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 피플] ‘그림자’로 살아온 김헌곤 “저한테 내일이란 없죠”

입력 2017-06-23 09: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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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김헌곤.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프로 7년차 김헌곤의 시작은 화려하지 않았다. 2011년 5라운드 전체 36순위로 삼성의 지명을 받은 그는 ‘왕조’ 삼성의 백업 외야수로 프로 첫 해를 보냈다. 최형우, 박한이, 배영섭 등 이름만 들어도 화려함이 느껴지는 1군 외야진 속에 그의 자리는 없었다. 삼성이 2014년까지 한국시리즈를 4연패 하는 동안 그는 철저하게 ‘그림자’ 역할을 맡았다.

김헌곤은 2014년 76경기에 나서면서 잠시 빛을 보는 듯했다. 그러나 이듬해 군에 입대하면서 기다림의 시간이 연장됐다. 상무서 2년간의 군 생활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그의 나이는 어느덧 30살이 돼 있었다. 지독한 ‘노력파’인 그는 오랜 기다림 속에서도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 언젠가 자신에게 올 기회에 부끄럽지 않게 매일 방망이를 휘둘렀다. 2016년 퓨쳐스리그 남부리그 타격왕을 차지하면서 서서히 두각을 드러냈다.

군 전역 후 김헌곤은 드디어 기회를 잡았다. 올 시즌 삼성의 주전 좌익수를 꿰차면서 처음으로 풀타임을 소화하는 중이다. 어렵게 잡은 기회가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탓일까. 그는 자기 자신에게 유독 엄격하다. 조금의 여유도 스스로 용납하지 않는다.

21일 LG전을 앞두고 만난 김헌곤은 “야구가 참 어렵다”며 최근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는 “풀타임이 처음이다 보니 여러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 항상 잘 해야 한다는 마음에 쫓기는 것이 사실이다. 최근에는 좋은 선수들의 장점을 나름대로 짜깁기해 따라해 봤는데 오히려 결과가 좋지 않았다”고 했다. 해결책을 찾았냐고 물었더니 “단순하게 생각을 정리했다. 아직 나는 부족한 선수라는 것이다. 좋은 선수들을 무작정 따라하기보다 내가 직접 몸으로 부딪히며 배우는 것이 더 낫더라”고 답했다.

가시밭길을 선택한 그에게 체력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첫 풀타임 시즌인 만큼 장기 레이스에 대한 대비가 돼 있는지 궁금했다. 돌아온 대답은 걸작이었다. 김헌곤은 “솔직하게 말하면 체력을 비축하는 게 무엇인지 아직 잘 모른다. 나는 항상 내일이 없는 ‘경쟁’ 속에서 오늘만을 살아왔다. 프로 무대에 온 이후 줄곧 그랬다. 아직도 우리 팀에 ‘내 자리’란 없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편하다”고 말했다.

세상 진지한 표정으로 매일 타격훈련에 임하는 그에게 모 코치가 지나가면서 한 말이 있다. “(김)헌곤아, 너 오늘 하루 못 친다고 2군 안 보낸다.” 코치진도 그의 열정에 혀를 내두른 것이다. 오늘만 사는 김헌곤의 야구철학은 과연 올 시즌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까. 정작 본인은 생각하지 않는다는 그의 ‘내일’이 제법 궁금하다.

장은상 기자 award@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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