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이룬 ‘작은 호랑이’ 김선빈의 성공시대

입력 2017-12-15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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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KIA 입단 당시 야구 실력보다 164cm의 작은 키로 더 주목받았던 김선빈은 올해 타격왕을 차지하며 팀의 통합우승을 이끈 유격수가 됐고, 골든글러브까지 수상하는 기쁨을 누렸다.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아빠가 키가 작아서 미안하다.”

10년 전의 일이다. 2007년 8월 어느 여름날, 아버지는 아들에게 사과를 했다. 화순고 에이스이자 4번타자 김선빈은 수화기 너머 들려온 아버지의 느닷없는 사과에 속울음을 삼켜야만 했다.

제7회 아시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대표팀에 발탁된 김선빈은 건국대에서 훈련을 했다. 2008년 신인드래프트 2차지명회의를 휴게실 컴퓨터를 통해 지켜보고 있었다. 시속 140㎞ 후반대의 강속구를 던지는 유망주 투수. 타격 재능을 갖춘 다부진 유격수. 김선빈은 일찍부터 전국에 이름을 알렸다. 그러나 세상은 그의 야구재능 대신 164㎝ 작은 키를 더 주목했다. 2차지명 5라운드 안에 들지 못하면 프로에서 성공하기 쉽지 않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 결국 6라운드 전체 43번으로 KIA에 지명됐다.

신인 시절 김선빈. 사진제공|KIA 타이거즈


김선빈의 마음은 무거웠다. ‘대학 진학 후 실력을 키워 제대로 인정을 받고 프로에 가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대학 졸업 후에도 작은 키가 자랄 가능성은 없었다. 진로를 상담하기 위해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아버지는 “네 인생이다”며 아들의 선택을 지지하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그러면서 못내 마음이 걸렸는지 자신의 작은 키를 물려준 아들에게 사과를 했던 것이었다.

집안이 가난했다. 돈이 궁했다. 그래서 결국 프로 직행을 결심했고, 3000만원의 계약금을 손에 쥐고 KIA 유니폼을 입었다. 당시 조범현 감독의 눈에 들어 일본 미야자키 스프링캠프 명단에 들었다. 그는 용돈 10만원만 들고 갔다. 돈을 쓰지 않기 위해 휴일에도 나들이 대신 숙소에서만 지냈다.

그로부터 10년이 흘렀다. 아내를 두고 2년간 군복무(상무)를 마친 그는 더 강해져 있었다. 올 시즌 0.370의 고타율로 타율 1위에 올랐다. 1994년 해태 이종범 이후 23년 만의 유격수 타격왕. KIA의 우승을 이끌면서 13일 열린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생애 첫 황금장갑도 품에 안았다. 프로 10년차임에도 올해 연봉은 8000만원. KIA 야수 고과 1위로 평가된 그이기에 연봉이 얼마까지 치솟을지 궁금할 따름이다.

KIA 김선빈.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10년 전, 단돈 10만원만 들고 전지훈련을 버텼던 가난했던 ‘꼬꼬마’는 이제 수억원대 연봉을 예약한 슈퍼스타가 됐다. 작은 키를 물려줘 미안함으로 가득했던 아버지의 가슴은 이제 뿌듯함으로 채워지고 있다. 세상의 편견을 깨기 위해 남모르게 흘린 눈물과 땀이 비로소 보상을 받기 시작했다.

김선빈은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곧 꽃빈이(태명)가 태어나는데 이렇게 좋은 상을 주셔서 꽃빈이한테 자랑할 수 있을 것 같다”며 기뻐했다. ‘작은 호랑이’ 김선빈의 전성시대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재국 전문기자 keyston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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