특수 분장을 권하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리얼리티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서현우는 “(머리카락을)밀 것인가, 말 것인가(웃음) 고민하는 과정에서 시나리오가 표현한 탁월한 묘사를 살리려면 어느 것도 ‘가짜’가 있으면 안 되겠구나 생각했다”고 밝혔다.

“실존인물이고 상징적인 인물이다 보니 부담이나 걱정은 됐죠. 그래도 영화잖아요. 저는 영화의 인물로 받아들였지만 오히려 주변 사람들이 ‘괜찮겠느냐’고 하더라고요. 사회적인 의미나 사건을 배제하고 배우로서 역할에 접근했습니다. 부담을 가졌다면 흉내만 내고 끝났을지도 몰라요.”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연기를 전공한 서현우는 연극과 영화, 드라마를 넘나들고 있는 실력자다. 데뷔 초 영화 ‘고지전’ ‘관상’ ‘베테랑’ 등에 조·단역으로 참여해 경력을 쌓았고 2017년 ‘1987’을 시작으로 2018년 ‘7년의 밤’ ‘독전’을 거쳐 ‘배심원들’로도 관객과 만났다. 왕성한 영화 참여와 동시에 드라마로도 무대를 넓힌 그는 2018년 김원석 감독의 ‘나의 아저씨’와 ‘시간’에 이어 지난해 OCN 드라마 ‘모두의 거짓말’로 다시금 실력을 인정받았다.

각각의 작품에서 맡은 분량은 제각각이지만 매번 다른 얼굴, 다른 이야기로 관객과 시청자를 자극한다. 서현우가 가진 힘이다.

“아직까지 도화지 같은 면이 있다고 할까요.(웃음) 개인적으로는 새로운 상황에 놓인 캐릭터에 욕구가 생겨요. 그것만큼은 포기하고 싶지 않아요. 연기를 하다보면 자주 해온 역할에 은근히 의지할 때가 있어요. 해본 역할 중에 잘할 수 있는 것들을 따라가고 싶은 유혹이 생기죠. 그런 마음과 계속 싸우고 있어요. 편해지면 안 된다, 새로워야 하다고요.”

‘쉬운 길’ 대신 ‘가시밭 길’ 걷는다는 얘기다.

“하하! 스트레스도 많이 받아요. 잘할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싶지만 그런 것에 의존하면 정체되는 것 같으니까…. 그런데 새로운 역할을 맡아서 표현하려면 또 어렵고. 그래도 어려운 숙제를 풀 때 더 큰 보람을 느끼더라고요.”

그런 서현우에게 영화감독이나 제작진도 관심과 기대를 걸고 있다. 그 횟수가 점차 늘면서 출연하는 작품도, 제안 받는 역할의 비중도 늘고 있다. ‘남산의 부장들’도 마찬가지다. 우민호 감독은 처음 서현우를 만난 뒤 “엘리트 장교같은 이미지가 있다”면서 보안사령관 역할을 제안했다.

“제 얼굴 어디에서 정치군인, 엘리트 같은 모습을 보셨는지 궁금하더라고요. 하하! 영화에서 저의 포지션이 관찰자 같은 느낌이잖아요. 대통령과 권력 2인자들 사이의 긴장을 관찰하죠. 촬영 현장에서도 저는 관찰자 같았어요. 이병헌, 이성민 선배들의 연기를 같은 공간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짜릿 했습니다. 팬심을 드러낼 수 없으니, 꽁꽁 숨겼죠.”

영화 '남산의 부장들'에 출연한 서현우 모습. 사진제공|쇼박스


● 독립영화 참여 꾸준히…“나를 실험하는 기회”

서현우는 곧 새 드라마 촬영을 시작한다. 지난해 여름 촬영을 마치고 개봉을 준비 중인 영화 ‘유체이탈자’도 있다. 그를 향한 제작진의 러브콜도 이어진다.

“예전보다 연기할 기회가 늘었지만 그래도 인생이 막 바뀔 정도는 아닙니다. 하하! 차근차근 맞이하는 변화를 느끼고 있어요. 소모되지 않고 싶은 게 배우들의 습성이잖아요. 익숙한 것으로 향하려는 달콤한 유혹과의 싸움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서현우는 상업영화와 드라마 출연 일정이 이어지는 지금도 ‘고향’과 같은 독립영화 출연은 멈추지 않고 있다. 최근에도 강원도 강릉에서 대학 졸업 작품으로 기획된 독립영화를 찍었다. 앞서 ‘죄 많은 소녀’ ‘보희와 녹양’ 등 화제가 된 독립영화에 어김없이 출연했다. 시간과 여건이 된다면 독립영화 참여는 계속 이어갈 생각이다. 지난해 서울독립영화제 폐막식 진행을 맡은 것도 같은 마음에서다.

“어떤 목적이 있다기보다, 독립영화의 현장이 굉장히 본질적인 세계라고 생각해요. 저를 조금 더 실험적으로 몰 수 있거든요. 나를 발견할 수 있는 기회이고, 어쩌면 고향 같은 곳이죠. 잊고 싶지 않은 현장입니다. 할 수만 있다면 계속 참여하고 싶어요. 저도 거친 길이지만 영화학도들을 만나면 굉장한 에너지를 받기도 해요.”

서현우는 요즘 또 다른 자극도 받고 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제92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등 4관왕에 오른 것으로부터 얻는 에너지다.

“시상식 생중계를 보면서 계속 소리쳤어요. 하하! 중계 보면서 소리 지른 건 월드컵 이후 처음인 것 같아요. 비현실적일 일 같아요. 시상식 끝나고 곧바로 영화 ‘굿 윌 헌팅’의 주인공 맷 데이먼의 대사를 출력했어요. 통째로 외우려고요. 하하!”

안 그래도 올해 목표를 ‘영어’로 정해놨다는 서현우는 마침 ‘기생충’의 성과로부터 자극을 받아 맷 데이먼의 대사를 전부 외우겠다고 했다. 준비된 연기자에게 기회는 어김없이 오는 법. 서현우의 앞날에 기대의 시선이 향한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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